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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boran Oct 20. 2021

[실내의 백가지] ep8. 명상

100 things i've never done

반복된 일상에 뻣뻣해진 몸과 마음을 이완하고자, 해보지 않았던 백 가지를 행동해보며 남기는 일상 기행문. 어쩌면 실내가 아니어도 좋다. 비루해도 좋고, 지루해도 좋다. 새로운 것, 혹은 잊고 있었던 그 어떤 것이든 환영하는 경험주의 일기장.



명상, 8/100

명상은 내가 예전부터 생각했던 로망 중 하나였다. 사실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명상'이라는 행위가 나의 로망씩이나 됐었던 데에는 그만큼 나에겐 매일 명상을 하려고 마음먹는 것 마저 쉽지 않았다는 의미가 뒤따른다. 명상을 즐겨하는 사람들을 주변이나 매체를 통해 만날 때마다 나는 그것의 영험함이 정말 궁금했다. 내 시선 속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아우라가 있었다. 뭔가를 깨우친 듯 보였다기엔 과장 같지만, 어쩌면 과장이 아니다. 뭔가 깨달은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안정감과 여유가 분명히 있다. 나도 그들처럼 내적으로부터 발산되는 든든한 안정감과 자신감을 가져보고 싶었다.



<실내의 백 가지>를 연재하면서 가장 우선순위의 숙제처럼 떠오른 것 역시 명상이었다. 나에게 명상이 코 시국에도 도전 못할 일이라면, 아마도 평생 할 수 없을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제일 먼저 유튜브를 틀어 의욕 있게 20분짜리 명상 가이드를 함께해봤다. 그러나 여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안내자의 가이드가 3분쯤 진행됐을까. 갑자기 눈을 만지고 싶고, 코를 파고 싶은가 하면 평소엔 생각지도 않았던 구남친의 얼굴이 떠오르질 않나. 퇴사했던 첫 회사 부장님과의 만담까지 떠올랐다. 오늘 해야 할 일과 내일 해야 할 일들이 뒤죽박죽 섞이기도 했다. 안내자의 말이 점점 들리지 않았다.



안내자는 편안한 말투로 우리에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굳이 막아내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놔두라는데, 좀처럼 이 생각들은 도통 흐르지를 않고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갔다.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거품처럼 부글부글 끓어 올리는 느낌이 너무나도 거슬렸다. 이런 느낌으로 약 10일 정도를 진전 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뒤돌아보니 그 반복 자체가 첫 번째 진전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이제껏 참고했던 명상 영상 속 안내자의 모습처럼 나는 인센스 스틱을 피워보기도, 의자에 앉아서 해보기도, 바닥에 누워서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열 번 남짓만 반복하면 깨닫게 되는 하나가 있었다. 꾸준함은 항상 무엇이든 만들어 낸다는 점이었다. 열흘의 아침 동안 제법 꾸준히 명상을 하다 보니, 나는 나도 모르게 나만의 루틴을 비로소 가질 수 있었다.



잠들기 전 명상을 한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돈된 마음으로 잠들 수 있는 취침 전 명상 역시 꽤나 매력적이다. 내 경우에는 하루의 시작점에서 명상을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쉽게 게을러지는 나에게 하루 10분, 하루 5분 남짓의 명상은 하루의 첫 형상을 정성스럽게 빚어내리는 느낌이 들었고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오늘 하루를 귀하고 알차게 보내고 싶다는 욕구가 아주 쉽게 일렁거렸다. 명상 중 떠오르는 생각들 역시 싫지 않았다. 고정적으로 명상을 하다 보니, 고정적으로 떠오르는 공상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내가 싫어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누워있기, 일하면서 맥주 마시기, n시간 낮잠 자기, 무엇이든 많이 먹기 등.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해로운 것들을 우려하는 마음을 아침마다 떠올리고 있었다. 정성스럽게 빚어 내릴 하루의 출발점에서, 나는 그 욕구들이 딱히 반갑지 않았던 것이다.



내 마음이 어떤 점들에 고착되어 있는지 너무나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바로 명상 같다. 물론 더욱 제대로 명상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깨닫고 성장하겠지만, 나에게는 이 역시 크나큰 성장이다. 그리고 매번 느끼는 거지만 3분 명상을 하든, 5분 명상을 하든 그 시간이 참 길게 느껴진다. 명상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귀찮다는 증명이 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의 매일 일을 시작하기 전 명상을 한다.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쓰고 있던 안경의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불순물이 많던 내 마음속 물컵에서 뒤섞여있던 오만가지의 생각들이 점점 바닥으로 고요하게 침전되는 것을 느낀다. 집에 있는 날에는 무조건 누워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던 나에게 신선한 스타트를 선사해준다. 명상, 매력적이다. 쉽고 신기하다. 밖에서는 완충된 배터리처럼 에너지가 넘치다가도 집에만 있으면 쉽게 무기력해지는 이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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