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혁신의 레시피 - 6. 업무시간에 딴짓을 장려하다
구글 캘리포니아 본사, 오후 2시. 개발자 폴 부크하이트가 이메일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그의 공식 업무가 아니었다. 그의 정식 업무는 구글 광고 시스템 개발이었다. 하지만 구글에는 "20% 시간" 정책이 있었다. 근무시간의 20%는 자신이 하고 싶은 프로젝트에 사용할 수 있다는 정책이었다.
다른 회사였다면? "업무시간에 딴짓한다"며 문제가 됐을 것이다. "회사 돈 받고 개인 프로젝트 한다"고 질책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구글은 달랐다. 폴이 만든 이메일 프로그램은 결국 '지메일'이 되었다. 현재 전 세계 15억 명이 사용하는 서비스이고, 구글의 핵심 플랫폼 중 하나다.
폴의 "딴짓"이 구글을 바꿔놓은 것이다.
"딴짓"이라는 편견
대부분의 조직에서 "딴짓"은 나쁜 것으로 여겨진다. 업무시간에는 오직 주어진 업무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일에 관심을 보이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업무에 충실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혁신적인 기업들은 정반대로 생각한다. 이들은 직원들이 업무시간에 "딴짓"하기를 적극 장려한다. 심지어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왜일까? 진정한 혁신은 경계를 넘나들 때 일어나기 때문이다. A라는 분야의 지식과 B라는 분야의 지식이 만날 때, 예상치 못한 돌파구가 나타난다. 하지만 각자의 영역에만 갇혀 있으면 이런 화학적 결합이 일어날 수 없다.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사람들이 단일 분야에만 집중하는 사람들보다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이 평균 40%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틀라시안의 "ShipIt Day"
호주의 소프트웨어 회사 아틀라시안에는 분기마다 열리는 특별한 하루가 있다. "ShipIt Day"라고 불리는 이 날에는 모든 직원이 평상시 업무를 중단하고 24시간 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프로젝트에만 집중한다.
규칙은 단순하다. 업무와 관련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도 된다. 새로운 기능을 개발해도 되고, 회사 프로세스를 개선해도 되고, 심지어 취미 프로젝트를 해도 된다. 단, 24시간 후에는 무엇인가 '출시(Ship)'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
2019년 ShipIt Day에서 고객지원팀의 사라 존스는 "고객 감정 분석기"를 만들었다. 고객의 문의 내용을 분석해서 감정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응답 방식을 제안하는 도구였다. 평상시 업무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 도구는 아틀라시안의 고객 서비스를 혁신적으로 개선했다. 고객 만족도가 30% 상승했고, 응답 시간도 20% 단축되었다. 현재 이 도구는 아틀라시안의 모든 고객지원팀에서 사용되고 있다.
아틀라시안의 공동창업자 마이크 캐논-브룩스는 "가장 좋은 아이디어는 업무 경계를 넘나들 때 나온다"고 말한다.
밸브(Valve)의 "보스 없는 회사"
게임 회사 밸브에는 놀라운 정책이 있다. 직원들이 언제든지 원하는 프로젝트로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해진 업무도 없고, 고정된 팀도 없다. 직원들은 바퀴 달린 책상을 끌고 다니며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찾아다닌다.
"이번 달에는 게임 개발을 했다가, 다음 달에는 플랫폼 개발을 하고, 그 다음 달에는 하드웨어 개발을 한다"는 것이 밸브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2012년 밸브의 한 엔지니어 야니스 앤토나코풀로스는 VR(가상현실)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밸브는 게임 개발과 스팀 플랫폼 운영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VR은 '딴짓'에 가까웠다.
하지만 밸브는 야니스가 VR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을 허용했다. 심지어 관심 있는 다른 직원들이 합류하는 것도 격려했다. 처음에는 3명으로 시작된 VR 팀이 점차 커져서 20명이 되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밸브 인덱스'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앞선 VR 헤드셋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밸브는 VR 게임 시장에서도 선두주자가 되었다.
밸브의 창업자 게이브 뉴웰은 "직원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고 말한다.
쇼피파이의 "Genius Hour"
이커머스 플랫폼 쇼피파이에는 "Genius Hour" 제도가 있다. 매주 금요일 오후 1시간을 직원들이 완전히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정말 무엇을 해도 된다. 새로운 기술을 공부해도 되고, 동료와 아이디어를 토론해도 되고, 심지어 산책을 하거나 음악을 들어도 된다. 단 하나의 조건은 "평상시와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마케팅팀의 제임스 파크가 Genius Hour에 "쇼핑몰 사장님들을 위한 틱톡 가이드"를 만들었다. 당시 틱톡은 젊은 층의 전유물로 여겨졌고, 전자상거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제임스의 가이드는 쇼피파이 고객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많은 소상공인들이 틱톡을 통해 매출을 크게 늘렸다. 쇼피파이는 이를 바탕으로 틱톡과의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현재 쇼피파이-틱톡 연동은 핵심 기능 중 하나가 되었다.
쇼피파이의 CEO 토비아스 뤼트케는 "혁신은 여가 시간에 나온다"고 말한다.
자가진단: 당신의 조직은 "딴짓"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다음 질문들을 통해 조직의 창의적 자유도를 점검해보자.
업무 외 관심사에 대한 태도
□ 업무시간에는 오직 주어진 업무에만 집중해야 한다
□ 다른 분야에 관심을 보이면 "집중력 부족"이라고 본다
□ 업무와 관련 없는 공부는 개인시간에 해야 한다
□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을 격려한다
새로운 프로젝트 시작
□ 승인받지 않은 프로젝트는 절대 할 수 없다
□ 현재 업무를 완벽히 끝낸 후에만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다
□ 개인적 관심 프로젝트는 회사 자원을 사용할 수 없다
□ 직원들이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을 제공한다
창의적 활동에 대한 인식
□ "생산성이 없는 활동"은 시간 낭비로 본다
□ 즉시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 업무와 직접 관련 없는 활동은 가치가 없다고 본다
□ 장기적 관점에서 창의적 활동의 가치를 인정한다
부서 간 협업과 교류
□ 각 부서는 자신의 영역에만 집중해야 한다
□ 다른 부서 일에 관심을 보이면 "월권"이라고 본다
□ 부서 간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금기시한다
□ 부서 간 자유로운 교류와 협업을 장려한다
체크 결과:
위쪽 답변이 많다면: 경직된 업무 중심 문화
아래쪽 답변이 많다면: 창의적 자유를 보장하는 문화
파타고니아의 "서프 브레이크" 정책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에는 "Let My People Go Surfing"이라는 독특한 정책이 있다. 파도가 좋은 날에는 직원들이 언제든지 서핑을 하러 갈 수 있다는 정책이다.
처음 들으면 "업무시간에 서핑을 한다고?"라고 의아해할 수 있다. 하지만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쇼이나드는 이것이 회사 혁신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우리 직원들이 자연을 직접 경험해야 자연을 보호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서핑을 통해 바다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 등산을 통해 산의 환경 문제를 직접 목격한다. 이런 경험이 없으면 진정한 아웃도어 제품을 만들 수 없다."
실제로 파타고니아의 많은 혁신 제품들이 직원들의 개인적 경험에서 나왔다. 재활용 플리스, 오가닉 코튼 의류, 생분해성 웻수트 등은 모두 직원들이 자연 활동을 하면서 느낀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2018년 파타고니아 직원 마리아 곤잘레스가 서핑 중에 해양 쓰레기 문제를 직접 목격했다. 그녀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해양 쓰레기로 만든 의류"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현재 파타고니아의 "넷플러스" 제품 라인은 연간 2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3M의 "부트레깅" 문화 재조명
3M의 "15% 시간" 정책은 이미 유명하지만, 여기에는 더 깊은 철학이 있다. 바로 "부트레깅(Bootlegging)" 문화다. 직원들이 공식적인 허가 없이도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게 하는 문화다.
3M의 연구원들은 실험실에서 "금지된 실험"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공식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관리자의 승인이 없더라도, 예산이 배정되지 않았더라도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일단 해본다.
스펜서 실버가 "실패한 접착제"를 계속 연구한 것도 이런 문화 덕분이었다. 당시 3M은 강력한 접착제를 원했는데, 실버가 만든 것은 약한 접착제였다. 다른 회사였다면 즉시 폐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3M은 실버가 이 "쓸모없는" 접착제를 계속 연구하는 것을 허용했다. 결국 이것이 포스트잇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3M의 전 연구소장 리처드 카는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예측할 수 없는 혁신이 나온다"고 말한다.
업무시간 "딴짓" 장려하기: 5단계 실천법
조직에서 창의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한다.
1단계: 자유시간 제도화하기
구글의 "20% 시간"처럼 직원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처음에는 주당 2-3시간부터 시작해서 점차 확대한다.
2단계: 실험 자원 제공하기
아이디어를 실험해볼 수 있는 최소한의 자원(예산, 장비, 공간)을 제공한다. 큰 투자가 아니더라도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3단계: 부서 간 교류 활성화하기
정기적인 부서 간 미팅, 크로스 펑셔널 프로젝트, 로테이션 근무 등을 통해 직원들이 다양한 분야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4단계: 실패에 대한 관용 문화 만들기
자유시간에 진행한 프로젝트가 실패해도 처벌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도 자체를 격려하고 학습한 점을 공유하게 한다.
5단계: 성공 사례 포상하기
"딴짓"에서 나온 좋은 아이디어나 혁신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포상하고 홍보한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직원들이 자유로운 실험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딴짓"이 만드는 세렌디피티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뜻밖의 발견'을 의미한다. 원래 찾던 것과는 다른 것을 우연히 발견하는 일이다. 혁신사에는 이런 세렌디피티가 가득하다.
페니실린은 알렉산더 플레밍이 세균 배양 실험 중 우연히 발견했다. 전자레인지는 레이더 개발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포스트잇, 벨크로, 테플론 등 수많은 혁신 제품들이 "딴짓" 중에 발견되었다.
이런 우연한 발견들이 일어나려면 조건이 있다. 직원들이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환경,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딴짓"을 금지하는 조직에서는 이런 세렌디피티가 일어날 수 없다. 모든 것이 계획되고 통제되면, 예상치 못한 발견의 기회도 사라진다.
혁신은 경계에서 일어난다
진정한 혁신은 분야와 분야 사이, 부서와 부서 사이, 업무와 취미 사이의 경계에서 일어난다. 서로 다른 지식과 경험이 만날 때 화학적 결합이 일어나고, 그 결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혁신이 탄생한다.
하지만 각자의 영역에만 갇혀 있으면 이런 만남이 일어날 수 없다. "업무시간에는 업무만"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면, 창의적 사고의 원료가 되는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을 기회가 사라진다.
"딴짓"을 장려하는 것은 단순히 직원 복지가 아니다. 이는 혁신을 위한 전략적 투자다. 직원들이 자유롭게 탐험하고 실험할 때, 조직은 예상치 못한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의 조직에서도 "딴짓"을 장려해보자. 업무시간의 일부를 직원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하자. 그러면 지금까지 상상도 못했던 혁신이 곳곳에서 터져나올 것이다.
혁신은 통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 발견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유의 이름이 바로 "딴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