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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Oct 09. 2024

도움을 받으려면 술부터 끊어야 한다

#애프터 치앙마이

금주를 시작한 것은 23년 8월 25일의 일이었다.


치앙마이에 있을 때 공황발작이 매우 심하게 와서 그 이후로는 무서워서 술을 아예 끊은 상황이다.


1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신경정신과를 찾았고 선생님은 불안장애 진단 코드로 나에게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주었다. 선생님을 두 번 만났고 내일도 병원에 가는 날이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살려달라'라고 도움을 청한 적은 없었다.


나는 평소에 타인에게 도움을 잘 청하지 못한다. 도움을 청한다고 해도 돌아오는 반응이 없는 가정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혹은 무엇만 하면 다 부모님 타령을 하는 나의 핑계인 것일까. 어쨌거나 나는 타인에게 도움을 잘 청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이런 내가 병원도 가고 상담도 가는 것은 내가 느낀 것이 죽음에 대한 엄청난 공포와 무력감이기 때문이다. 불안 때문에 죽을 것 같았고 불안 때문에 죽을 것 같은 상태 때문에 살고 싶지 않았다. 대환장의 유니버스다.


이 정도의 상태가 되어서야 나는 조금씩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다.


살려달라, 살려주세요.


내가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어 본 적은 살면서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어린 시절 아빠에게 맞고 있을 때였다. 10대 초반이었나 그랬나 보다. 엎드려뻗쳐서 맞다가 너무 아파서 방으로 도망가니까 아빠가 문을 부수고 들어와서 나를 죽일 듯 쳐다보았다. 그런 아빠 앞에서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살려달라'라고 간곡히 빌었다.


두 번째는 이보다 더 어렸을 8~9살 시절, 실제로 바다에 빠져서 죽을 뻔했을 때였다. 물에서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발버둥 쳤다. 아마 물에 빠지는 중이라 살려달라는 말을 크게 내뱉지는 못했을 텐데 어쨌거나 사력을 다해서 살려달라고 외쳤다. 죽음과의 사투를 겪고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말을 하니 부모님의 반응은 별 일 아니라는 듯 시큰둥했다.


이 두 가지 사건이 내 인생에서 살려달라고 말해본 유일한 사건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30대 후반이 다 되어서야 다시금 살려달라고 말하고 있는 중이다.


신경안정제는 실제로 도움이 되고 있고 심리상담은 아직은 모르겠다. 첫 번째 세션을 마쳤는데 역시나 부모님 이야기를 하다가 울다 왔고 2시간에 걸쳐서 심리 검사지를 풀고 왔다.


확실한 것은 아주 조금씩이라도 기력을 되찾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런 기운이 없어서 집에 돌아와서도 누워만 있었는데 며칠 전부터는 집도 치우고 있고 오늘은 집에 의자와 책상이 배송되어서 나름의 인테리어 같은 것도 해보았다.


창밖에 뷰가 꽤 좋은 편이고 평소 같았으면 이런 뷰를 보면서 옆에는 술잔을 놓아두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 옆에 놓인 잔은 위스키 잔으로 써도 멋있을 유리잔인데 여기에 에스프레소와 얼음, 탄산수를 섞어서 음료를 만들어 담아두었다. 이걸 다 마시면 녹차를 마실 생각이다.


글을 쓰면서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술을 끊지 않았다면 죽을 것 같은 상황임에도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아마도 술에 취해 있다가 도움을 청할 새도 없이 죽어버렸을 것이다.


술을 끊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감정이 마비될 새가 없었다. 내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직접적으로 나에게 쓰나미처럼 몰려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상태가 심각하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경험해 내는 것은 끔찍한 경험이다. 누군가는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는데, 아직까지 나는 있는 그대로를 느끼는 것이 어색하고 두렵기만 하다.


나는 실제로는 부모님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감정. 나는 실제로는 내 자신을 끔찍하게 혐오한다는 감정 같은 것들.


물론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1차원적인 감정 분석의 결과고 이제는 전문가들과 함께 내가 진짜로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얽혀있는 실타래를 같이 풀어보기로 했다.


오늘은 술을 끊은 지 415일째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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