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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키 Feb 10. 2024

내 어깨뽕은 내가 올린다

"얘들아 이것 봐라~! 울 엄마가 나이키 후드티 사주셨다!"


어린 시절엔 가정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이 참 많았다.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 실제로 찢어진 우산을 들고 다니는 친구도 많았고 구멍 난 양말을 며칠 동안 신고 다니는 모습도 흔했다. 집이 좀 사는 친구가 마이클 조던의 최신 농구화를 신고 오는 날이면 다 같이 우르르 몰려가 땡그랗게 눈을 뜨고 구경하고 만져보고 그랬다. 그땐 그 친구의 어깨를 체크하지 않았으나 아마도 뽕이 가득 찼었을 것이다.

나도 나이키 후드티를 가져본 적이 있다. 친구가 가위로 정성스레 오려서 만든 나이키 로고조각을 500원에 샀다. 500원이면 떡볶이 한 접시 가격이다. 비싼 돈이었지만 나는 창조경제를 노렸다. 간밤에 훔친 우리 누나의 흰색 후드티 왼쪽 가슴 부분에 밤새도록 바느질해 나이키 로고조각을 붙였다.

나이키 후드티 탄생. 나는 다음날 그 수제 나이키 후드티를 입고 등교했다. 역시나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별일은 없었다. 아마도 내가 골목대장이라 누가 먼저 시원하게 짝퉁의혹을 제기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내 어깨에는 뽕이 차올랐다. 집에 돌아가서는 누나한테 두들겨 맞아서 머리에 뽕이 생겼다.


라벨 : 종이나 천에 상표나 품명 따위를 인쇄하여 상품에 붙여 놓은 조각.


라벨효과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상대의 행동을 상대가 아닌 내가 규정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사람들이 특정한 라벨 또는 정의를 부여받았을 때, 그 라벨이 그들의 행동, 성과, 또는 자아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부모가 밥을 자꾸 흘리는 아이에게 "넌 왜 그렇게 밥을 흘려? 밥 흘리지 마!"라고 말한다면 [넌 밥 흘리는 아이]라는 라벨을 붙여준 것이다. 아이는 스스로를 밥 흘리는 아이로 받아들이고 밥은 계속해서 흘리게 된다.

"우리 아들 오늘은 덜 흘렸네? 내일은 안 흘리겠다."라고 말한다면 [넌 밥 안 흘리는 아이]라는 라벨을 붙여준 것이다. 아이는 스스로 조심하게 된다. '나 밥 안 흘리는 아이인데 흘리면 안 돼'라는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오빠는 수학문제 풀 때 너무 섹시하더라."

이 말을 들은 남자는 자꾸 수학문제를 풀고 싶어 진다. [넌 수학문제 풀 때 섹시한 사람]이라는 라벨이 붙었기 때문에 그 여성 앞에서 수학문제를 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쉬는 날 소파와 등에 본드칠을 한 남편이 벌떡 일어나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오늘은 당신이 밥 좀 해!!!"보다 "당신은 요리 한번 했다 하면 어쩜 그렇게 맛있어?"가 더 효과적임을 시험해 볼 필요가 있다.


라벨효과는 칭찬화법과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칭찬화법은 이미 일어난 특정 행동을 강조하고 장려하기 위해 긍정적인 피드백이나 칭찬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며, 라벨효과는 특정 행동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개인이나 사물에 라벨을 붙여 그것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현상이다.

한 의료 분야의 연구사례를 보면, 환자에게 "품위 있는 노인"이라는 라벨을 부여했을 경우, 그들은 이러한 라벨에 부합하려고 노력했다. 즉, 더 건강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려고 했다. 반면에, "쇠약한 노인"이라는 라벨을 부여했을 때, 환자들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더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고, 그 결과로 더 나쁜 건강상태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라벨 효과가 사람들의 행동과 자아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라벨을 내가 직접 나에게 붙인다면 이것은 긍정마인드를 발휘하라는 애매한 명령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힘을 발휘한다. 라벨을 스스로에게 부여한 순간부터 해당 라벨에 부합하는 행동을 취하려고 노력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개인의 목표 설정과 동기 부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건강한 사람"이라는 라벨을 붙이면 1분이라도 운동을 더 하게 되고 콜라 한 잔이라도 덜 먹으려는 등 건강한 행동습관을 유지하는 데 더욱 힘을 쏟게 될 수 있다.

"나는 끈기 있는 사람이야."라고 반복해 외치다 보면 세뇌가 되듯이 어느새 끈기가 생긴다. 포기하고 싶다가도 "어..? 나 끈기 있는 사람인데... 조금 더 해볼까?"와 같은 심리가 작동한다.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나는 친절한 사람이야', 작가가 되고 싶다면 '나는 작가야' 등의 라벨을 스스로 붙이면 된다. 


나는 나에게 언젠가부터 '월천강사'라는 라벨을 붙여 놓았다. 월천강사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그런다고 금세 월천강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희망을 보고 가는 중이지만 월천강사는 절대 쉬운 게 아니다. 아직도 화산재처럼 남아있는 내 주변의 부정마인더들도 라벨을 선택할 때에는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래도 내 라벨을 바꾸지는 않았다. 쉽지 않다 하더라도 나는 그 목표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 목표는 내가 제일 잘 안다. 그것을 남들이 정하게 둘 필요는 없다. 


남들이 내 옷을 보고 나이키 후드티가 아니라고 하면 어떠한가. 내가 나이키 라벨을 붙이면 나한테는 그게 나이키 후드티다. 내가 직접 나의 어깨뽕을 올린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어떤 라벨을 붙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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