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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boran Oct 21. 2021

[실내의 백가지] ep9. 걷기왕

100 things i've never done

반복된 일상에 뻣뻣해진 몸과 마음을 이완하고자, 해보지 않았던 백 가지를 행동해보며 남기는 일상 기행문. 어쩌면 실내가 아니어도 좋다. 비루해도 좋고, 지루해도 좋다. 새로운 것, 혹은 잊고 있었던 그 어떤 것이든 환영하는 경험주의 일기장.






[고성군청] 9. 20.(월) 고성(14:35) 출발->서울남부터미널 도착 xx여객 버스 탑승하신 분은 고성군 보건소로 연락 바랍니다.


3박 4일간의 거제 여행에서 돌아오던 길. 고성 터미널에 10분간 정차 중이었던 버스 안에서 위와 같은 안전 안내 문자를 받았다. 몇 달만에 탄 시외버스 안에서 하필 시외버스 내 확진자 동선 문자를 받게 되다니. 덜컥 두려워졌다. 그저 두렵기보다는 찝찝함과 불안함이 뒤섞인 마음에 가까웠다. 그 주 월요일은 일이 없는 오프였다. 나는 터미널 도착과 동시에 승강장에서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고 나면 아파트 헬스장에 갈 예정이었다. 


아무래도 찜찜한걸 보아하니 이 별거 아닌 계획에는 약간의 수정이 필요할 것 같았다. 찝찝한 버스에서 내린 다음 굳이 찝찝한 택시를 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 위를 걷는 것 말고는 별다른 근력 운동을 할 에너지도 없었던 터라, 나는 택시와 헬스장 대신 터미널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을 선택했다. 이 평범한 선택이 나에게는 별안간 무겁게 다가왔다. 어깨 위에 짐이 실제로 무겁기도 했고, 이사 온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고, 길치인 나에게 집에 가는 길은 아직 낯설었기 때문이다.





9/100, 걷기왕





터미널에서 집까지는 늘 4000원에서 4500원 사이의 요금이 나온다. 가다가 중간에 마음이 변할 것을 대비해근처 카페에 가서 4500원짜리 커피도 한 잔 사 먹었다. 몇 분쯤 걷다가 이내 마음을 바꾸고 카카오 택시를 부르는 내 모습은 상상만 해도 우스웠기 때문이다. 사실 코로나 동선 알림이 아니었더라도 오늘의 계획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던 건 맞다. 굳이 걷기 싫어서 택시로 집에 가 놓고, 집에 간 다음에는 헬스장에 가서 걷겠다는 심산 자체가. 코로나가 터지지 않았다면 나는 매번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택시에서 내린 다음 러닝머신 위를 걷는 우매한 일상을 영원히 반복했을지도 모른다. 


정문을 마주 보는 시선을 기준으로 터미널의 오른편에는 흡연 구역이 있다. 그 흡연 구역 바로 옆부터 출발하는 이 길 끝에는 자그마하게 내가 사는 아파트의 정수리가 보인다. 이 길을 본 적은 많은데, 실제로 걸어본 적은 처음이었고 이렇게 예쁜 코스모스가 만개한 모습 역시 처음이었다. 휴대폰 배터리와 이어폰 배터리가 애매했다. 갈아낄 수 있는 휴대폰 배터리가 있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충전이 필요 없는 유선 이어폰도 문득 그리워졌다. 그래도 오늘은 걷기왕이 되어보기로 결심했다. 이미 내 손의 커피는 택시비를 대신했다.





코스모스를 몇 번씩이나 찍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다 보니 아는 길이 금세 끝났다. 아는 길이 끝나고 나니 나는 막막해졌다. 하지만 막막함과 동시에 여행길에서나 느낄법한 낯선 기분들이 피어났다. 이미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길에 다다랐지만, 터미널에서 얼핏 봤던 집 방향만을 믿고 계속 걸었다. 방향만 믿고 걷다 보니 별의별 길을 다 걸어야만 했다. 폭이 내 두 다리보다도 좁은 길을 걷기도 하고, 상주 할머니 댁이 떠오르는 드넓은 논밭 사이도 걸어야 했다. 걷다 보니 누군가의 사유지 사이를 가로질러 가기도 했고, 과수원 안에 있던 멍멍이가 나를 보고 미친 듯이 짖어서 짐을 껴안고 5분이 넘도록 뜀박질하기도 했다. 웬 감나무 밭 사이를 걸은 적도 있는데, 그곳 역시 사유지였는지 수십 개의 감나무 사이에서 어떤 분이 나오시더니 '여기는 무슨 일로..?'라는 질문도 들어야만 했다. 나는 민망해하며 '터미널에서 xxx아파트로 걸어가는 중인데 길을 잃었다'라고 설명드렸다. 그렇게 나는 후회와, 설렘과, 땀과, 선크림 국물이 범벅이 된 채 사십 분째 걷고 있었다. 







내 어설픈 계산상으로는 사십 분쯤이면 집에 도착했어야 했는데, 나는 아직도 누군가의 논밭 사이에서 그저 한 방향만 보고 걷는 중이었다. 벌레라면 몸을 부르르 떨 정도로 혐오하는 나는 이날 난생처음 보는 벌레들도 3개체 이상은 만나야만 했다. 오른쪽에 매고 있던 짐가방을 왼쪽으로 옮겨 매며 나는 생각했다.

'아.. 헬스장에서 걸을걸..'






올해가 되어서야 드디어 귀여워할 수 있게 된 청개구리도 만났다. 또 다른 청개구리 한 마리는 내가 이사 온 이 동네 아파트 입구에도 거주 중인데, 밤이 되면 꼭 키패드의 불빛으로 폴짝폴짝 뛰어온다. 나는 그 친구를 볼 때마다 온몸을 부르르 떨며 소리를 질렀고, 그런 나를 보며 정환이는 '청개구리는 귀엽지 않나? 공기 좋은 곳에만 오는 앤 데..'라고 말하며 전혀 위로 안 되는 위로를 해주곤 했다. 매일 보고 또 보다 보니 청개구리는 (뛰지만 않으면) 어느새 나에게도 귀여운 존재가 되었다. 하필 정환이가 영국에 가고 없는 이 시점, 길바닥에서 다른 동네 청개구리를 만나니 별안간 정환이가 보고 싶어 졌다.






논밭을 끝도 없이 걷다 보니 도로가 나왔다. 인도도 없는 도로를 피해 풀밭을 푹푹 밟아가며 걷다 보니 이런 표지판도 발견했다. 이 동네에 트레킹 길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던 나에게 이 트레킹 표지판은 알 수 없는 힘을 선사했다. 똑같은 걸음인데 기분만 달라지는 묘한 힘. 나는 이 시점부터 '나는 트레킹 중이다.. 트레킹 중이다..'를 외며 걸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걷다 보니 결국 아파트 뒤통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시간은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택시로는 십 분도 안 걸리는데 도대체 나는 어디를 어떻게 걸어왔던 걸까.. 하지만 우울하기엔 이미 아파트의 생김새가 디테일하게 보이고 있었다. 길치는 한껏 흥분하며 그렇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발걸음을 잠깐 멈추게 했던 지점도 있다. 바로 저 컨테이너 앞에서였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외딴곳에 우두커니 서있던 컨테이너 안에서 색소폰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내가 걸으면서 이어폰을 껐던 유일한 순간이다. 그 색소폰 소리가 스피커에서 나올법한 소리가 아니라, 상당히 어설픈 소리였기 때문이다. 저 컨테이너 안에서 누군가 색소폰을 들고 연습 중이라는 뜻이 되겠다. 컨테이너 안의 누군가는 스티비 원더의 'isn't she lovely'를 연습 중이었다. 연습이 잘 되지 않았는지 'I never thought! through love~ we'd be~'부분을 무한 반복 중이었는데, 문득 아빠의 색소폰이 떠올랐다. 


상촌 큰집에는 큰아빠의 앰프와 건반, 색소폰, 드럼, 꽹과리 등 국적을 가리지 않는 여러 악기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매년 명절마다 우리 연안 이씨 가족은 노래자랑과 음악회에 참여해야 한다. 내 생일은 설날 근처인데, 어느 해에 내 음력 생일과 설날이 딱 맞아떨어진 날이 있었고 그날은 귀가 째지도록 앰프에서 생일 축하 노래가 나왔다. 큰집의 이런 분위기는 이색적이면서도 자랑스럽다. 그런데 큰아버지는 몇 해 전부터 몸이 부쩍 안 좋아지셨고, 색소폰을 불기 어려운 몸상태가 되었다. 얼마 전, 6남매 중 막내인 우리 아빠는 큰 형의 색소폰을 받아왔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색소폰을 부는 것은 층간소음이 주는 민폐의 이백 배쯤 달할 것이다. 어차피 잘 불지도 못하는 색소폰. 아빠는 색소폰의 입구 부분만 분리해서 차에서 뿌-뿌- 불고는 한다. 청개구리를 마주쳐서 남편이 보고 싶고, 색소폰 소리가 들려서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니. 고작 터미널에서 집에 가는 길이었지만 길치에게는 그 길이 그만큼이나 낯설고 멀었던 모양이다.






드디어 아는 길이 나왔다. 나는 '와 ㅆ...'를 외치며 홀로 감격했다.






누군가 덩그러니 정차해둔 전동 킥보드도 만났다. 이렇게 생긴 스쿠터를 프랑스에서 처음 타봤다. 이 동네의 전동 킥보드 이름은 'deer'이지만, 파리에서는 'lime'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손짓 한 번에 시속이 25km까지나 올라가던 무시무시한 스쿠터. 나는 까무러치게 놀랐고,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몇 달쯤 지나자 그 무시무시했던 스쿠터가 스멀스멀 보이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질겁했던 기억 때문인지 나는 평소에 이 킥보드를 타고 질주하는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는데, 내가 이 스쿠터를 아까 그 논밭에서 만났더라면 아마도 고민 끝에 냉큼 타지 않았을까.


그렇게 땀을 두 바가지는 흘린 채로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한 시간 반만의 일이었다. 길을 잃어도 제대로 잃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방향 하나 믿고 걸었더니 집이 나온 게 용하다. 나침판이 괜히 있는 게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야매 걷기왕은 샤워를 했다. 미지근한 물에 땀범벅인 몸을 씻어내다 보니 어느새 피로는 말끔히 녹아 없어졌다. 그림 같던 풍경과 귀여운 청개구리, 그리고 아빠를 보고 싶게 만들던 색소폰 소리만 남았다. 코시국이 준 선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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