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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키 Jul 20. 2022

그 무엇도 사랑하지 마라.

자신을 사랑하기 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화 드래곤볼에 베지터라는 인물이 나온다. 모두가 손오공에게 열광할 때 나는 베지터를 응원했다. 나는 왜 다 가진 베지터를 가엾게 여겼을까?

어렸을 적 내가 자존심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 외계인이다.



전형적인 금수저로서 베지터라는 이름의 혹성에서 왕자로 태어나 전투 민족 중에서도 엘리트급의 전투력을 지니고 있으며 얼굴도 잘생겼고 하늘을 날 수 있다. 앞이마에 탈모가 진행되고 있고 키가 좀 작고 옷이 한 벌뿐이라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베지터 본인이 깊이 신경 쓰는 단점들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자존심이 아주 세다. 뭐든 1등을 차지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라이벌 손오공뿐이다. 순박한 손오공은 신경도 안 쓰는데 항상 혼자서 속상해하고 배 아파하고 화를 낸다. 무수히 많은 장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억지 비교를 통해 본인의 엄청난 장점들은 다 잊은 채 살아간다. 행복이나 만족이라는 것에 근접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뗄 수 없는 인연, 자존심과 자존감은 꽤 다르다. 비례하는 관계도 아니다. 오히려 높은 자존심 때문에 낮은 자존감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베지터의 경우가 그렇다. 과한 자존심이 자존감을 삼켜버렸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우리의 주변에도 꽤 많다. 나와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Y양이 그랬다.

남학생들이 약을 올리면 곧바로 토라지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다른 여자아이들과는 달리 Y양은 냅다 팔을 휘둘러 상대의 뺨을 갈겼다. 그런 시원한(?) 성격처럼 시험 성적도 항상 1등이었던 Y양이 베지터의 모습을 제대로 드러낸 건 어느 시험에서 1등을 놓쳐 버렸을 때였다. 2등임을 확인한 Y양은 마치 골 세리머니를 사전에 준비한 축구선수처럼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바닥에 내동댕이친 후 망설임 없이 발로 일곱 번을 짓밟았다. 흡사 코에서는 불길이 일었고 교실 바닥은 가루가 됐다. 작았던 우리는 숨죽여 지켜보기만 했다.



과한 자존심은 만족감을 느끼기 어렵게 만든다. 처음으로 2등을 한 Y양은 누가 뭐래도 여전히 1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또한 초등학교 때 성적 1, 2등 차이가 미래를 크게 좌우하지 않는다. 15등쯤에서 놀던 내 관심사는 오직 내가 잘하는 축구뿐이었다. 언제나 신나게 공 찰 생각만 하며 등교했다. 성적? 꼴등을 해도 축구만 하면 행복했을 것이다.

물론 Y양의 행동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공부도 잘하고 심지어 그 어린 나이에 자신을 채찍질할 줄 안다는 것은 너무나 귀한 장점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구분 지어야 하는 부분은, 느리게 달리는 말에게 좀 더 빨리 달리자는 응원의 채찍질을 하는 것과 '왜 이렇게 느려 이 자식아'라는 의미로 행하는 채찍질은 크게 다르다. 더욱이 그것이 자학의 성격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장점이라고 보기에 무리가 있다.

나와 Y양의 차이, 손오공과 베지터의 차이는 고작 모래 한 줌 차이다. 자존감 차이. 이 작은 차이가 만족과 불만족,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

자존심은 주변 사람이 나를 존중하고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다. 학교에 다녀 본 사람이라면 절대평가와 상대평가의 차이를 알 것이다. 자존심은 상대평가다. 자신에게 매 순간 등급을 매긴다. 마음가짐 자체가 ‘나는 사랑스러워’가 아니라 ‘나는 사랑스러워야 해’ 이기 때문에 매사에 기대치를 부여하고 그 결과와 성패에 따라 기분이 요동친다. 따라서 상처를 입기 쉽고 다시 회복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도 길다. 자신에게 당근과 채찍 중 채찍만 쓴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자존감은 주변 사람의 의견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절대 평가다. ‘나는 이미 소중해’로 결정이 나 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수학 공부처럼 결과보다는 과정에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다. 자존감이 높으면 행복한 시간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자존감을 높이는, 다시 말해 나를 사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 장점을 살리는 일이다. 많은 사람이 본인의 장점보다 단점에 집착하곤 한다. 스스로 한없이 작아지는 길이다.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단점을 보완하는 것보다 장점을 살려야 한다. 그 방법이 훨씬 쉽고 빠르다. 내가 무엇을 못하는지 연구하는 시간을 아껴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를 찾아 발전하려 노력한다면 자존감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그리고 자존감이 높아지면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이 쉬워진다.


살면서 가장 시급한 일은 무엇일까.


“그 무엇도 사랑하지 마라. 너 자신을 사랑하기 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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