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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애많은김자까
Mar 29. 2021
반장이 '주인집 아들', 그래서?
학교폭력, 그 못난 이름
아빠는 공무원이었다.
대학교육까지 받은 아빠는 당시로선
꽤나 가방끈이 긴 엘리트였던 셈이다.
아빠가 엘리트였던 건, 어디까지나 할아버지의 부유함 덕이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누가봐도 그집 딸인 나는
준재벌집 손녀 정도로 살아야 했겠지만,
그 할아버지찬스가 손녀인 나의 대까진 넘어오진 않았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할아버지 찬스는,
아빠 대학 졸업과 동시에 막을 내렸다.
할아버지의 사업은 쫄딱 망했고,
길거리에 나앉게 되자,
장남의 수혜를 톡톡히 누려왔던 부잣집 도련님 아빠에게
모든 빚이 떠넘겨졌다.
아빠의 대학 이후 청춘은 그렇게 빚에 쪼들리고,
빚쟁이에게 쫓겨 온 삶이었다고 한다.
내가 전해들은 우리집안의 기막힌 1막은 여기까지.
그리고, 그런 아빠에게 꽂혀 결혼한 울엄마의
쌩고생 얘기가 2막이다.
울엄마 김여사는 대학교육을 받은 공무원 남편을 두고도
시댁 빚을 갚느라, 그야말로 찢어지게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런 절박한 가난함에도
난
단 한번도
주눅들거나 당당하지 않은 적이 없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
우리집은 경기도 모모시의 2층 양옥집으로 이사를 했다.
물론 우리집 아닌 전세였고. 반지하였다.
같은 반지하방 옆 이웃으론 흑인미군가족이 세 살았고.
그집엔 나보다 세살어린 리나라는 혼혈 남자아이가 있었다.
리나는 귀여운 아이였고, 친하게 잘 지냈다.
그리고, 당시 양옥집 대개가 그렇듯,
2층엔 주인집이 살았는데 그집엔 나와 동갑내기 남자아이와 나보다 한살많은 언니가 살았다.
난 주인집 언니와 친했고, 동갑내기 남자아이는 내 앞에서 많이 수줍어하는 착한아이였다.
5학년이 됐다.
반배정을 받았는데, 난 주인집 아들과 같은 반이 됐다.
아이는 내심 수줍어하며 좋아했고,
나도 싫지 않았다.
착한 주인집 아들은 5학년 1학기 반장이 됐고.
그때 난 나의 유치원 동창이었던 목욕탕집 아들과 짝꿍이 됐다.
(당시 우리집은 나를 유치원에 보낼 형편이 안됐지만, 엄마는 막내인 나는 꼭 유치원에 보내고 싶어했고. 난 그때 꽤 좋은 유치원엘 갔다. 당시 입학때 이모 외삼촌이 십시일반 도움을 줬다.)
당시 나는 똘똘하고 앙칼맞은 아이였고, 꽤나 공부도 잘하는 아이였다.
선생님들로부터 예쁨을 받았고, 인기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와중에 내 짝꿍이란 녀석은, 공부는 별로였고. 뚱뚱한 녀석이었다.
그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거나 뚱뚱한 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녀석은 나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깐족거리거나 놀리기 십상이었고, 아주 성가시게 했다.
피부가 까무잡잡했던 내게,
"니네 옆집에 흑인혼혈아이가 산다며? 그래서 너도 까맣냐?"
"너랑 걔랑 구별이 안된다며? 낄낄" (그런 제녀석은 나만큼 까무잡잡했다)
급기야 그아이는 교실에서 큰 소리로.
"얘들아. 얘네집 반장집에 세 산대. 반지하. 엘레리 꼴레리~"
난 분했다.
하지만, 그 분함은 우리집이 셋방살이를 해서. 반장이 주인집 아들이라서가 아니었다.
날 놀려대는 그 아이의 행동이 분할 뿐이었다.
"그래서? 맞아 나 반장집에 세산다. 왜?
니네집은 부자라며? 근데 뭐?
너 부잣집에 살아서 나보다 공부잘해?
나보다 잘났어?
디룩디룩 살만쪄가지곤!! 목욕탕에서 불어터진 돼지새끼!!"
난 반지하방에 사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이전에 살던집은 단칸방이었고,
비록 반지하라도 방 두개에 부엌 달린 그 집으로 이사해서
난 당시 참 좋았더랬다.
무엇보다 나의 부모는 그런 물질적인 환경에
의기소침하거나 부끄러움을 느끼는 못난 아이로, 나를 키우지 않으셨다.
빚을 내지 않는 범위에서,
부모님
당신들
이 입고 먹는 걸,
아껴서
나에겐
결핍을 느끼지 않도록 하셨다. (가난은 결핍이 아니다)
늘 최고라고 말해주셨고, 눈에 넣어도 안아픈 딸이라고 매일매일 말해줬다.
일곱살 터울의 오빠도 늘 든든한 호위군이었다.
무엇보다 난 당시엔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했고.
일주일에 한번 이상 상을 받는 모범생 어린이었다.
그녀석이
반장집에 세들어 산다고
나를
놀릴 때마다,
울상이 된 건, 내가 아니라 착한 반장이었다.
그 목욕탕집 아들엄마와 우리엄마는
우리가 유치원때부터 꽤나 절친한 사이였다.
내가 녀석의 행동을 일러바쳤다면, 녀석은 제엄마에게 혼쭐이 나고도 남았을 거다.
하지만, 난 하루 일과를 가족들에게 매일 종알종알 종달새처럼 읊던 아이였지만,
'반장네집 지하셋방'으로 놀림받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귀가길에 "에잇"하며 발로 운동장 흙을 튕겨 뿌연 소용돌이 한번을 만드는 걸로,
녀석을 '돼지새끼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놀림이 해소됐
지만,
그 얘기를 전해들을 부모님의 심정이 어떨지 정도는
알 수 있을 만큼의, 딱 그만큼의 철이 든 아이였다.
그렇게 1학기가 지난 뒤,
아빠의 서울 발령으로 난 전학을 가게 됐다.
당시 전학이 즐거웠던 건, 목욕탕집 녀석의 꼬라지를 다신 보지 않는다는 것.
교실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엄마가 말했다.
"목욕탕집 아들이 엉엉 울었대."
"왜?"
"왜긴? 너 전학간다고."
"그 불어터진 돼지새끼가?"
"말을 왜 그렇게 해?"
"난 걔 싫어"
"걔가 너 좋아한대. 지 엄마한테, 자기가 괴롭혀서 너 전학가는 거냐고. 어제 밤새 울었대더라"
"맞다고 그러지 그랬어"
"친구한테 왜그래? 너 좋다고 하는 애한테. 그럼 못써"
"난 그 돼지새끼 싫어"
"쓰읍!! 그러는 거 아냐. 돼지새끼가 뭐야?"
그후로도 오랬동안 그 돼지새끼는 제 엄마를 통해, 내 안부를 물어왔다.
대학을 가서, 사회인이 돼서도...
나를 한번 보고 싶다고도 했다.
됐거든.
내가 그때, "니네 집 지하셋방. 반장이 니네집 주인아들..."이라고 했을때
웅크려 울었다면, 난 너를 학교폭력 가해자로 기억했을 게다.
그리고, 그때의 돼지새끼를 이를 갈며 기억하고 있었겠지.
어쩌면 내가 그때 나약한 모습을 보였더라면,
'지하셋방' '반장이 주인집 아들'인 걸 부끄러워했다면.
몇몇 철없는 녀석들도 네게 동조하며, 놀림을 보탰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엔 난 강했고. 까칠했고.
그런 못남에 상처 받을 내가 아니었다.
난 지금도, 그 주인집아들과 목욕탕집 돼지새끼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돼지새끼' 라는 호칭이 물론 잘못된 건 알고 있지만,
60명 반친구들 앞에서,
또, 수십 수백명 다니는 복도에서,
나에게 모욕을 줄 목적으로
"얘네집 지하셋방 산대! 우리반 반장이 얘네집주인아들이래!"
"얘네 옆집에 흑인이 살아서 얘도 깜둥이야."
라는 놀림을 받은 열두살짜리 여자아이에게 잠시의 면죄부를 줬다고 생각해주십사...
그땐 어렸으니까,
너도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너의 그 행동이 누군가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 수 있다는 걸
성장과정에서라도 깨달았기를.
그때. 불어터진 돼지새끼라고 한 건 사과할게.
지금 미운 감정은 없다. 심지어 보고싶구나 친구야.
혹시 이 브런치를 읽게 된다면, 연락하렴.
그까짓 놀림에도 꿋꿋할 수 있도록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그새 구독자가 늘었네요. 감사합니다.
바쁜 일상 중에, 구독자님들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학교폭력 사례들을 보며 착잡한 생각이 듭니다.
전 대놓고 학교폭력을 당한 적은 없지만,
그 고통이 어떤 건지는 알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우리 다섯 아이들이 처음 학교갈때 가장 큰 걱정거리는
학업성적 때문이 아니라, 학교폭력의 대상이 되면 어쩌나...하는 고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학교폭력 근절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걸.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될까봐 전전긍긍할 게 아니라,
내 아이가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가르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일 겁니다.
내 아이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상대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아이로 키우는 일 말입니다.
혹시 궁금해하셨을 구독자님들께~~우리 1호 삼수생은 올해 대학에 갔고, 5호는 1학년이 됐습니다.
아이들의 일화로 조만간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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