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즁 필름 Jul 18. 2022

<헤어질 결심> 냉온탕과 박찬욱

헤어지지 못하겠는 이 영화에 대하여 #3 - 수완과 연수

안녕하세요. 이 리뷰는 먼저 #1 왜 제목이 <헤어질 결심>일까? , #2 <헤어질 결심>은 왜 그리 웃길까? 을 보고 오시면 더욱 좋습니다. 그 이유는 이 글은 저 두 글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영화를 보는데 왜 완전히 다를까요? 그건 이 영화는 볼 때마다 너무나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현재 <헤어질 결심>을 영화관에서 5회 관람했습니다. #1은 처음 보고 느낀 감상을 옮기려 노력했고, #2는 2-3번째의 감상을 담으려 했습니다. 이번 #3은 영화를 4번째 보았을 때에야 느낀 점들을 위주로 풀었습니다.


그건 제가 이 리뷰의 흥행을 위해 작위적으로 꾸민 일이 아닙니다. 진짜 이 영화는 볼 때마다 달라집니다. 왜냐면 여러 가지 층으로 감성들을 나눠서 배치해놓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러한 얘기도 다른 리뷰로 언급할 날이 있을 것이라 기대해요. 제가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저를 포함해)에게 바라는 것은 부디 이 영화를 한 번 더 볼 마음이 생기기를 이라는 소망을 담았습니다.


만약 영화가 재밌었다면, 꼭 한 번 더 봐보세요. 놀라운 일이 벌어질 거라 확신합니다.


가장 먼저 밝혀둘 것은, 이 리뷰는 제가 사랑하는 영화에 대한 가장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개인적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맞지 않을 수 있고, 또한 제 감성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저에게 가장 소중한 글 이기도 합니다. 부디 친절한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그리고, 이 글은 카페노노에서도 똑같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포스터 아래로는 이 영화의 강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해준은 의심보다 관심이긴 하다.

냉탕편. 그 대비의 이유

이 영화는 철저하게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대비를 보여준다. 웃기다가 섬뜩하고, 설레다가 슬프다. 대표적으로 영화의 초반과 후반. 높은 산과 깊은 바다. 해준의 사랑과 서래의 사랑. 수완과 연수. 해와 안개. 초밥과 핫도그 등등 말이다.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힘들 정도다. 영화는 거의 모든 것에서 두 가지의 대비된 것을 항상 연결시켜 놓는다. 앞선 리뷰에서도 표면적인 대사와 그것과 다른 이중적인 뜻에 대해 언급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연출에서도 항상 그런 이중적인 상황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말하기 전에, 나는 항상 이 영화를 이중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문학에 여러 가지 뜻이 있다 말할 때엔 중의적이라고 말한다. 그게 훨씬 자연스럽고 유연하며, 긍정적인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굳이 부정적인 의미의 이중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것이 더 이 영화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냉탕과 온탕은 같이 한 탕 안에 존재할 수 있을까? 없다. 냉탕과 온탕에 들어가며 '아 시원하다'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것은 중의적인 것이다. 하지만 마치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한 탕 안에 냉온탕은 존재할 수는 없다. 그렇게 이 영화에서는 같이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을 항상 같이 등장시킨다.


마치 안개와 해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서래와 정안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해준과 기도수, 임호신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수완과 연수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관심 가는 여인과 용의자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홍산오와 오가인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서래가 입은 드레스가 초록색이면서 동시에 파란색일 수 없는 것처럼. 미결된 사건은 해결된 사건이 아닌 것처럼.


헤어질 결심과 사랑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서래와 해준이 같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이 넷의 표정이 다 다르다. 연기의 신들

이렇듯 이 영화는 항상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을 연결하고, 그 결과를 지켜본다. 그리고 애초에 동시에 존재하지 못하게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의 모든 것들을 표현할 때. 중의적이기보다는 이중적이다. 두 개가 겹쳐있지만, 이내 하나밖에 남지 못한다. 이 영화는 그 어느 것보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지만, 또한 판타지로서의 사랑이기도 하다. 사랑하지만, 결국 사랑할 수 없다. 그런 이중적인 것들의 결말은 항상 다른 하나의 소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이중적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결국은 이중으로 겹쳐있는 두 가지 중. 하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적. 모순적인 것들을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배치한 것은, 결국 그것이 사랑이 가진 가장 본질적인 속성이며, 그런 관계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이중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럼 대표적으로 가장 이중적인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서래와 해준일 것이다. 영화를 보면 서래가 사라지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난다. 그 둘의 사랑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지금 단계에서 말하기엔 너무 큰 결론이다. 나는 아직 서래의 관점에서의 <헤어질 결심>을 다 이해하거나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다음으로 가장 이중적이며, 가장 양립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면, 약간 의외의 답이 나온다.


그건 해준의 경찰 후배인 수완(부산 후배, 고경표)과 연수(이포 후배, 김신영)다.

<헤어질 결심>에서 수완, 연수는 무엇을 뜻할까?

서래가 왜 좋아요. 예뻐서?

영화를 보면서 전반부에는 수완이 나오는데, 후반부에 그의 존재는 사라진다. 그리고 연수가 등장한다. 물론 부산에서 이포로 무대를 옮겼고, 해준의 붕괴. 13개월의 시간차가 있긴 하다. 하지만 보통 영화를 만들어서 어떤 캐릭터를 등장시켰고, 그리고 수완처럼 비중 있는 캐릭터가 일시에 사라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수완과 연수는 해준의 또 다른 자아로서. 특히나 경찰로서의 해준을 상징하는 등장인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실존인물이 아니라던가 하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인물임과 동시에, 왜 그런 인물을 각기 해준의 경찰 후배로 등장시켰나 하는 것을 말해보고자 한다.


N차 관람 한 사람들은 알 텐데, 영화의 시작이 어떤 장면으로 시작하는지 기억하는가? 놀랍게도 수완과 해준이 과녁에 총을 쏘면서 시작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소설의 첫 줄을 쓰기 가장 어렵다고 하지 않았던가. 수완과 해준의 시작에서 보면, 마치 둘은 한 몸인 듯 똑같은 동작을 취한다. 과녁을 확인하고, 탄창을 확인하며 말이다. 그래서 둘은 동일인물을 말하는 것이라 가정해보자. 그럼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인다. 의도적으로 둘에게 반대의 대비를 준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잡아야지. "우리"가.

해준은 붕괴되기 전까지 품위가 있었다. 그 품위는 자기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부심으로 표현된다. 그렇다면 해준을 따라 서울에서 부산까지 따라온 수완은, 그 자부심의 상징으로 보아도 무리는 없다. 그런 상징으로 묘사되는 수완은, 해준과는 다르게 서래를 좋게 보지 않는다. 서래가 첫 등장 해서, 마침내 남편이 죽었다고 말하였을 때. 해준은 이미 반해버려 패턴을 알고 싶다는 말을 하며 하염없이 서래를 응시한다. 전편의 리뷰에서 말했듯 이미 거기서 객관적인 수사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러한 장면에서 수완은 무엇을 하고 있냐면, 그 패턴을 수첩에 적어놓고 있다.


전반부의 해준을 대변하듯 수완은 키가 크고, 동료들에게도 인정받았는지 회식자리에서 깽판을 쳐도 뭐라 하는 선배 하나 없다. 그를 꾸짖는 것은 오로지 해준밖에 없다. 경찰로서의 해준과 여자에 미친 해준이 계속해서 싸워나가는 형국이다. 경찰로서의 해준인 수완은 가혹행위를 해서라도 범인을 잡고 싶으며, 아내가 못 피우게 하는 담배를 두 개비나 한꺼번에 물고 피운다. 여자에 미친 해준이 점점 붕괴되어가니 화가 치민다. 하지만 모두가 알듯 경찰로서의 해준은 붕괴되고, 그와 동시에 수완도 극에서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진다.


수완이 이지구(질곡동 용의자, 이학주)를 따라갈 때 뒤처지는 것은 범인을 잡는 해준과 그것을 지켜보는 서래만의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 둘 사이에 경찰로서의 해준은 설자리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 자리엔 자신을 감시하는 믿음직한 해준과 그걸 보며 그에게 점점 관심을 주는 서래만이 있다. 서래에 대한 잠복을 할 때엔 항상 해준 혼자다. 미행도 해준 혼자서 한다. 서래를 심문할 때는 다른 경찰 그 누구도 개입하지 못한다. 심지어 상처를 보여주며, 사진을 찍을 때에도 여자 경찰조차 개입하지 못한다. 그만큼 경찰로서의 자아는 서래를 만나면 갑자기 확 쪼그라들어 버린다. 그건 앞의 리뷰에서 언급한 해준의 행동에서도 너무나 명확하다.


술에 취해 서래의 집에 간 수완은 인사불성이 된다. 그것은 일종의 패배 선언과도 같다. 그를 밖으로 내보낸 뒤에 해준은 어질러진 가구를 반듯하게 청소한다. 그것은 경찰로서의 해준은 패배하여 퇴장했고, 서래를 사랑하는 해준만이 남아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 뒤로 해준은 완전히 수완과의 연결이 없어진다. 정말 모순적이게도 그것은 홍산오(질곡동 사건 범인, 박정민)에게 칼빵을 맞는 수완과는 반대로 홍산오와 오가인의 관계를 예측해서, 그를 추적하게 하는 서래로 완벽히 대비된다. 원래 해준과 수완은 항상 해준의 벽에 붙어있던 미결 사건을 해결해왔던 사이다. 그렇지만 산오가 죽은 뒤. 바로 서래가 해준의 방에 찾아와 미결 사건을 뜯어버린다. 그리고 그 이후로 수완은 다시는 스크린에 나오지 않는다. 자부심 있는 경찰로서의 자아는 완전히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형도.. 다른 짭새들이랑 똑같아요"


그래서 수완의 저 말들은 붕괴되어가는 경찰로서의 해준을 막기 위한 나름의 절규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리고 해준은 수완이 칼에 맞은 뒤 산오를 체포할 때. 경찰이긴 하지만, 산오를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그 자체로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이제 경찰로서 범인을 잡고 싶어서 공감하는 척 연기하고 있다고 보이기도 하지만, 이중적으로 경찰로서의 자아보다 여자를 사랑하는 자아가 해준을 더 움직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산오의 사랑이야기도, 무척 기구하다.
"사실 나도 좋아하는 여자가 있거든. 근데 남편이 여자를 때려. 나 그 남편 새끼 죽이고 싶어 미치겠다 아주"
"아니 여자들은 왜 그런 쓰레기 같은 새끼들이랑.. 자요? 나도 쓰레기지만"
"그러니까! 아니 네가 왜 쓰레기야. 너는 가인이 진짜 사랑하잖아. 너 가인이 때문에 다 포기한 거 아니야 씨발"


해준은 극 중 "우리"라는 단어를 단 세 번 밖에 언급하지 않는다. 영화의 초반부에 그 우리는 해준과 수완을 뜻했다. 하지만 용의 선상에서 제외된 서래에게 기쁘다며 "이제 우리가.."라고 한다. 거기에 수완의 대답과 똑같이 서래는 "우리요?"라고 대답한다. 그것은 기존 "우리"라는 단어가 수완과 해준을 뜻했다면, 이제는 그걸 뜻하지 않는다는 선언과도 같다. 이 영화에서 그냥 존재하는 장면은 없다. 영화의 첫 장면이 지난 후 수완과 해준은 이런 문답을 주고받았다. 심지어 해준이 수완의 재킷을 챙겨주며.


"질곡동 사건, 팀장님이나 1팀은 들은 척도 안 해. 우리가 해결해야지."
"우리요?"
"너랑 나"


수완과 해준을 두고 일각에서는 질투하는 후배로서의 수완이 아닌 그 이상의 마음을 가졌다고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안마기를 자연스럽게 해준에게 들이밀거나, 졸음운전하는 사람을 위해 통화해준다던지. 서운해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자주 표현한다던지 하는 부분 등이 그렇다. 영화가 다양한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그 해석에도 상당 부분 공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듯 나의 해석은 조금 다르다. 그것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수완과는 너무나 모든 것의 대비를 이루는 연수의 등장이다. 이 글의 제일 처음 언급했듯 수완과 연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수완이 완전히 사라진 뒤 나온 연수는, 똑같은 경찰 후배이자 같은 팀원으로 등장하지만, 수완과는 모든 것이 반대다.


수완은 키가 크고, 해준과 같은 남성이다. 서울말을 쓴다. 서래가 범인이라고 끝까지 의심한다. 해준을 따라 부산까지 내려왔고, 경찰을 짭새들이라고 표현해도 선배들에게 인정받으며, 해준을 존경하지만, 수사의 방향에서 내내 충돌한다. 왜냐면 그는 해준이 붕괴되기 전. 품위 있는 경찰로서의 자아. 또 다른 해준의 자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래를 의심하며, 해준과 내내 충돌한다.


해준이 우리라면서 친근하게 이야기해도, 수완은 구소산에 매달려 올라가는 해준에게 불만을 얘기만 말하며, 자신을 두고 주말에 이포로 가버린 해준에게 서운함을 내비친다. 이미 수차례 언급한 것처럼. 해준과의 충돌은 대부분 경찰로서의 해준과 다른 해준의 충돌이라고 봐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김신영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

그와 반면에 연수는 키가 작고, 해준의 반대인 여성이다. 부산말을 쓴다. 서래가 범인이 아니고,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해준이 이포로 전근을 와서 만나게 되었고, 스스로 밝히듯 이포 경찰서에서 왕따다. 의문문을 남발하지만, 시킨 일은 꼬박꼬박 한다. 그리고 해준을 의외로 응원한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외모부터 모든 것이 수완과 완벽한 대비를 이룬다.


그래서 연수는 이미 붕괴된 해준의 또 다른 자아. 붕괴되었다가 겨우 살아난 경찰의 자아이다. 그래서 오히려 해준에게 충돌하기보다 해준을 보살핀다. 그녀의 의문문은 따지는 것보다 오히려 수사의 방향을 잡아주기도 한다. 무엇인가 자신 없을 때 자기 자신에게 계속 의문을 품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자부심 있는 경찰의 자아 수완은 내내 여자의 미쳐가는 해준과 충돌하지만, 이제 붕괴에서 회복 중인 자아 연수는 오히려 첫 등장부터 해준을 띄워주며 시작한다. 원래 우울한 자아는 스스로에게 자기 연민을 품는 법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팀장님이 최연소로 경감 다신 분인데, 부산에서도 완전 에이스!"
"팀장님은 그런 것도 아십니까? 역시 최연소"


연수가 처음 등장할 때부터, 경광등이 반짝거린다. 서래가 이포로 오기를 결심했을 때에 원전 폭발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도 경고등이 반짝거린다. 그리고 서래가 이포로와 경찰서에서 오랜만에 해준을 지켜보며 애플 워치에 녹음할 때도 화재경보기가 울린다. 연속된 모든 장면에서 경보가 울리고 있는 거다. 이건 서래가 곧 다시 등장하고, 경찰로서의 해준이 또 한 번 위기를 맞는다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영화에 우연이나 그냥 등장시키는 것은 없다.


수완은 반항의 의미로 쌍 담배를 피우는 반편, 연수는 해준에게 오히려 담배를 권하기도 한다. 그리고 해준의 우울증에 대해 언급하기도 한다.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연수가 왕따일 이유는 무엇일까 많이 생각했지만, 생각나는 게 없었다. 하지만 경찰로서 모든 것을 잃은 해준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다음 대사로 자신이 왕따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우연일 리 없다 생각하게 됐다. 그러면서 경찰로서의 자아를 해준의 후배들로 묘사한다면, 정확히 모든 것들이 풀려버린다.


"사람들 말이 우울증 걸려가지고, 여 오셨다고, 범인 자살 못 막아가지고.. 하지만 완쾌하셨다고"
"담배도 안태우시면서 왜 안 들어가십니까. 왕따라고 배려하십니까?"


연수는 코믹하게 말하지만, 내내 자신감이 없다. 그러다가 그녀가 처음으로 단호한 어투로 대사 하는 장면은 어디일까. 바로 임호신이 죽은 사건을 해준에게 브리핑할 때다. 살인사건을 좋아하는(?) 해준의 자아의 설렘이 투영된 것이다. 그 뒤로도 수사를 거듭할수록 연수는 점점 자신감이 붙고, 적극적이다. 특히 사철성(철썩이)을 잡았을 때 최고조에 이른다.

은근히 증거 발견도 척척척.
"팀장님 기쁘지도 않습니까"
"이포 최초의 살인사건 우리가 해결했잖습니까. 회식장소 어디로 잡을까요?"
"해결? 누구 맘대로 해결"


경찰로서의 해준인 연수가 "우리"를 언급한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왕따였던 해준의 또 다른 자아가 회식과 기쁨을 언급한다. 하지만 해준은 아직 서래가 의심스럽다. 손 내미는 경찰로서의 자아와 해준은 또다시 싸운다. 내적 갈등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내적 갈등이 본인을 지배하게 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증상이 무엇일까? 내 생각에 그건 너무 불면과 어울린다. 안에서 싸우는 통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초반부의 해준은 경찰로서 범인을 잡지 못해서 불면에 시달렸다면, 후반부의 해준은 경찰로서의 자아와 서래를 사랑하는 자아의 충돌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어떤 게 더욱 해준을 괴롭힐까? 그건 너무나 당연히 후자의 충돌이다.


"정신 차리세요. 우리 범인 잡았습니다. 증거도 있고 자백도 받았고. 제발 그 여자에게 그만 집착하십시오.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경찰로서의 자아는 점점 자신감에 날개를 달고 있다. 해준은 이 말을 듣고, 파도 따귀를 맞는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장면은 여러 번 보면, 생각나는 게 있다. 전반부에서 해준이 수완과 아무리 충돌해도, 해준은 밀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내내 해준은 수완보다 우위에 있다. 그건 경찰로서의 자아인 수완 위에 품위 있고 자부심 있는 해준이 있다는 걸 뜻하기에 충분하다. 상하관계가 있는 거다.


그렇지만 후반부의 해준은 어떤가?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봐도 무방한 해준은 이제 경찰로서의 자아인 연수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다. 경찰로서의 자아와 해준은 완전히 분리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해준은 연수의 우위에 있지 않다. 자라 범인을 잡으러 가다가, 조심하라며 주의를 주는 것은 오히려 연수이고, 자라에 손가락을 물려버린 것은 오히려 해준이다.


결정적으로, 연수는 해준 혼자 만조 속 깊은 바다에서 실종된 서래를 찾을 때. 질문만 할 뿐 결국 그를 도우려 나타나지는 못한다. 영화의 시작에서 "우리"라며 관계 맺은 해준과 수완은, 내내 함께한다. 그렇지만 결국 경찰로서의 자신이 붕괴된 해준에게 수완은 사라져 버렸고, 대신 연수가 나타나지만, 그 둘은 수완과 해준처럼 내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연수에게 해준은 "우리"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해준이 "우리"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는 서래를 이포 시장에서 마주친 뒤 화장실에서 아내 정안과의 대화다.


"괜한 사람 의심 많이 하네 당신...?"
"그래서 우릴 싫어하지"
"우리?"
"응... 경찰"


이 대화에서 정안은 우리라는 말이 자신과 해준을 뜻하는 줄 알고 발끈하는 것도 재밌는 포인트지만, 해준이 말한 우리는 경찰을 말하는 것에 더 주목해보자. 서래에게 왜 그렇게 낙인까지 찍혀가면서도, 경찰에게 신고하지 않느냐며, 왜 경찰을 믿지 못하냐며 울분을 말하던 해준은, 결국 자신도 경찰을 믿지 못함을 인정해버린 것은 아닐까?  


처음 언급한 것처럼. 냉탕과 온탕은 한 탕 안에서 존재할 수 없다. 그 둘을 합하면 미지근한 탕이 되어버리지, 냉탕이나 온탕이 아니다. 수완과 연수의 대비로 미루어보자면, 해준은 이제 더 이상 경찰로 존재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라며 폰을 주던 서래의 말이 이걸 이해하고 나서야 얼마나 서래 입장에서 필요했던 말인지 알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해준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미 경찰로서의 자신과 해준은 분리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온탕편. 박찬욱의 블랙코미디


모든 것의 대비나 연결은 박찬욱 영화에 대부분 깊게 연관되어있다. 영화 <아가씨>에서의 가장 명대사로 평가받는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도, 망치면서 구한다는 것의 대비가 뜻하는 바가 모두 히데코와 숙희의 사랑임을 알기에 더 아름다운 대사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주임.... 남자라고?

이 영화에서 그런 식의 연결은 영화를 관통하는 제목이나 주제. 슬픈 비극적인 결말뿐만 아니라, 긴장감을 주고, 영화를 풍성하게 해주는 모든 것에 녹아 있다. 앞의 냉탕 편에서 진지한 주제인 수완과 연수에 대해 다뤄 봤으니, 온탕 편에서는 좀 더 가벼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초밥

"초밥 같은 거 사 먹자니까"
"초밥 아무 초밥이나 먹기 싫어. 나있을 때 만이라도, 따듯한 거 먹이게"
하나만 물어볼게요. 그 여자 초밥 왜 사줬어요?
"저 다리는 어려운 코스에 비하면.. 이건 뭐. 그냥 초밥 집어 먹듯이 한 칸 한 칸 잡고 오르다 보면.."


영화 안에서 초밥에 대한 언급은 이것들이다. 정안이 간단히 초밥 사 먹자는 얘기를 해준은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설레 하는 서래에게는 근사한 고급 초밥을 사준다. 비싼 거 사 먹지 말라는 말을 하던 해준에게 용의자와 초밥을 먹는 모습에 충격을 먹은 수완은 술에 취해 서운함을 얘기한다. 진짜 먹을 꺼가지고 쩨쩨하기 그러는 거 아니다.


마지막 대사는 기도수가 유튜브에 쉬운 코스에 대해 설명하면서, 마지막 다리에 대해서 얘기할 때 초밥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그 다리를 초밥 집어먹듯 오른 서래가, 기도수를 살해하고. 나중에 해준과 고급 초밥을 먹는 장면을 이어서 상상해보자. 각본을 쓴 박찬욱, 정서경님의 인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단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정안과 해준의 환장의 콜라보

해준에게 서래가 있듯, 정안에게도 이주임이 있다. 정안이 이주임을 처음 언급할 때가 언제인지 기억하는가? 바로 해준이 초밥 대신 해준 집밥을 먹으면 서다. 이 영화가 시작한 지 채 5분도 안되었을 때. 심지어 해준이 서래를 만나기도 전이다. 물론 정안을 한눈에 보여주는 신문 기사도 킬포가 숨어 있기도 하다.  "핵발전의 핵인싸. 엄마의 원전 완전 안전"

정안도 그리 떳떳하지 만은 않아
"이포로 전근 오면 안 돼? 나 매일 이런 거 먹게"
"내 옆자리 이주임 말이야. 셈 많다는. 나 걱정하는 척하면서 은근히 먹이는 거 있지. 이러더라. 주말부부 열 쌍 중에 여섯은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한다고"
"그래서 뭐랬어?"
"섹스리스 부부 중에 55%는 이혼한다는데 괜찮냐고"


이 대화에서 많은 이들은 이주임이 여성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면으로 생각한다거나, 워낙 초반부라 그냥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한 번 본 사람은 안다. 이주임이 남자라는 걸. 그리고 남편이 차려준 밥을 먹으며 하는 얘기가, 다른 남자와 했던 대화라는 걸 말이다. 웃기지 않은가? 이성 직장동료끼리 서로 각자 부부의 내밀한 이야기를 모두 안다는 것이. 우리는 주말부부야. 우리는 섹스리스야. 그런 대화를 하는 이성 직장동료는 무슨 사이일까. 뭐긴 뭐야 바람피우는 사이지. 그리고 해준도 은연중에 서래 얘기를 한다. 문제는 둘이 섹스를 한 뒤에 한 대화가 바로 이런 대화라는 것


"너 아까도 그 생각했지. 질곡동 사건?"
"아니. 젊은 중국인 여자가 산에서 죽은 사건. 늙은 남편이 불쌍하더라고"


이 둘의 대화는 이래서 예술이다. 아니 세상에 한 순간도 솔직함이 없어. 그 순간에도 바람을 감추려 무의식 중에 성별을 바꾸거나, 굳이 성별을 밝히지 않는 대화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초조해하는 정안과 삐쩍 마른 해준
"안개 낀 바다가 좋다는.. 생각? 부산 가도 바다. 이포와도 바다. 나는야 바다의 사나이!"


고장 난 해준은, 내내 서래 생각을 하다가 돌아온 뒤 정안에게 저렇게 말한다. 정말 맥락 없어 보이는 노래와 상반신 노출에 웃기지만, 정작 이 대사가 웃긴 점은. 바다를 서래로 바꿔도 너무나 말이 된다는 사실이다. 왜냐면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서래는 바다가 좋다고 했거든. 그렇다고 그걸 말하긴 싫으니까 이상한 노래나 붙여가면서 얘길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긴 눈 안 왔어?"

호미산에서 서래와 키스를 하고 돌아온 해준은, 이주임과 떠나는 정안에게 이 말을 첫마디로 말한다. 아내가 자신과의 관계를 끝장내고, 다른 남자에게 가겠다는데 하는 말이 지금 키스하고 온 장소를 잊지 못하는 말이라니. 운전하며 이포로 돌아오는 내내. 그리고 석류와 자라를 챙겨 가는 정안에게 질문하는 그 순간까지도. 서래와의 키스만을 생각하는 해준이다.


담배

"담배 피우고 싶다."
"더 늦기 전에 그 음탕한 생각을 잘라내야 돼. 도라지 말랭이 구해올게. 당신 그거 씹으면서 끊었잖아. 어 이주임~"


해준이 말한 이 담배는, 사실 바람피우고 싶다로 말해야 맞다. 정말 본 뜻은 서래한테 연락하고 싶다거든. 그런데 부리나케 도라지 말랭이 구하는 정안이 전화하는 상대는 이주임이다. 그 섹스리스 석류 자라의 이주임. 아마 정안도 어떤 구실을 삼아 이주임에게 연락하고 싶었는데, 마침 잘된 일일 테지. 그렇게 이주임과 전화를 하며 떠나는 정안을 보고, 해준은 서래에게 문자를 보낸다. 그다음은 집에 오라는 서래에게 면도하면 달려가는 그를 볼 수 있다.


"킁킁킁.. 폈지! 담배!"


담배는 참 백해무익한 것이, 담배와 바람은 참 동의어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담배는 바람보다도 더 나쁘게 언급되기도 한다.


"살인은 흡연과 같아서, 처음이 가장 어렵다고요.."


이쯤 되면 한국 담배 인삼공사에서 박찬욱 영화에 후원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호미산. <헤어질 결심>의 절정


마침내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 서래가 죽은 남편의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자해를 하니 알아듣던가요?"
"마침내"

- 기도수 손톱 아래 DNA를 해명하기 위해, 말할 때

"우는구나 마침내."

- 해준이 서래를 감시하며, 서래가 고개를 숙였을 때.

"그날 밤 시장에서 우연히 나와 만났을 때. 당신은 문득. 다시 사는 것 같았죠?"
"마침내"

- 호미산 정상에서, 서래가 해준에게


이 영화에서 한 가지의 단어를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꼽을 단어. 마침내. 사용되는 뜻은 같지만, 활용되는 타이밍이 예술과도 같다. 기도수와의 일을 설명할 때의 마침내는 어떻게 보면 소름 돋게 하는 방식으로 쓰인다. 처음 봤을 땐 중국인이라 단어의 뜻을 제대로 모르나. 생각했다가도 자해를 하니 알아듣냐는 물음에 너무 정확히 게 단어를 사용해서, 오히려 소름이 돋기도 했다.


그리고 호미산에서의 마침내는. 온몸에 전율이 오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호미산에서의 대화는 전체적으로 이 영화에 절정 부니까.


이것 외에도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은 뜬금포가 터지는 장면들이다. 그냥 화면이 넘어가는 것이 아닌, 너무나 센스 있고 재밌게 표현하는 부분들이 많다.


"사람의 모든 구멍에 알을 낳습니다."

- 서래가 해준에게 개미가 사람을 먹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그 와중에 해준은 만드는 볶음밥에 계란을 터트린다. 사람을 먹는 과정에 알을 설명하며, 실제 알을 터트리는 이 센스


"당신은.. 해파리예요. 눈도 코도 생각도 없어요."

- 미 해군이 발명했다며, 해준을 재울 때 쓰는 서래의 말. 문제는 해준이 붕괴된 뒤 13개월이 지난 상담 클리닉에서 의사의 뒷면에 떠다니는 해파리. 이래서 402일 동안 서래를 잊지 못하지.


"이것은 간병인인가. 손녀딸인가? 아하하하하

- 간병인센터 실장님이 서래의 근태를 평가할 때 하는 말. 이때 이 간병인 센터의 간판 "손녀딸 간병인"



이렇듯 박찬욱의 영화에 항상 등장하는 것은, 단어의 반복으로 여러 번 사용이라던지. 아니면 전혀 다른 뜻을 가진 두 가지를 연결해놓고, 그것이 말이 되게 바꾸는 이야기 등이 있다. 특히 <헤어질 결심>에서는 그런 것들이 총망라되어있다. 모든 서사에 대비되는 면을 일부러 넣어서, 긴장감과 재미를 유도한다. 이야기의 구조 또한 그러하며, 주인공들의 슬프게 엇갈린 사랑도 그러하다. 웃긴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중의적이다 못해, 이중적이기 까지  이야기는 마침내. 비극으로 끝난다.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과 여러  보았을 때의 느낌이 다르게 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투명한 배경에 겹쳐져있는 그림을 보다가, 둘 중 하나를 없앴을 때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중적이다.







다음 연쇄 리뷰 예고

리뷰 #1 왜 제목이 <헤어질 결심>일까? 는 영화를 처음 보고 느낀 점. 이 영화가 나타내는 사랑과 오히려 반대 뜻을 가진 <헤어질 결심>이 동의어가 되는 놀라움에 대해 썼습니다.


리뷰 #2 <헤어질 결심>은 왜 그리 웃길까? 는 영화를 두 번째, 세 번째 보고 느낀 점. 해준의 입장에서의 사랑.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나와 같은 남자들의 입장에서의 사랑. 그 과정에서 여자 때문에 고장 난 해준의 입장을 풀어서 썼는데요.


이번 리뷰 #3 냉온탕과 박찬욱에서는 미처 #2에서 언급하지 못했던,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것들의 이유. 특히나 등장인물 중 주인공을 제외하고 가장 비중이 높은 수완과 연수가 어떤 것을 뜻하는지. 그리고, 대비되는 것들에 대한 재미로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리뷰의 제목은 바로, #4 <헤어질 결심> 서래는 정말 꼿꼿할까?로 정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해준이 서래를 좋아하는 이유로 언급되는 재밌고도, 중요한 대사이기도 합니다.


"서래 씨는요. 몸이... 꼿꼿해요. 긴장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똑바른 사람은 드물어요. 난 그게 서래 씨에 관해서 많은 걸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 영화를 극장에서 4-5번 보고 느낀 점이기도 합니다. 여태까지는 해준의 입장에서 리뷰를 써왔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서래의 입장에서의 글이 될 겁니다. 서래의 비극적인 선택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제 나름대로 분석하고, 그리고 함께 공감하는 글을 써볼까 합니다.


아마 #4까지 읽게 된다면, 제가 왜 이 영화를 이토록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극장에 가서 계속 보게 되는 건지. 그리고 왜 이 영화가 평생 뒤바뀌지 않을 것 같던 박찬욱의 모스트 영화. 그리고 내 인생영화가 되었는지 지 글을 읽은 분들이 함께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