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things i've never done
반복된 일상에 뻣뻣해진 몸과 마음을 이완하고자, 해보지 않았던 백 가지를 행동해보며 남기는 일상 기행문. 어쩌면 실내가 아니어도 좋다. 비루해도 좋고, 지루해도 좋다. 새로운 것, 혹은 잊고 있었던 그 어떤 것이든 환영하는 경험주의 일기장.
가려던 카페에 사람이 꽉 찬 것을 보고, 문득 카페 바로 옆에 있던 자판기 커피를 뽑아 먹은 적이 있다. 카페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고 그저 카페인 가득한 커피 한 잔이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스크를 내렸다 올리며 커피를 먹자니, 결코 여유롭게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대학 시절에는 하루 한 잔 꼭 뽑아 먹었던 200원짜리 밀크 커피는 어느새 500원이 되어 있다. 호호 불며 먹는 종이컵 커피 한 잔의 연기에 별안간 대학 시절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자판기 커피 한 잔이 가져다준 단상이다.
어릴 적 나는, 문득 '자판기'와 비슷한 존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전이 많이 필요하고, 어딘가 이기적인 자판기였다. 친구들이 이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나는 동전을 넣은 친구가 좋아할 법한 이야기를 선별해서 꺼내 주곤 했다.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좋아하는 친구라면 그저 들어주고, 비판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친구라면 최대한 신랄한 이야기를 골라 꺼내 주었다. 화기애애한 이야기를 원하는 친구라면 우리 가족의 시트콤 같은 일화들을 꺼내 주었고, 자신의 고민에 대해 같이 고민해주기를 원하는 친구라면 기꺼이 함께 고민하는 척을 해주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이 자판기는 공상이 많은 편이라, 아무 소리나 지껄이기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다행히 그 아무 소리들을 좋아했던 이들이 곁에 있었음에 다행이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라면 동전 없이도 나는 그 사람이 원하는 이야기를 꺼내 주기도 했다. 물론 그 예상이 빗나간 적도 있었고,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았는데도 내 아무 이야기에 거센 호감을 느끼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보란 자판기는 제멋대로 흥청망청 운영되고 있었다.
그렇게 내 맘대로 고장 없이 (아마 고장이 나도 난 줄 몰랐을 것이다) 롱런하던 보란 자판기는 문득 어떤 지점에 다다랐다. 운영 방침과는 조금 다른 손님들의 피드백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자판기는 동전 하나를 넣으면 정확히 마음 하나를 내어주는 확고한 방침이 있었는데, 재방문 시 1.5를, 그다음 방문에는 2개의 동전을 들고 오는 이들이 나타났다. 이 자판기는 고마워하기보다는 당황했다. 왜 이러는 거지? 왜 내 룰에 따르지 않는 거지? 아마도 부담스럽게 느낀 모양이다. 그럴수록 자판기는 열심히 본래의 규칙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 열 번 두드리면 녹아버리는 자판기였다. 단골손님들이 남기고 가는 동전들이 고마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그 자판기는 타인에 대한 생각이란 걸 하게 된 것 같다. 내 규칙을 부수고 들어오는 저 사랑스러운 인물들에 대해서, 조금 더 살갑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라면 괜찮았을까. 쟤는 정말 행복한 것일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친구들의 인생에 늘 어느 정도의 거리를 뒀던 내가, 아주 가끔은 좀 더 이입해서 생각하게 되었던 순간이 이때가 아니었나 싶다. 자판기에 손과 발이 팡팡 달리고, 안에 구비해둔 음료들 외에도 다른 상품들을 조금씩 챙겨두게 된 지금의 내가 있다.
코가 빨개질 정도로 춥던 어느 겨울날. 이런 생각들을 하며 종이컵 한 잔을 다 비웠다. 빌어먹을 코로나. 사람도 마음껏 못 만나고 지겹다 지겨워- 하고 생각했던 마음이 한순간 녹아내렸던 것 같다. 가족도, 친구도, 남편도 없이 혼자 우두커니 서서 마신 커피였는데도 어쩌면 가장 든든하고 여유로웠으며 외롭지 않았던 커피 타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