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들리는 이 소리는 소쩍새의 것이었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2학년 때 파주에 처음 이사 왔던 그 무렵부터 듣던 소리다. 10년 동안 두 번 이사를 다니며 세 군데 집에 살았지만 어쩌다 보니 운 좋게도 집마다 뒷산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밤늦게까지 깨어있는 일이 많았던 내게 이 소리는 온 세상이 잠들고 오로지 나만 깨어있다고 생각할 무렵, 저 멀리서 고요함을 뚫고 조용히 그리고 점점 크게, 들려오는 소리였다. 아주 조그맣게 들려서 온 힘을 다해 귀를 기울여야 겨우 들렸지만, 한 번 귀가 트이면 청각이 온통 그 소리에 가 있어서 잠이 드는 순간까지 쫓게 되는 소리.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창문을 열어놓고 자는 계절. 그러니 소쩍새가 활동하는 4월부터 10월까지 매년 나에겐 자장가나 마찬가지였다.
너무도 익숙한 나머지 오랫동안 잊고 살았고 이따금씩 들려올 때면 내가 사는 동네가 파주라는 걸 다시금 인식시켜 주던 소리. 때론 달빛 아래 고궁을, 조선시대 어느 무렵의 한 고을의 모습을, 외로웠던 나의 유년 시절을, 이사 왔을 무렵 파주의 접경지역의 황량함을 떠올리게 만들어주던 소리.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때까지만 해도 집에서 밤샘작업이 많았기에) 내 방에서 한창 노트북 할 시간이면 들려왔던 소리인데, 언제부턴가 듣지 않게 되었고 잊어갔다.
그러다 오늘, 넷플릭스 멈춤 버튼과 함께 찾아온 정적을 뚫고 저 소리가 귓속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근래 꽤 늦게까지 깨어있는 일이 많았는데도 참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수십 년 듣고 살아온 소린데 새 이름을 모르니 미안하고도 한심해서 한참 찾았다. 웬 걸 소쩍새였다. 솥이 적어 굶어 죽은 원망의 소리를 담은 새. 솥적새에서 왔다는 전설 속 주인공. ‘소쩍(솥적)’ 하고 우는 것은 ‘솥이 작으니 큰 솥을 준비하라’는 뜻으로 해석했다는, 그리하여 풍년조(豊年鳥)라고도 불려온 새. 우리 조상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갸륵하고도 고마운, 애환과 희망을 동시에 담은 소리인 것이다.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예전엔 꽤 오래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 같더만 오늘밤은 어쩐 일인지 한 마리만 울고 있다. 마음이 조금 쓰였다. 혹시 최근 음식점이 들어서면서 산둥이를 시뻘겋게 밀어버린 것이 저들의 살 곳을 없애버린 건 아닌지. 남은 한 마리는 가족을 다 잃고 혼자 남아 울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럼에도 이리 소리로 생사를 알려주어 고맙다.
소리 하나로 오만가지 추억을 떠올린다. 유년 시절의 잠 못 이루던 밤을 함께 버텨주고, 이렇게 또 끄적거리게 만들어준다. 어쩌면 소쩍새는 이미 내게 많은 걸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릴 수도 없고 담을 수도 없지만 너무도 선명한 기억들을 말이다. 저건 소쩍새 울음소리야, 처음 들었을 때 넌지시 이름을 알려주었던 아버지 목소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