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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많은김자까 Jun 19. 2024

엄마의 치매를 준비하기로 했다.

2년 전, 남몰래 대학병원 정신의학과에서

거금을 들여 치매와 파킨슨 검사를 받았던 엄마는,

앞으로의 진행 가능성은 있으나,

경도인지장애급도 안되는 똑똑한 할머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축제와 같은 진단을 받은 후,

그렇게 일년반이 지난 2024년 봄과 여름 사이,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나이로 팔순을 앞둔 엄마의 상태는 부쩍 나빠지기 시작했다.


몇달에 한번씩 다니는 정기검진에서,

줄곧 우울증 지수가 높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우울증...치매의 초기증상이라는 걸 알고 있고. 몇년간 의학프로그램을 구성했고, 의대교수들끼리 주고받는식의 모대학병원 팟캐스트를 5년간 구성 집필했으니, 반무당은 아녀도...의학상식은 평균보단 높은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뭐하나? 이론과 이성과 현실감각은 다른 것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도대체 병원에서 무슨 약을 처방해준 건지,

밤늦게 약을 먹고 나면, 엄마는 다음날 오후 서너시가 되도록 잠에 취해 일상생활이 어려웠다.

멍한건지 맹한건지,

도무지 엄마답지 않은 모습에

지긋지긋한 속상이 몰려왔다.


몇가지 황당한 일화들을 겪고 나서야,

난 그동안 엄마 홀로갔던 병원 진료에 동행하기로 했다.


이제껏 병원에 함께 간다고 하면,

"내가 애니?"

"누가 애래? 그러면 데려다만 줄게. 버스타고 왔다갔다 힘들잖아"

"됐어"

지긋지긋한 엄마의 자존심과 내 고집이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다가

어떤 날은 마지못해 내차를 타고 병원 앞에서 휑~허니 홀로 내렸고,

어떤 날은 병원진료가 있다는 말도 없이,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엄마는.


그랬던 엄마가 이번엔 고집을 꺾고, 나와의 병원동행을 모르는척 눈감았다.

모른척 했다기 보다, 이제 병원에 혼자갈 용기가 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엄마만 용기가 나지 않는 게 아니라,

나 역시도 용기가 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충 짐작이 가는 주치의의 진단을 듣기 위해,

마음의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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