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을 돌아본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두근두근 설렜던 신입생 환영회, 취지가 술인지 뭔지 모를 학과 MT, 체육대회, 캠퍼스 커플 등...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떠올릴만한 강렬했던 추억들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편입학을 통해 3, 4학년을 보낸 나에게는 위와 같은 추억이 하나도 없다. 요즘 말로 아싸(아웃사이더, 소외자)였다.
그래도 먼지 수북한 추억 상자 뒤져서 잘 찾아본다면 내 추억 한 가지는 바로 ‘발표’다.
다소 이기적인 성격을 띠는 대학 문화 특성상 편입생은 과제를 수행하거나 시험을 치르는 데 상당히 불리하다. 정보력에서 뒤처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찾은 내 해법은 바로 발표(PT)였다. 발표에 비중을 둔 과목은 필기시험을 못 보더라도 발표만 잘하면 A 학점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흔하다. 아싸인 나는 그런 과목 위주로 수강하며 노력에 비해 괜찮은 학점을 얻곤 했다. 후문에 의하면 발표 잘하는 편입생으로 꽤 유명했다고.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토론토 대학교에서 실시한 ‘사람이 느끼는 공포 순위’라는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바로 대중 연설(public speaking)이었다. 2위는 고소 공포.
이는 미국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대중 앞에 서야 할 때 어마어마한 긴장과 불안감을 느낀다. 최대한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하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한다.
하지만 이제는 바야흐로 자기표현의 시대다. 이미 우리 삶에서 대중 스피치의 역량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피하기보다는 부딪혀야 한다.
지금이야 스피치 강사가 되기 위해 비싼 학원도 다녀보고 관심 있게 연구도 해왔으니 잘하는 게 당연하다고 하지만 대학생 시절의 나는 무엇 때문에 발표를 잘할 수 있었을까?
‘발표 불안 극복법’
책에도, 유튜브에도, 포털사이트에도 정보는 널려있다. 발표 전 만세를 하라, 루틴을 만들어라, 경험을 쌓아라. 모두 전문가들이 말하는 확실한 노하우다. 그러나 나 스스로 꼽는 궁극의 노하우는 따로 있다. 바로 관심을 즐겨라 이다.
더 먼 기억이 떠오른다. 고등학생 때 국어 수업 시간이 조금 남아 선생님께서
“성욱아, 나와서 수업 좀 해라.”
라고 하시면 나는 친구들 앞 단상에 올라서 쉬는 시간이 되기까지 신나게 떠들었는데,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을 즐길 줄 알았기 때문인 것 같다. 대중 앞에 설 수 있었던 그 자신감의 원천이 바로 관심받기였던 것이다.
어쩌면 대학교 때 수많은 발표를 도맡아 했었던 이유도 아싸를 면해보고자 한 관심 끌기의 노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관심을 즐긴다는 말은 주인의식을 가진다는 말과 흡사하다. 관심받고 싶은 시기에 오는 증상인 중2병의 마음가짐이 ‘이 세상의 주인공은 나야’인 것처럼.
청중은 배경이지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은 마이크를 잡고 관심을 끌려는 나 자신이다. 흔히들 착각에 빠진다. 화가 난 건지 무표정인지 모를 얼굴로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이 공간의 주인이고, 이제 막 앞으로 나선 나 자신은 잠시 불려 나온 초대 손님쯤으로 여겨진다.
집에서는 언어의 마술사인 우리가 다른 곳에서는 말 한번 하는데 심장부터 십이지장까지 떨려가며 애를 먹는 이유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이 공간의 주인이고 내 앞의 청중은 내 이야기를 들으러 온 초대 손님들이다. 우리는 이 사소한 착각만 이겨내면 된다. 낯선 공간과 익숙한 공간의 심리적 안정감의 차이는 우리가 말을 잘할 수 있을지에 아주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전문가의 노하우랍시고 자신감을 가지면 됩니다 하고 한마디만 툭 던지기엔 마인드 컨트롤은 누구에게나 매우 어렵다.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최상의 컨디션을 끌어내기 위해 강의를 하기에 앞서 며칠 전 미리 강의장에 가보기도 한다. 처음 간 곳을 이미 와 본 곳으로 만드는 쉬운 작업이다.
그러면 강의 당일 나는 내 공간의 주인공이 되어 초대 손님들에게 당당한 스피치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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