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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연필 Dec 07. 2023

취중진담

그림자


글쎄 그리 취하지는 않았지만 취중진담 겸 낙서를 같이 올려본다.

그리고 너한테는 미안해서 직접 하지 못한 말을 그냥 여기에 끄적여본다.




난 너무 고지식하고 서툴러서 너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주지 못해.

내가 어릴 때부터 정말 재수가 없었던 년인 건지 날 낳아준 사람은 그 어떤 것도 남기지도 않고 도망갔어.

사실 기억에도 없어서 그냥 주워들은 것뿐이야. 그런데 참 별로야. 그 흔한 사진 한 장 없이,

세상에 있었던 건가 싶을 정도로 흔적 하나 없어. 원망도 뭐가 있어야 원망을 하지.

정말 무덤까지 가져가는 비밀로 안겨놓고 말 그대로 도망갔어.

아이러니하지만 그 사람의 흔적은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뿐이야.

각설하고.

그래서 사실 이 모든 서사는 변명을 위한 밑단이었어.

내가 너에게 함부로 하는 말과 행동.

그저 못난 나의 잘못일 뿐이라는 것.

변명도 안 되겠지?

어디서 봤는데, 아무런 마음도 미움도 들지 않고, 그 사람이 있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을 때 용서가 된 거래.

난 너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은데, 그러다가 정말 네가 날 용서한다고 하고는 아무 상관없다고 할까 무서워.

대신 내가 좋은 기억으로 쌓아줄게. 매일 노력할게. 당장 내일 달라진다고 작심일일 다짐이라도, 무너지더라도

매일 그 다짐을 세우고 실천할게.

그러니 지금 니 기억 속 괴물 같은 나를 조금만 봐주라.

부탁해도 될까.

나의 불행함이 너에게 함부로 해도 되는 무기가 아닌데, 당연한 것처럼 쏟아내고

동정을 바란 못난 나를 조금만 봐주라. 조금만…

어른인 척, 보호자의 의무를 권리처럼 휘두르려 한 나를…

미안해.


끝까지 사과하지 않고 뒤에 숨어 취중진담이랍시고 이런 말을 끄적이는 나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 주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하는 나를 조금만 봐주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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