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품는 힘

숨은 채로 자라는 중입니다 7

by 유신유

「사랑은, 고치기 위함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품는 힘이다.」


누구나 사랑을 말하면서도 자꾸 누군가를

‘더 나은 사람’으로 바꾸려 한다.
조금만 더 다정했으면, 좀 더 배려했으면,

그 말투만 고치면, 그 습관만 버리면….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만든 상을 사랑하려고 했다는 걸 깨닫는다.
있는 그대로는 받아들일 수 없어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사랑하려 했던 거다.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성격만 없었으면’

‘조금만 더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다 고쳐야만 사랑받을 수 있어’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랑은 고치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품는 힘이다.

그 사람이 거칠어 보이는 날에도,
내가 망가졌다고 느껴지는 날에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 하나가 사랑의 시작이었다.


사랑은 때로 변화도 일으키지만
그 출발은 고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라는 수용이다.


누군가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있는 그대로 품는 법을 배운다.


내가 그런 사랑을 받을 사람이라면,
나도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부족한 점을 고치고,
완전하지 않은 것을 바로잡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고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겪은 사랑의 본질은 고치거나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있었다.


어릴 적 나는 가족을 변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었고, 고쳐야 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로 남은 것은 상처와 방어뿐이었다. 집을 나와 혼자 살며 달라진 것이 있다면,

누군가를 고치려는 마음을 더 이상 품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누군가를, 혹은 자기 자신을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마음의 공간’을 기르는 일이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사랑의 가장 깊은 부름은 완벽하게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확언일 것이다.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해방적인 힘이 되는지 다시, 바라본다.



사랑이라는 조건의 덫


내가 아끼는 사람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은 마음.

그 갈망은 내게도 가족에게도 자신 안에 깊이, 본능처럼 뿌리내리고 있었다.

서로를 성장하게 하고, 부족한 점을 바로잡고,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헌신이라고 믿었다.


사회가 말하는 괜찮은 사람 프로젝트에 서로가 서로를 초대하는 것처럼.

겉보기엔 이상적이고, 위대한 사랑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선의는, 종종 변질되곤 한다.


조용하지만 직설적인 말투, 상대가 화를 낼 때 침묵하는 태도,
의견을 세우기보다는 물러서는 자세, 자기 일을 지키려는 고집스러운 모습.

누군가는 그런 나를 고치려 했다.


몇 가지만 바꾸면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며,
격려하고, 타협하고, 때로는 다그쳤다.

소통에 관한 책을 추천하고, 영상도 보내주고,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의 말대로 따라가면 서로의 관계가 더 좋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의 도움은 나를 조금씩 움츠러들게 했다.

나는 방어적이 되었고, 점점 말수가 줄었다. 좌절했고, 화도 냈다.


“제발…. 그만해 줘.”


한때는 “너는 변하지 말아 줘.”라고 말하던 사람이
어느새 “이젠 좀 변해야 하지 않겠냐”라고 했다.


혼란스러웠다. 자연스럽고 즐거웠던 대화는 긴장으로 바뀌었고,

말 없는 비판이 우리 사이를 조용히 메워갔다.


심장이 점점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현실을 벗어나 웹소설 속 사랑을 붙잡으려 했다.
그 속에서는 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을까 싶어서.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이름 모를 공허감이 다시, 나를 덮어왔다.




자기 수용의 반전


어느 날, 몸이 아프고 조금씩 회복되던 시기였다.

그가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숨지 않기로 했다.


침묵 속에 앉아 있던 나는 고개를 들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내 노력이 잘되지 않는다는 것.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 변명도 없이, 담담하게, 당당하게.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야. 고집도 세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야.”


그 말은 나의 단점을 드러내는 고백이었고,
동시에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선언이었다.


그동안 나를 바꾸려던 모든 시도들이 사랑이 아니라, 통제였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는 놀랐다. 그리고 곧 기뻐했다.
“속이 시원하다”라고 말했다.

나의 진심을 드디어 들었다고 했다.


그가 기뻐한 이유를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는 줄곧 내가 내 벽을 깨고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와의 관계 안에서 15년 동안 참고, 숨고, 도망치고, 견디다 처음으로 나를 인정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혼자였으면 절대 이 벽에서 나올 수 없었을 거란 걸.

오랫동안 쌓아왔던 자기 방어를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계속된 부딪힘 속에서 그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 질문들 사이를 헤매고, 버티고, 또 걸어왔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도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보통은 이런 갈등 끝에 무너지고, 갈라서고, 끝이 나기 마련이니까.


처음엔 그가 나를 통제하려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하나의 기회였다.

진짜 나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아주 결정적인 순간.


그건 누가 만들어준 게 아니었다.

내가, 나를 위해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있는 그대로 품는다는 것


나는 나의 결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독히도 내향적이었고, 민감했으며,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나를 고치고 바꾸려고 수없이 애썼다.

그게 성장이라고 믿었고, 그 방향으로 나를 밀어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노력은 점점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나를 조건부로 사랑하고 있었다.
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때마다 타박하고, 자책하며 나를 몰아세웠다.


고치고 고쳐도 근본은 그대로였고,

완벽해지려는 그 모든 시도가 과연 진정한 자기 사랑과
함께 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걸음 물러나 보기로 했다.

내 생각과 감정을 판단 대신 호기심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약점이라 여겼던 민감함은 사실, 공감과 깊이의 원천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무력하게 만들던 지나친 생각들도 어쩌면 성찰과 양심의 뿌리였다는 걸 깨달았다.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는 압박 없이, 그저 존재하도록 스스로를 허락하자
마음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자기 수용은 성장이나 책임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자기혐오가 아닌 친절함에 뿌리내린 변화였다.


그건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이미 사랑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나를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역설적인 변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전환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사랑은 불완전하고, 취약하고, 진정성을 위한 공간을 기꺼이 마련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누군가를 고치고 싶은 충동이 들 때, 판단 없이 경청하고, 조건 없이 지지하며,
지금 이 순간의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감사하려 애썼다.

직설적인 말투 안의 은근한 따뜻함을, 고집 속에 숨어 있던 단단한 의지를,
독특함 속에서 고유한 아름다움을 조금씩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라보니, 나 또한 그렇게 보이기 시작했다.

겉은 단단해 보여도 내 안엔 여전히 사랑받고 싶은 아이가 있다는 걸.

관계는 누군가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내가 바뀌었기에 깊어졌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
그도 나에게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방식이 갈등이나 실망을 완전히 없애진 않는다.


여전히 부딪히는 순간들, 채워지지 않는 필요, 변화에 대한 바람은 존재한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순간이 교정을 위한 전쟁터가 아니라,
대화와 이해를 위한 기회가 되었다.


나는 사랑의 가장 큰 선물이 누군가를 바꾸는 힘이 아니라,
그 변화가 어려운 순간에도 함께 머물 수 있는 용기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이 원리는 나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끊임없이 나를 고치고 개선해야 한다는 압박을 조용히 내려놓자,

그 자리에 자기 연민이라는 깊은 샘이 생겨났다.

실패를 조금은 덜 두려워하게 되었고, 새로운 것을 더 기꺼이 시도하게 되었고,
나의 한계 앞에서도 스스로를 더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나 자신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걸 멈췄을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는 자유와 에너지가 흘러들기 시작했다.

사랑은 결국, "있는 그대로도 충분하다"는 조용한 확신이다.


그 사람도, 그리고 나 역시, 단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야말로 사랑의 가장 깊은 뿌리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변화의 촉매제


만약 내가 나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면,
변화할 동기란 과연 남아 있을까.

고치고, 한계를 초월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이유는 사라지는 걸까.

사랑은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이끄는 힘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사랑의 역설은 ‘수용’이야말로 진정한 변화를 위한 가장 비옥한 토양이라는 데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해도 괜찮다는 확신을 느낄 때,
우리는 변화에 수반되는 수치심과 두려움에서 자연스레 벗어난다.

그 순간, 성장은 절박한 생존이 아니라 기꺼이 나아가는 즐거운 가능성이 된다.


나는 이 진실을 내 삶에서, 그리고 내가 만난 사람들의 삶 속에서도 여러 번 목격해 왔다.

비판과 기대에 눌려 움츠러들던 친구가 무조건적인 지지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꽃을 피웠고,

방어로 단단히 닫혀 있던 사람도 내가 조용히 수용의 마음으로 곁에 머물렀을 때, 서서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 삶에서도, 가장 큰 변화와 성장은 내가 가장 사랑받는다고 느꼈을 때 찾아왔다.

그 사랑은 잠재력 때문이 아니라, 그저 ‘지금 여기 있는 나’를 사랑해 주는 데서 비롯되었다.

진정한 사랑은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조용한 확언 속에서,

변화는 강요가 아니라 안정 속에서 유기적으로 자라나기 시작한다.



포용의 실천


누군가를 바꾸려는 사고방식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의 마음으로 옮겨가는 일은
단 한 번의 결심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건 꾸준한 실천이다.

의도와 인내, 그리고 겸손을 필요로 하는 훈련이다.


고치고 싶은 충동이 피어오를 때 조용히 그것을 알아차리고,

주의를 다시 지금 이 순간으로 돌리는 것. 그것이 포용의 시작이다.

수용은 자기 자신과 타인을 깊이 있게 경청하고,

각자가 살아온 복잡한 경험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마음이다.


물론, 이런 실천이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이의 행동이 나를 아프게 하거나,
내 안의 결점이 너무 커 보여서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그럴 때면 비판하고 통제하려는 오래된 습관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도 든다.

그런데 내가 배운 가장 큰 핵심은, 수용과 방치의 차이를 구분하는 일이었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그 사람의 해로운 행동을 묵인하거나,
나 자신의 경계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경계를 세우면서도 그 사람의 아픔을 연민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진짜 수용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기 수용은 변화의 필요성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버리고 싶은 습관들이 있고, 닿고 싶은 목표가 있으며,
치유하고 싶은 상처도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자기 거절이 아닌 사랑에서 출발한 변화를 맞이한다.

나는 부족할 때조차도 내가 보살핌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계속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 여정 속에서 내가 배운 가장 강력한 진실 하나.

사랑은 고정된 감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실천이라는 것.


사랑은 상태가 아니라 선택이다.

매일의 삶 속에서, 나는 다시 묻는다.

오늘 나는 교정보다 수용을, 비판보다 연민을, 투영보다 현존을 선택할 기회를 주려고 한다.



내가 찾는 사랑


사랑이란, 누군가를 고치거나 완벽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품을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왜곡된 기대 없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바라보고,
그 존재의 가치를 조용히 확언해 주는 일.

이런 사랑은 결코 수동적이거나 자기만족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불완전함을 열린 눈과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는 큰 용기의 행위다.

통제의 환상을 내려놓고 수용의 변혁적인 힘을 신뢰하는 것.

내가 그런 방식으로 사랑할 때, 우리는 함께 성장하고, 서로를 치유하며,
진짜 친밀함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결국 조건부 사랑에서 무조건적 사랑으로 가는 길은
평생 동안 이어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그 여정은 경계와 은혜, 그리고 날마다 다시 시작하려는 작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더 깊은 관계, 더 큰 자기 연민,
무엇보다도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


내가 나를 고치려 하지 않고도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면,
그 사랑을 나도 다른 이들에게 건넬 수 있지 않을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며, 나는 이제야 사랑이 가진 가장 진정한 힘을 알아간다.

변화를 강요하지 않고, 그저 소중히 여기는 힘.


사랑이란, 그렇게 아주 조용히
누군가의 마음에 스며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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