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즁 필름 Mar 23. 2024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리뷰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는 이 문장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막걸리 따위가 무엇을 알려줄 수 있다는 말이야?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동춘에게 무언갈 알려주는 것은 막걸리가 유일하다. 그래서 괴이하지만, 그래서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막걸리가 알려주는 거 맞네.


이 영화는 “내가 왜 영어를 배워야 할까?” 하는 동춘의 단순한 물음에 그 어떤 어른도 시원하게 답을 해주지 못하고, 그런 압박에 못 이겨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혼절해 버린 이야기로 시작한다. 할머니 취향으로 아침햇살이라는 쌀음료를 좋아하는 동춘은 수학여행날 소화전에서 떨어진 막걸리의 일부를 아침햇살병에 가져온다.

그 막걸리는 계속해서 거품을 내뿜는데, 창의과학 시간에 우연히 배운 모스부호가 아닐까를 떠올리는 동춘. 그렇게 각종 언어로 그 신호를 번역해 봤지만 될 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서울대에 페르시아어과가 생긴다는 입시설명에 동춘은 페르시아어까지 배우게 된다. 그렇게 그 모스부호를 페르시아어로 번역해 보니…


로또 4등의 당첨번호를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당첨금을 타니, 자신을 큰 통으로 옮겨달라 하고, 쌀과 누룩으로 더욱 풍성한 거품을 만들게 해 달라는 막걸리. 동춘은 그것에 이끌려 시키는 데로 일을 잘 수행했고, 막걸리는 동춘에게 페르시아어 말하기 대회까지 나가라는 둥의 신기한 일까지 시키게 된다.


결국 페르시아어 말하기 대회에서 1위를 기록하는데, 막걸리는 어느 날 몇 시까지 이곳으로 이동하라는 말을 한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곳은 바로 막걸리 양조장이었고, 그곳에서 막걸리가 왜 이곳에 오게 하였는지 알게 되는데…


결말이 알기 싫다면, 여기서 그만.

결말은 황당하게도 이미 수십억 년 전에 지구에 상륙한 미생물들이 지구의 발전을 지켜보며 흥미롭게 생각하다가, 생명체들을 자신들의 은하로 보내왔는데, 다른 생명체 누구도 적응하지 못했고, 거의 마지막 희망으로 남은 것이 인간. 게다가 아직 발전이 많이 되지 않은 인간 어린아이를 보내게 하기 위한 일종의 계획이었던 셈이다.


그들을 위해 협력하는 각국의 정부들의 화면이 나올 때엔 오 그럴듯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제야 자신이 그 많은 공부를 한꺼번에 하고 있는 이유가 이런 이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동춘은 그동안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밝은 웃음을 띤다.


“그래서였구나! 그래서 그 말도 안 되는 수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 거였어!”


그러자 밖에서 막걸리병을 든 각종 어린아이들이 양조장에 줄을 서있다. 모두들 동춘처럼 수많은 배움을 통해 적응력을 기르고, 각종 다른 언어까지 마스터해 온 아이들이다. 그리고 동춘은 그들의 은하로 가기 위해 양조장의 막걸리통으로 뛰어들고, 웜홀을 통과하는 모습이 보이며, 영화는 끝이 난다.


동춘이는 시종일관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어딘가 모르게 힘들어하고, 표정은 대부분 무표정이다. 그런 동춘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사랑스럽고, 귀엽게 바라볼 테지만, 사실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 유쾌하게 우울하고, 사랑스럽게 안타까운 게 그를 둘러싼 현실에 가깝다. 


부정적으로 이 영화를 바라보면, 동춘은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보일 것이고, 결국 마지막의 결론도 다른 의미로 해석될 여지도 충분하다. 그만큼 현실은 너무 냉혹하고, 이유도 모른 체 살아가며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너무도 많다. 사회의 어른으로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 또한 이 땅의 어른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어른들이 해줄 말을 막걸리가 해준다니, 이 얼마나 웃기고 슬픈 일인가.


우리나라의 말도 안 되는 사교육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마땅한 이유를 알지는 못한다. 모두가 이유를 알지 못한 상태로 이유 없는 경쟁 속에 아이들은 휘말리고, 그런 의문이 들법한 일들에 그 누구도 쉽게 답을 해줄 수 없다는 것. 말인지 막걸리인지 모를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가져다 붙여서야 그 의문이 풀릴 수 있음을 영화는 얘기하고 있다.


어른들도 모두들 길을 잃었다. 아이의 단순한 물음에 답변해 줄수도 없고, 스스로도 끝이라는 생각에 겨우 잡은 것이 아이라는 동아줄인 동춘의 엄마. 그녀의 오빠는 멀리 나가서 잘 사는 줄 알았지만, 부랑자가 되어 떠도는 신세다. 동춘에게 무엇인가 문제가 생긴 걸 알고 찾아간 상담소에선 자신이 시키는 학원들을 나열하다가 “미친 엄마” 같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니 말이다.


우리에게 말도 안 되는 대답이라도 해줄, 막걸리는 어디에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