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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 Sep 24. 2023

마음의 지문, 결핍

이게 나야

2021년 코로나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때 나는 타즈매니아에서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한국으로 나왔다. 한국에서 지내던 어느 날 지리산에 위치한 어떤 면사무소로부터 편지가 왔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지명이라 너무나 의아한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다. 편지의 내용은 내가 000 씨의 장녀로서 경제적으로 그를 지원을 하고 있는지 묻는 공문이었다. 내 소득증명서 제출을 요구하고, 또 조사를 위해 강제적으로 나의 개인 자산을 들여다보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000 씨는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는 했지만 나는 그에게 받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는 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엄마와 이혼을 했고 이후 엄마와 나에게 양육비라든가 생활비를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를 원망하는 건 그가 나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는 거다. 


그는 지리산 어딘가에서 생활보호대상자가 되기 위해 면사무소에 등록을 했고 관련 공무원은 절차대로 공문을 나에게 보냈을 것이다. 컴퓨터로 확인할 수 있는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내가 그의 딸로 기록이 되어있으니까 말이다. 그는 나에게 아픔이자 가시이다. 그의 부재가 나의 영혼을 얼마나 가난하게 만들었는지. 인생에서 마주하게 되는 벽들, 어떤 행동의 패턴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무력감에 지쳐버려 나는 그의 존재를 깊숙이 속으로 묻어버렸고, 그것만이 자신을 정상적인 궤도로 돌릴 수 있는 최선이라 믿었었다. 갑작스럽게 날아온 공문은 나를 깊이 흔들었다. 무자비하고 무례한 행정 절차였다.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나의 생물학적 아버지와 국가기관은 어릴 적 나를 보살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무책임했고, 그와 나의 나라도 그걸 방조했다. 


며칠 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면사무소로 전화를 해 항의를 했다. 전화기 너머 담당 공무원의 목소리는 여자였고, 이내 절차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녀는 공문에 쓰인 것과는 달리 내가 내키지 않으면 소득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대답이 너무나 허탈해서, 내 아버지가 생활보호대상자가 되건 되지 않건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을 이어갔다. 당신과 그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그가 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한 지는 모르겠으나,  그리고 그가 어떤 걸 나에게 기대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버지 없이 자라면서 또 사회생활을 하며 너무 힘들었노라고. 그를 잊고자 노력했건만 이 편지를 받은 날, 힘들었던 과거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고. 나는 나는 가감 없이 솔직한 말을 전했고 부끄러움도 잊고 엉엉 울고 있었다. 나는 아마도 그 공무원의 하루를 망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그때의 내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나의 반응은 좀 달랐을까. 내가 만약 남편에게 사랑받는 여자로서 그 공문을 받았다면 어쩌면 내 아버지에게 연민을 느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에게도 아버지가 있었다면이라는 상상을 하면서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의문이다. 공평함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걸까?(공평함이란 그저 머릿속 개념일 뿐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사는 동네를 걷다 보면 너무나 다양한 나이, 피부색, 키, 표정을 가진 사람들을 지나쳐 간다. 어떤 이는 입고 있는 옷으로 자신의 철학을 나타내고, 어떤 이는 걸음걸이로 성격을 드러낸다. 그들과 나의 공통점이라면 우린 모두 다른 배경에서 자라왔고 그 누구도 동일한 조건으로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일 거다. 서로의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의 차이가 너무나 크기에 그걸 공평이니 불공평이니 논하는 건 아무 의미 없는 일일 거다. 우리 모두는 그냥 다른 거다. 


나는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 모른 채로 끊임없이 아버지 같은 남자를 찾아다녔던 것 같다. 나는 나이가 많고 농담을 잘하고 내 생활 방식에 간섭하는 남자에게 호감을 느꼈다. 결혼 생활 동안에도 전 남편을 보며 아버지를 투영했다. 그가 잘못을 저질렀어도 나는 그를 진작에 떠나지 못했고 붙들고 있었다. 아버지의 부재로 나는 아마도 기이한 집착을 가지게 된 듯하다. 누군가는 내가 전형적인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결핍과 그 결핍이 불러일으키는 욕망, 집착이 빚은 건 그 누구와도 같아질 수 없는 내 마음의 지문일 듯. 


다양한 미술 기법 중에 마블링 기법이라고 있다. 물 위에 떠있는 유성페인트의 색이 이리저리 섞이면서 찰나의 무늬를 만들어내고 그걸 종이에 찍어낸다. 아름다운 작품들이 많이 있다. 어쩌면 어떤 거대한 존재가 결핍, 욕망, 집착, 꿈과 희망의 색을 다양한 채도와 농도로 섞어버리고 어느 순간 그의 마음에 들었을 때 찍어낸 것이 바로 나의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다시 자신에게 이야기해 준다. 이게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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