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10년 다녀보디 답이 나온다
또 시작이다.
고등학교 때, 별명이 '미친개'였던 체육 선생님과 매우 흡사하게 생긴
우리 부장님은 저녁 6시에 가까워 오면 항상 혼잣말을 엄청 크게 한다.
"내일 갑자기 급하게 보고해야 할 문서가 생겼네! 아.. 이거 참."
어떻게 저렇게 일주일에 3일 이상, 저녁 6시에 급하게
작성할 문서가 발생하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선택지가 몇 가지 머리에 떠오른다.
하나, "부장님, 정말 제가 하고 싶은데 오늘은 너무나 중요한 선약이."
둘, "정말 제가 하고 싶은데 제가 그 분야가 유독 약해서 도움이 될 수 있을는지."
셋, "제가 하겠습니다!" (말하고 속으로 나 자신에게 미 x 놈이라고 욕할 거다.)
선택은 나의 몫이다.
한 때는 세 번째 선택지를 항상 고르던 시절이 있었다.
회사니깐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월급을 받고 있으니깐 '윗사람의 업무 = 나의 업무'라고 생각이 든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 한 5년을 생활해보니깐 상사에게 받은 것이 많았다.
'일 잘하는 예쁜 후배'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를 받았다.
'겁나 많은 업무'도 같이 받았다.
내가 자꾸 '제가 해보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니깐
내가 나대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는지
아니면 일에 미쳐있는 줄 알았는지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일 더하니깐 계속 더하라고 하더라.
과장이 되어보니 알겠다.
일을 많이 하는 친구에게 일을 더 줄 수밖에 없다.
그래야 내가 편하다.
택배 봉투 하나 보내는 것도 한번 보내본 친구가 택배 보내는 장소에 잘 갖다 놓고
복사 하나 하는 것도 한번 해본 친구가 복사기가 어디 있는지 알아서 내가 편하더라.
어쩔 수가 없더라.
자그마한 것도 한번 해본 후배한테 '저 친구가 그때 했었지'라는 나쁜 마음과 함께
더 시키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더라.
상사에게 어떤 부탁이 오면 '이 부탁을 거절해도 될까, 안 될까?'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런데 지금 거절을 안 하지?
그 부탁 또 온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나.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
너무 쫄지 말아라.
느닷없는 부탁이나 비상식적인 부탁을 하는 상사는
이미 다른 곳에서 거절당하고 뺨 맞고
나한테 온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굳이 그런 사람을 거둬서 뭐하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