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승민 May 29. 2023

지니의 마법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 안엔 웅장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이 정도 데시벨이면 내가 온 걸 모를 텐데 싶어 큰 소리를 내며 서재 앞에 가 ‘내가 왔다’는 몸짓을 해보였으나 아빠는 예상대로 ‘아이구 깜짝이야’라며 놀란 제스처를 내보였다. 밀착을 봐야 한다며 한창 흘러나오던 음악을 끊고 티브이를 켜려는 아빠에게 ‘방송은 이미 나갔으니 나중에 인터넷으로 보라, 그나저나 음악이 좋은데 다시 켜자’고 말하니 아빠는 ‘클래식 에프엠 틀라고 지니한테 말하면 될 것’이라 나에게 일임했다.


지니에게 “클래식 에프엠 틀어줘” “케이비에스 클래식 에프엠 틀어주어” “케이비에스 클래식 에프엠” “클래식 에프엠 케이- 비- 에스” 온갖 친절과 구애를 펼쳤으나 지니는 들은 척도 안 하고. 결국 듣다 못한 아빠가 거실로 나와 “지니야 케이비에스 클래식 에프엠”이라 말하자마자 지니는 ‘예, 알겠습니다’라며 음악을 틀어주었다. 무슨 일이냐며 왜 나는 안 되는 거였냐며 돌아봤을 때 별다른 말 없이 아빠가 지어 보였던 (별 거 아니란 듯) 뿌듯한 얼굴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딱 그 정도의 뿌듯함으로 세상은 살아가는 것이니께.

매거진의 이전글 새벽 한 시에 걸려온 전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