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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h Aug 08. 2022

창의력학습(하) : ep2. 수정






   아니, 아니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애 엄마가 집을 나가서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를 몰라요, 몰라.


여솔의 할머니가 갑자기 몸을 인숙 쪽으로 기울여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문 앞에 멀찌감치 서서 볼 때 젊어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렇지만은 않았다. 문신으로 새긴 짙은 눈썹과 염색한 검은 머리카락이 만화 속 인물의 것처럼, 혹은 가짜처럼 보였다. 검은 털들이 주름진 얼굴을 기묘하게 겉돌았다. 


그의 이름이 강수정이란 것을 인숙은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인숙에게 있어서 여솔의 공식적인 보호자는 최민승이었다. 비공식적으로 여솔을 돌보는 게 수정이고 해도 둘은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사이이다. 인숙은 수정의 돌봄 부재를 채우는 존재로서 왔다. 수정이 있다면 인숙은 올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자리 바꾸기를 위해 둘이 마주치는 짧은 순간에, 인숙은 수정을 ‘여솔이 할머니~’라고 불렀고, 수정은 인숙을 그저 ‘선생님~’ 하고 불렀다. 이름이 필요하지 않은 사이였다. 


  여솔이는 지 엄마가 멀리멀리 외국에 일하러 가서 연락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속삭이듯 말할 때 인숙 쪽으로 기울었던 수정의 몸은, 말이 끝나면 곧장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내 바로 앉았던 몸을 다시 급하게 기울였다. 다시 말하기 위해.


  그게, 그게 그렇게 된 지 2년이 넘었어요, 2년이.


수정은 몇 가지 단어를 두 번씩 반복하는 습관이 있었다. 수정의 그런 습관을 인숙은 그 자리에서 여솔의 엄마에 대해 들으며 알게 되었다. 여솔의 집에 들어온 지 이제 30분이 채워졌다. 


2,008원.


여솔의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수정의 말에서는 며느리를 향한 원망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미울 법도 한데. 인숙은 생각했다. 무책임하게, 자식을 놓고 연락 두절하는 엄마라니. 인숙은 생각만으로도 벌써 기분이 나빠지고 여솔이 안쓰럽게 보이는데, 수정은 차분했다. 그는 기계처럼 말했다. 여솔을 돌봐 줄 사람에게 알려줘야 할 기본 정보를 제공하는 기계. 부드럽고 주름진 기계. 어쩐지 아이의 엄마가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원치 않는 것일까? 여솔의 엄마는 도둑이거나 살인자일까? 정보가 없는 자리는 이상한 부피감을 가진 추측들이 꿰찼다. 추측이지만 인숙은 꽤나 진지하게 상황을 설정해보고 있다. 수정의 빠르고 낮은 목소리가 인숙의 귀를 지나간다. 그 사이 인숙은 자신의 짐작으로 하나의 세계를 완성했다. 여솔과 수정과 여솔의 엄마를 그 세계 안에 들여놓았다. 


그렇다면 아빠는? 안쪽 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소리가 나거나 움직임이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냄새. 늙고 낡은 것들에서, 멈추고 더는 쓰지 않는 것들에게서 나는 그런 냄새가 저 방 근처에 머물거렸다. 혹은 기운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 방문의 동그란 손잡이는 그을린 것처럼 검푸른 색이었다. 여솔 아빠. 최민승. 그 방에 그가 있었다. 화장실에 가지 않기 위해 먹지 않는지, 먹지 않아서 화장실도 가지 않는지는 알 수 없다. 인숙이 없을 때에만 방 밖으로 나오는지 원래 그렇게 방에만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인숙은 다만 그는 거기 누워있을 모습을 막연히 그렸다. 아마도 누워있을 것이다. 앉아 있을 정도라면 이렇게까지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을 리는 없겠지. 베개를 여러 개 겹치고 이불을 쌓아 올린 자리에 누워있다. 자신의 몸 위에도 이불을 덮고 쌓은 채로, 가만히. 움직이는 것은 텔레비전 위의 화면들 뿐인, 밀폐된 작은 공간. 그 모습이 그려졌다. 아마도 그려지는 그대로일 것이다. 


수정은 며느리에 관해 말했으나 정작 방에 있는 자신의 아들은 언급도, 소개도 하지 않았다. 인숙도 따로 그 방에 대해 묻지 않았다. 말하고 싶지 않으니 말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묻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여겼다. 닫힌 방과 여솔 아빠 최민승이 없는 듯 행동했다. 하나 묻지 않는 것이 예의가 맞나? 그게 예의라고 어떻게 그렇게 깔끔하게 단정할 수 있었을까? 내심 궁금하긴 했지만 인숙은 그렇게까지 속속들이 알고 싶지 않았다. 사실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그 내막을 알아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다들 그런 식으로 무심함을 활용한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심함이 동원된다. 


최민승. 돌봄 센터에 등록된 여솔 아빠로서 그의 이름은 최민승이지만, 이는 1년 전에 개명한 것으로 예전 이름은 최얼이었다. 얼. 정신의 가장 중요한 무엇을 가리키는 단어 그 단어 얼 말이다. 이름은 그의 아버지가 지었다. 아들의 이름을 얼이라고 지은 그의 아버지 최병헌은 중학교 지리 교사였다. 학교를 관둔 것은 자신이 가르치지도 않는 학생의 엄마와 연애를 하다가 보기 좋게 들켰기 때문이다. 불명예스럽게 교단을 떠났다. 불명예? 치욕? 영욕? 어떤 단어가 보다 확실할까. 그의 불륜은 교사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졌다. 아직 학생들 사이에서는 의뭉스러운 지점을 남겼는데, 학생들은 어쩐지 최병헌을 믿었다. 에이, 그럴 리가. 지리 선생님은 그럴 사람이 아니잖아. 선생님! 선생님~ 지리쌤은 왜 관뒀어요? 아이들이 큰 소리로 물었고 교사들은 끝내 답하지 않았다. 왜? 교육적인 목적의 합의로? 누군가는 그렇게 했지만, 답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왜 믿지 최병헌을? 어떤 교사는 아이들의 믿음이 못마땅했다. 아니, 그것은 정확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들은 어쩌면 아이들에게 들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런저런 말을 흘렸다. 최병헌에 관해 남겨진 말들은 학생들이 착착 주워 담았다. 믿음이 갈 곳을 잃은 교실에서 최병헌은 오직 소문의 조각들로 떠돌았다. 


교단을 떠난 최병헌은 오랫동안 괴로워했다. 떠났으나 도착할 곳이 없는 존재로서의 괴로움이었다. 무엇을 떠났는가. 그것이 문제로 남았다. 그게 끝끝내 문제였다. 불륜 그 자체보다도 그의 괴로움의 출발점이 문제였다. 전 동료인 교사들과 친척들은 그가 자신이 저지른 일로 직장을 잃고 아내와 아들을 배신한 사실에 괴로워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럴 리가. 실체는 불륜이지만 그에겐 불가피했던 순수한 사랑이었다.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따랐을 뿐인 진실한 생의 순간이었다. 그의 괴로움은 진실된 생의 상실로 인한 괴로움이었다. 최병헌은 자신이 가르치지도 않는 학생의 엄마에게 전화 걸기를 조용히 반복했다. 답하지 않는, 불가피한 순수한 사랑이 외면받으니 괴로웠다. 그럼에도 불쌍한 최병헌, 순간의 실수로 인생을 망친 최병헌, 소중한 가족의 믿음을 잃고 괴로운 최병헌… 으로 알려졌다. 그게 아닌데도. 전혀.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무엇인가가 알려졌다면 거기에는 의도가 있다. 그러니 소문이란 역시 믿을 게 못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듣기 좋은 소문을 진실로 여겼지. 오직 한 사람만이 최병헌의 괴로움의 진짜 진짜 진실을 알아챘다. 누구였을까.


얼아 아빠가 미안하다


그는 밤낚시를 떠났다가 연락이 두절되었다. 낚시의자 옆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 속에서 메모가 발견되었다. 안개가 자욱했기에 수색 작업은 진전이 없었다. 


며칠 후 강 하류에서 최병헌이 발견되었다. 낚싯줄에 목과 손목이 휘휘 감기고 셔츠와 겨드랑이 사이로 우산살이 꽂힌 모습이었다. 타살 흔적은 없었다. 자살로 결론 났다. 낚싯대와 함께 물에 빠졌다가 발버둥 치는 과정에서 낚시 줄과 주변에 떠돌던 망가진 우산 따위가 몸에 엉킨 것으로. 다른 사람이 그를 죽이기 위해 줄을 감았다고는 볼 수 없는 형상이었다. 안개가 자욱했던 밤이다. 발을 헛디뎌 벌어진 사고사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신발을 가지런히 둔 자리에서 유서가 발견된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생의 의지가 없었음이, 과거의 실수로 인한 괴로움이 자살의 동기로 여겨졌다. 알려진 소문대로 말이다. 자신이 가르치지도 않은 학생의 엄마가 바꾼 전화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최병헌이 조용히 꾸준히 애썼던 사실은 영원히 사라졌다. 그 학생의 엄마를 다시 만나고 싶어 했던 열망은 알려지지 않았다. 소문이 되지 않은 생의 의지는 존재한 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죽여버릴 거야 내가


그의 엄마이자 여솔의 할머니인 강수정은 꿈결에 울면서 그런 말을 뱉었다. 최민승이 최얼 어린이로 자라던 중이었다. 최민승이자 최얼의 아빠가 연락이 두절되었으나 아직 사체로 발견되기 전이었다. 얼은 어떤 괴상한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깼다. 아직 아침은 아니었다. 온통 깜깜했기에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대로 다시 잠을 청하며 이불을 잡아당겼다. 죽 여 버 릴 거 야 내 가. 그때 얼이 그 날카로운 목소리를 들었다. 또래보다 작고 낯빛이 어둡고 머리숱이 적고 잠도 적은 아이였다. 그는 그 말을 단 한번 들었지만 영원히 잊지 못했다. 왜냐하면 지난밤에 목이 말라 잠에서 깼을 때, 침실에 엄마가 없던 걸 생생하게 기억했기 때문이다. 밤에 집에 왜 아무도 없는가. 울면서 온 집안의 불을 환하게 켰다. 화장실 문을 열어보고 베란다를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엄마가 화장대 위에 벗어둔 파란색 긴팔 잠옷을 뒤집어쓰고 안방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두꺼운 레이스로 마감된 소매 부분이 간지러웠다. 손가락 끝으로 단추 몇 개를 한꺼번에 만지작 거리며 울었다. 엄마의 자리를 비워둔 채 아빠의 베개를 끌어안고 울다가 잠이 들었다. 축축한 베개가 차가웠다. 


얼아 일어나 왜 잠은 여기서 자니 7시야. 수정은 아침에 얼을 깨웠다. 엄마는 그 파란 잠옷을 입고 있었다. 레이스가 소매에 달린, 얼이 뒤집어썼던 그 잠옷. 수정은 방에서 나가면서 김밥을 사 왔다고 했다. 김밥을 사 왔으니 이거 먹고 학교 갈 준비를 하라고. 꿈이었나. 엄마가 김밥을 사러 나갔던 걸까. 최얼 어린이는 세수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물이 무척 차가웠다. 칫솔을 적시고 치약을 짰다. 푹, 소리가 나더니 치약이 벽으로 튀었다. 지난밤 낚시하러 간다고 나갔던 아빠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아침이었다.


얼은 매일 아침 김밥을 먹었고 쑥쑥 자랐다. 그날 이후로 그랬다. 아침을 굶지 마라. 집 앞에 있는 김밥집은 24시간 영업했다. 엄마는 그걸 사 왔다. 엄마는 아빠의 죽음으로 인해 바빴다. 아빠의 월급이 많지는 않았지만 맞벌이를 할 생각은 없던 부부였다. 결혼 전에 거쳐온 짧은 직장 생활을 끝으로 10년 가까이 집안 일만 살피던 수정은 바빠졌다. 바빴다. 바빠서 밥을 차리지 못했으나 아무리 바빠도 김밥을 한 줄 사다 놓았다. 은박지에 싸인 긴 줄이 얇고도 얇은 검은 봉지에 담긴 채로 식탁에 놓여 있고 그것은 늘 얼의 입맛에 잘 맞았다. 단무지 때문이다. 김밥을 먹을 때면 단무지를 한두 개씩 꼭 집어 먹어야 하는데 얼은 단무지가 꼭 필요한데 그 김밥은 단무지가 두 줄 들어 있었다. 뭐든 하나보다는 둘이 낫지. 흐릿한 단맛 끝에 시큼한 게 맛있다며, 매일 남김없이 먹었다.

얼은 키도 자라고 살도 찌고 머리도 시커메졌다.


  몰라보겠다 얼아.

  이제 아빠 얼굴이 나오네.


친척들이 말했다. 아빠를 닮았다는 말의 대가를 치르듯 5만 원씩 용돈을 주었다. 고모는 10만 원을 주었다. 강수정은 친척들을, 정확히는 아빠 쪽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수정은 외가 쪽 사람들이 알아봐 준 일들을 했다. 대형 수선집에서 일을 배우기도 했고, 백화점 스카프 매장에서 종일 서 있기도 했다. 보험설계사 사무소에서 보조원으로 가장 오랫동안 일했다. 


  아빠 없는 애처럼 보이는 건 싫어.


얼이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엄마가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얼은 그게 뭐가 중요해,라고 답했는데, 엄마는 얼의 답을 듣지 못했다. 애초에 그건 얼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고, 거실에서 강수정이 그의 동생이자 얼의 작은 이모와 나누는 대화 조각일 뿐이었다. 얼은 곧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런 것’이 뭔지 자신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다만 이모는 얼의 것보다 구체적으로 답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저기 원조집 아저씨를 만나보라, 너무 괜찮다~


길 건너에 있는 콩아저씨원조손두부집 사장님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이가 40대 후반이고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이모는 자신 있게 그를 추천했다. 얼이 아빠 없는 아이로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지 않길 바랐기에 강수정은 연애를 시작했다. 가능한 한 빨리 아빠가 되어 줄 만한 사람으로 그를 골랐다고 말했는데, 정말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사랑은 조금 있고 아빠는 많이 필요했고도 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의 사랑은 어려운 거니까. 조금의 사랑만 가지고 생활을 공유한다는 건 쉽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재혼에 성공한다. 결혼은 사랑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니까. 얼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봄이었다. 두부장수인 새아빠가 최병현이 남긴 아파트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어쩐지 두부 반찬이 많던 날들이었다. 아빠가 생겼지만 함께 시간을 보낼 일은 드물었다. 얼은 1학년 2학기에 학교 기숙사에 들어갔다. 김밥 대신 급식을 아침과 점심과 저녁에 먹었다. 그밖에 달라진 건 없다. 아빠가 있기는 있는 애가 되기는 되었다. 


수정은 소원을 성취한 걸까.


  선생님, 선생님 제가 우체국 갔다가 마트 들렀다가 볼일 좀 보고 올게요. 오늘은 6시까지로 두 시간만 신청했잖아요, 맞지요, 맞지. 시간 전에는 충분히 들어와요. 네네. 

  네네 그럼요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수정이 단어를 두 번씩 반복하며 말했다. 인숙도 덩달아 같은 말을 두 번씩 반복하며 답했다. 선생님, 그러면 가보겠습니다. 수정은 무엇인가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조아리며 서둘러 집을 떠났다. 집에 있다는 여솔의 아빠에 대해서는 어떤 보조적인 언급도 없이. 도망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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