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정신과 방문 3회 차.
선생님을 만나면 그동안 어땠는지 주절주절 말하는데 사실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는 나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으면서 컴퓨터 자판기를 치며 기록을 하는데 그렇다고 뭔가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아니다. '오오 그렇군요'라는 리액션이 전부랄까.
그러나 진료 세부내역 영수증을 보면 '개인정신진료'를 했다는 항목이 있단 말이지. 그냥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정신진료인가 싶어서 엥? 하는 마음이 들지만 일단 처방받은 약은 잘 듣는 것 같으므로 계속 이 병원에 다닐 생각이기는 하다.
처음 방문 후 3주 정도 흘렀고 그동안 분명 어느 정도는 증상에 차도가 있었다.
잠을 거의 못 자서 오후 3~4시만 되면 극심한 졸음이 몰려왔던 증상이나 시도 때도 없이 불안이 몰려와서 심할 때는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도 못했던 증상은 거의 사라졌다. 물론 바깥에서 심호흡을 해야 하는 상황은 여전히 잦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급격히 피곤해지기 시작해서 최근에는 쇼핑몰 같은 곳은 전혀 가지 않는다. 회사가 내가 견딜 수 있는 유일한 외부 공간.
동시에 회사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고 이에 따른 스트레스도 함께 증가하는 중이다.
최근 2주 간은 거의 매일을 야근을 했고 업무적으로 동료와 트러블이 생기는 상황을 맞이했다. 특별할 것 없는, 회사에 다니면 늘 일어나는 일이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라 신경안정제를 먹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평소 같으면 업무 관련해서 부정적인 상황을 하루 24시간 내내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었을 수도 있는데 약이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막아주고 있는 느낌이다.
어쨌거나, 다시 너무 지나치게 회사생활에 몰두하고 있다.
이 자체로는 불만은 없다. 회사생활에 몰두하는 것 말고는 별로 하고 싶은 것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할 일이 있어서 낫다는 생각이다.
다만 회사에서 나에게 업무를 던지는, 혹은 찍어 누르는 식으로 지시하는 동료와의 트러블이 생겼는데 이것을 또 못 견디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한계 같은 것을 느껴서 스스로 한탄 중이다.
나는 이런 보수성에 거의 두드러기가 날 만큼의 거부감을 갖고 있다. 부모님이 나를 대하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부모님에게 하듯 동료에게도 속 시원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그 스트레스를 그대로 받아내는 중이다.
혹은 상대방도 뭔가 힘들고 어려운 점이 있어서 저러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내가 그의 마음을 너무 몰라주고 1차원적으로 '싫다'는 감정으로만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또 반대로 그건 그냥 그의 잘못인데 내가 그의 심정까지 굳이 신경 쓰고 원인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일까.
나라는 사람의 인생의 초기에 부모님과 발생했던 일은 나이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에까지 너무도 큰 영향을 끼친다.
이 반복의 굴레에서 나는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혹은 그냥 이 굴레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 내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첫 번째로는 술을 끊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이 고통의 끝을 봐야 어떠한 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너무도 고통스럽지만 일단 정신과 치료, 심리상담, 금주 같은 '시작'을 했으니 나의 이 여정의 끝은 봐야지 않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