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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영준 Jun 29. 2023

혹시 타고난 심리 체질을 아시나요?

조선의 MBTI로 '사상체질'을 바라보다  

'당신은 폐가 약하고 간이 큰 체질입니다.'


어디선가 한 번은 들었던 말인듯싶다. TV 방송 프로그램에서 들었나? 아니면 근처 한의원에서 들었을까? 태양인이니 소양인이니 하는 단어가 귓가에 맴돈다. 과거 조선 후기에 명의로 유명했던 허준의 동의보감이나 사상체질 같은 단어가 기억에서 희미하게 떠오른다. 어렴풋이 동의보감은 중요한 역사 문화유산이라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반면에 '사상체질'은 근처 한의원에서 들어서인지 친숙하게 다가온다.


'사상체질(四象體質)'이라는 단어는 19세기말에 등장한다. 조선 시대 무인이며 유학자로 알려진 동무 이제마(東武 李濟馬, 1837∼1900)가 집필한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에서 언급했다고 알고 있다. 사상체질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사람의 체질 특성을 4가지로 분류한다. 태양인, 소음인, 태음인, 소음인으로 4가지다.'라고 풀이한다. 학문적으로 사상체질의학 또는 사상의학이라고 불린다. 한의학계 정설로 알았던 사상체질을 호기심을 가지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본다.

  

동의수세보원에는 '사상체질'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 일순간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나? 그럼 근거도 없는 이론이었느냐는 의심마저 들었다. 바로 믿을만한 근거를 찾아서 동의수세보원 관련한 학술논문부터 살폈다. 동의수세보원 제1권 두째 편 사단론《四端論》첫머리에 사상체질에 관한 언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문을 살펴보면, '人稟臟理 有四不同 肺大而肝小者 名曰 太陽人, 肝大而肺小者 名曰 太陰人, 脾大而腎小者 名曰 少陽人, 腎大而脾少者 少陰人'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제마가 집필한 동의수세보원에는 사상체질이라는 문구 대신에 '사단(四端)'을 사용했다. 원래 '사단(四端)'이라는 접근은 고대 중국의 사상가 맹자로부터 출발해서 조선시대 성리학자 이황까지 연결했다. 성리학에서 말하는 사단(四端)이란 인간 본성을 가리키는 말로써 맹자의 사단설(四端說) 또는 성선설(性善說)에서 출발했다.


인간이란 본래부터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이를 일깨우는 실마리로서 단서 4개가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맹자의 핵심 이론으로 측은지심(惻隱之心) · 수오지심(羞惡之心) · 사양지심(辭讓之心) ·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당시 이제마는 의학자가 아닌 유학자로서 성리학에 뿌리를 둔 채로 동의수세보원의 이론을 완성해 나갔으리라. 조선시대는 성리학이 주류 학문으로서 의학과 혼재할 수밖에 없어서 당연해 보인다.


사상체질의 앞 철자인 '사상(四象)'이란 단어는 고대 중국 경전인 주역(周易, the Book of Changes)에서 연관점을 찾을 수 있다. 주역 계사전(繫辭傳) 제11장에서 “태극(太極)이 양의(음양)를 낳고, 양의가 사상(태양, 소음, 소양, 태음)을 낳고, 사상이 팔괘가 낳는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다소 전문적인 설명을 피해서 요약하면, 주역에서 언급한 '사상'이라는 학문적 근거를 가져와서 적용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체질(體質)'이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사상체질'이라는 복합어가 학문적으로 자리를 잡았으리라 사료된다.  

 

카를 융(Carl Gustav Jung)은 스위스 분석심리학의 개척자로 심리 유형(Psychology Type) 이론을 만든 인물로 알려졌다. 성격유형론 이라고도 부르는 카를 융의 성격심리학 이론은 인간 성격을 '외향성과 내향성' 2가지를 태도적 성향으로 먼저 구분하고, 다시 '합리적(사고와 감정)과 비합리적(감각과 직관)'이라는 판단 기능 2가지를 추가해서 정리했다. 이른바 카를 융의 8가지 성격유형(Jung's 8 Funtional Model)으로 일목요연하게 도식화하여 이론을 완성했다. 요즘 열풍을 몰고 있는 성격유형검사인 MBTI(마이어스 브릭스 유형지표)의 출발점이 바로 8가지 성격유형 모델이다.   


융의 성격유형론과 이제마의 사상체질론과 비교 분석한 연구는 이미 국내 학자들 사이에도 꽤 진행됐다. 기존 연구 내용을 찾아보면, 결론적으로 사상체질과 MBTI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다만 몇 가지 접근법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지만, 타고난 체질을 MBTI와 연결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 과학적으로 MBTI 이론은 그다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다만 전 세계의 관심을 모으는 대단한 인기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국 고유의 의학적 전통 유산인 사상체질 이론을 성격심리학 시각에서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사상의학은 과거 유학적 인간관을 재해석한 맞춤의학이라고 평가한다. 개인마다 심리적, 신체적, 생리적 특성에 따라 체질을 4개로 나누어 각자에게 효율적인 질병 예방과 치료 방법을 맞춤으로 제시한다는 강점을 자랑한다. 특히 심리적인 영역은 체질(體質)이라는 개념으로 '기질(氣質, disposition)'로서 학문적인 기반이나 치료 영역까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해외에 부는 선(禪) 명상 열풍'으로 미국 성인 8명 가운데 1명이 명상을 정기적으로 참여한다는 기사를 수년 전에 읽었다. 불교에서 출발한 명상이 종교를 넘어서 다양한 영역까지 영향을 미치며 세계적 열풍을 몰고 왔다. 특히 미국에서는 우울, 불안,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효과로 사회 지도층에서 명상에 심취해 있다. 아예 '명상을 한 번이라도 경험 못한 사람과는 대화조차 말라.'는 대화가 회자될 정도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전통문화라는 유사한 맥락에서 '사상의학'을 기반한 심리학적 활용을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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