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견디기 쉬운 고통을 찾아보실게요
이직을 한 지 4개월이 다 되어간다.
2년 반을 다닌 직장에서 나와 새로운 직장에 들어간 지 100일 하고도 한 달이 되어간다.
'이직을 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직이 해결해주는 것들도 있었다.
물론 완전히 새로운 또 다른 문제를 가지고 온다는 것은 논외로 하고서 말이다.
한순간에 이직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1% 씩 이직의 결심이 차올랐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첫 번째 순간은 첫 번째 인사고과를 받았을 때였다.
두 번째 순간은 오타 하나로 품의를 처음부터 다시 썼어야 했을 때였다.
세 번째 순간은 돈을 대하는 나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결심은 친구와의 대화였다.
사실 어쩌면 직장인인 모두가 마주하는 순간들일지도 모른다.
승진 대상자가 3명이나 있는 팀의 막내였다. 고과가 뜬 당일날 아침 '미안하다'는 상사 분들의 이야기에 쓴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지 생각했지만, 정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인가 싶기도 했다. 품의의 열이 0.1pt의 차이로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시 처음부터 품의를 올려야 했다. 처음으로 '능력'이란 게 무엇일까 진지하게 고민한 순간이었다. '일'이 무엇이고 '능력'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괜찮은 줄 알았지만 어떨 때는 나에게 생존의 위협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만약 나도 정말 승진을 해야 할 때 승진 대상자가 많은 팀에 가게 되면 어떡하지?'
객관적인 지표가 없이 상사의 평가만으로, 승진 순서만으로 인사고과가 결정된다니 취향과 능력이 엄밀히 구분되는 영역일지 의심스러웠다. '노력만으로 가능할까?' '거기에 정말 내 인생을 걸어도 될까?' 싶었다.
아무리 모든 일이 진인사대천명이라지만, 이런 분위기라면 운칠기삼이 아닌가 싶었다.
타인을 평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공정한 평가라는 게 정말 가능한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돈 앞에 작아지기 시작했다. 전세 이자를 내고, 관리비를 내고, 생활비를 충당하고 약간의 돈을 저금하고 나면 버거워졌다. 친구들과 만나 무언가를 먹을 때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사줄 때도 내 마음보다도 지갑은 항상 작았다.
그래서 어느 날 자리에 앉아 내가 원하는 삶과 내가 버는 월급의 비교표를 써보니 정말 택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의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을 막연히 부러워만 하고 있는 나 자신을 알아차릴 때,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도 이직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칼같이 9 to 6을 할 수 있었기에 매일 같이 운동을 하고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콘텐츠를 다루는 일이었고, 분명 배울 점도 너무나도 많았다.
콘텐츠를 보는 눈, 각 콘텐츠의 세일즈 포인트, 트렌드를 옆에서 실시간으로 보고 배울 수 있었다.
내 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구석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남은 99%의 1%를 채워주었다.
'어차피 인생 한번 사는 건데, 그냥 써보기라도 해. 네가 가진 불만들이 사라지진 않을 거잖아.
넌 이미 단점을 너무 명확히 알고 있어. 그건 잊어버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10년 뒤에도 그 단점은 그대로 있을 거잖아.'
그랬다. 10년 뒤에도 그 단점들이 그대로 있다면 불행해질 것이 확실했다.
그래서 그냥 지원서를 쓰게 되었다.
항상 장점을 보고 단점이 주는 힘듦에는 눈 감았었던 나에게 '객관적인 단점'은 가만히 둔다고 바뀌지 않는다는 일침을 준 건 그 친구가 처음이었다.
내가 놓을 수 있는 것, 바꾸고 싶은 것, 하지만 절대 놓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단점들을 보완해줄 최적의 선지를 찾아 지원했다.
그 과정의 지난함은 너무나 보편적인 것이라 후술 하지 않겠지만 일과 이직 준비를 겸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몇 번의 면접을 거쳐 이직을 하게 되었고,
이직을 하는 순간까지도 고민의 연속이었지만 이직 후 4개월이 지난 지금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이직이 해결해주는 것도 있다. 몇 가지는. 하지만 완벽한 직장은 없다.'
객관적인 연봉이 올랐고, 상대적으로 서류 업무가 적은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상사의 인사 평가 이외에 객관적인 지표가 더욱 강하게 적용되는 회사였다.
대체적으로 많은 것이 만족스러웠다.
빠른 흐름으로 돌아가던 전 회사에 비해 일이 마무리되는 주기도 적당해
매일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고,
전에 비해 돈 앞에 작아지지 않을 수 있었고,
상사의 평가보다도 나의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단점은 있었다.
근무 시간이 전에 비해 2-3배 가까이 늘어나 나만의 시간이 사라졌고,
직장이 원래 살던 곳과 너무나 멀어 완전히 새로운 지역에서 새롭게 적응해야만 했다.
친구 결혼식을 갔다가도 다시 회사로 돌아와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좋아하던 운동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사람마다 견딜 수 있는 고통의 종류가 다르다는 말이 와닿았다.
새롭게 찾아온 고통들이 생각보다 더 견딜만했다.
품의를 처음부터 다시 쓰기보단 긴 근무 시간을 견디는 것이 좋았고,
내 개인적인 시간이 사라져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사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 더욱 소중했다.
새벽 4시에 퇴근해 다음날 아침 10시에 다시 출근을 해야 해도
0.1pt 때문에 품의를 다시 쓰는 현실 타격에 비해 좋았다.
'이직할까 말까요?' '이직해야 할까요?'
이직의 답은 100% 자기 자신에게 있다.
완벽한 직장은 없다.
'나에게' 견딜만한 직장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직의 성패는 어쩌면 정말로, 자기 자신에게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