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알려준 생활지침서 17
사실 이건 좀 위험한 장난이다. 이빨로 세계 깨문다. 그리고 앞발에 발톱이 살짝 나온다. 그래서 주먹이 못 빠져나오게 한다. 뒷발로 때리는 것도 장난 아니다. 뒷발도 발톱을 2단계처럼 내놓고 팍팍친다.
고양이도 물론 장난이기 때문에 2단계 발톱용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1단계는 평소처럼 숨기는 것이다. 그러나 버튼 하나 누르면 갑자기 장도 - 긴 칼처럼 나오는 4단계 발톱을 갖고 있다.
고양이랑 그렇게 놀 때는 살짝 아픈데 묘한 희열이 있다. 그리고 고양이도 장난이니까 살살 깨문다. 그러고 노는 것이다. 사실 이 놀이는 고양이가 큰 쥐를 잡고 나서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이럴 땐 발톱이 4단계로 나온다.
고양이는 내 주먹을 갖고 놀고, 난 멍하니 TV를 보곤 했다.
한국이 이제 막 개발도상국을 벗어나 중진국으로 가려던 나의 어린 시절이었다. 아침 TV에서는 '아이젠버그'라는 특촬물이 방송되었다. 일본문화가 개방되지 않았던 시기이지만 어떻게 위회 해서 한국 지상파 방송에 일본 특촬물이 방영되고는 했다. 특촬물은 하나 일본문화에서 만든 장르가 돼버렸다. 특수촬영물의 약자이다. 고질라, 울트라맨 그런 것이다. 사람이 괴물 옷이나 로봇 옷을 입고, 작은 우유 박스만 한 건물을 발로 밟아 버리는 장면들을 연출한다.
아마 미국 합작인가?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한국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그래서 AFKN이라는 미군을 위한 방송이 지상파 채널로 나왔다. 지상파채널은 순서대로 하면 AFKN 2번, KBS2 7번, KBS 9번, MBC 11번이었다. 어린이 프로그램이 별로 없었던 시절이었다. 매주 5시 30분에서 6시까지가 어린이 프로그램 시간일뿐이다. 그러나 AFKN에서는 그때 토요일 아침 7시와 일요일 아침 7시에 어린이 프로그램과 만화영화가 방송되었다. 편성시간이 2시간 정도되었던 기억이다.
AFKN을 통해서 일본 유명 특촬물 고질라를 보곤 했다. 도시가 부서지고 괴물이 나온다. 고질라는 무색무취한 괴물인가? 특이한 것은 인간 편도 아니고 괴물 편도 아니다. 그러나 가끔 나쁜 괴물을 물리친다. 선과 악은 무얼까? 고질라는 선일까? 악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심지어 내 얼굴에도 조그맣게 있다. 어릴 때 안고 놀다가 얼굴을 할 뛰었기 때문이다. 그 흉터를 성형을 할까 고민도 했다. 크게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작은 흉터가 얼굴에 있으면 관상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쓰다가 잠시 얼굴을 봤다. 10살 때 생겼던 흉은 나의 40대까지 거치면서 희미해졌다. 산전수전을 거치며 얼굴도 거칠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친 얼굴 속에 흉 자국은 미미해 보였다.
아니면 너무 늦을 걸까? 그 흉터를 성형하지 않았기에 산전수전을 거치게 된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고양이처럼 귀엽게 하얀 발을 내밀었으면 좋을 것을..
왜 그렇게 날이 서고, 불만이 많았던 시절이었을 까 싶다.
고양이처럼 필요할 때만 발톱 4단계를 드러내야 하는 데 말이다. 물론 가끔은 발톱 3단계 정도로 상대방에게 나의 존재를 알릴 때가 필요한데 말이다.
평상시 발톱을 숨기지만, 드러낼 땐 또 드러내야 한다. 그 타이밍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언제 발톱을 숨기고 언제 발톱을 보여줄지를 말이다.
이미 나의 흉은 사라졌고, 내 인생의 파도는 지금 당분간 잔잔해졌다. 얼었던 바다도 녹아 나의 배는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다. 발톱이 인생에서 이렇게 중요할 줄 몰랐다.
그래서 지난주, 긴자에서 발톱용 쓰메끼리(손톱깎기, 아버지는 늘, 평생 쓰메끼리라고 했다.)를 샀다. 잘 깎이네. 또각 - 야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