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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s Jang Aug 31. 2022

행복과는 무관한 어떤 여행의 기억

 참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지만, 모든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지만 가끔씩 말도 안 되는 것들이 일상생활에 아무런 근거 없이 문득 떠오를 때 인간이란 도대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존재인가?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는 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영원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문제에 다시 한번 봉착하고야 만다.



 나 홀로 집에를 수십 번은 더 보았다. 하얀 눈 속에 덮인 겨울의 따뜻한 감성과 거리의 반짝거리는 조명들, 가족의 정과 사랑이 넘치는 곳. 왠지 빨간색 체크 스웨터를 입고 지나다니면 모두가 웃으면서 인사해 줄 것 만 같은 뉴욕은 비행기를 한 번에 타고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 중 하나, 그래서 큰맘 먹고 아끼던 보물을 고이 풀어보는 마음으로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예약한 숙소는 아침 11시 이후로 체크인이 가능하다는데, 숙소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7시, 밖의 날씨는 영하 십도, 내 몸뚱이 만한 캐리어를 끌고 맥도날드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맥도날드의 1층에서는 주문만 받고 2층에서만 음식을 먹을 수 있었는데 나의 살림살이가 든 캐리어를 꺼이꺼이 2층까지 끌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창밖의 동네 분위기가 으스스한 것이 지도가 가리키고 있는 위치는 할렘 지역이었다.


 이 맥도날드는 난방을 하긴 하는 걸까? 내가 제대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머리가 얼어서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 건지 왜 이 고생을 하는 건지 후회하는 동안 손가락 발가락 끝은 점점 얼음장이 되어갔다. 체면을 차릴 여유도 없이 큰 캐리어를 열어 옷가지를 꺼낸 후 손과 발에 돌돌 감은채 내가 불시착한 게 아닌지, 보고 싶었던 브루클린 브릿지는 갈 수 있을지 끊임없이 의심하며 30시간 같던 3시간을 버텼다.



 체크인 시간이 되어 들어간 빌딩의 1층 계단에서는 정체불명의 노숙자가 인사를 건네더니 2명이 겨우 탈 수 있을 법한 100년은 되어 보이는 엘리베이터는 고장이 났으니 캐리어를 들고 계단으로 올라가라고 알려 주었다. 에어비앤비의 호스트는 영어가 서툴렀고 물을 아껴 써야 하며 전기 코드는 항상 뽑아 놓으라고 했다. 반려견이 놀라지 않도록 실내에서는 항상 조용히 하라는 주의를 주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허기가 져 찾은 동네 마트에서는 온통 스패니쉬로 적힌 라벨 때문에 우유 하나 맘 놓고 사지 못했는데 하루 종일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돌아와 침대에 등을 대자마자 곯아떨어져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던 뉴욕 여행 1일 차의 이야기다.



 압구정에 뉴욕에서 막 상륙한 브런치 집이 오픈을 한다는 광고가 SNS에 돌아다닌다. 뉴욕 여행 3일 차에 가보았던 집이다. 무엇을 먹었는지는, 맛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여행기간 동안 먹고 마시고 보았던 것들은 시간이 지나 대부분 잊혔다.


 

 광고를 보는 순간 턱이 빠질 만큼 추웠던 맥도날드, 아주 긴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하루가 케빈에 대한 그리움과 자유의 여신상을 보았을 때의 놀라움을 제치고 먼저 떠올랐다. 어떤 일상은 아무런 이유 없이 꽤 자세히 기억되고 영원히 기억되기도 한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게 이렇게 불가해하다. 기억이라는 건 때론 행복과는 무관하게 언제 어디서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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