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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지수 Mar 01. 2022

사립대 교직원으로 이직했습니다.

다시 돌아온 모교

출근길 학교 앞 지하철역 개찰구를 빠져나올 때 나와 동선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코로나라는 거대한 존재와 동거하는 캠퍼스는 어떤 풍경일까 궁금했었다. 6년 전 졸업할 때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전염병은 분명 내 삶만큼이나 대학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터였다. 대학의 마스코트 동상에 사이즈가 맞지 않는 마스크가 씌워진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하루에도 몇 번씩 스쳐 지나가는 팬데믹을 상징하고 있었지만, 3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냈던 캠퍼스를 다시 밟는 기분이 어색하지만은 않았다.


이상했다. 직원으로서 학교를 대하는 마음은 분명 달라야만 하는데. 대학에서 배운 전공과 그 전공이 안내해준 또 다른 전공의 세계를 사랑해서인지 신입직원이 아닌 신입생의 마음이 자꾸만 비집어 나왔다. 애교심과는 상관없는 나인줄 알았는데 청춘을 다했던 이 캠퍼스가 작지 않은 의미였었나 보다. 스무 살이 되어 처음 고향을 떠나 서울이라는 낯선 도시를 접하게 만든 가장 강력한 이유 앞에서 내 마음은 곧장 직선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 일방적 기대감이 한순간 구부러지거나 부러질까 두렵기도 했다.


사실 교직원에 합격하기 전 한 공기업에서 1년 반 동안 기록물관리전문요원으로 근무했지만 지원한 직무에 관련한 일을 거의 할 수 없었다. 전문요원이 대개 한 명 배치된 대부분의 공공기관의 현실이었다. 현실이 녹록지 않아도 한 걸음씩 나아가면 상황은 점차 나아지리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이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원하는 결과에 닿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이왕이면 하루빨리 학부와 대학원에서 배운 것들을 일터에서 반영해내고 싶었다. 가끔 원래 일했던 곳에서 없는 예산을 마련하고 원하는 성과를 달성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만약’의 문제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만든 미래와 현실은 비교할 수 없는 논제라고 했다. 현재 발 딛고 있는 곳에서 최고의 성과를 달성하는 것만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너무 멀어지지 않을 타이밍에 마침 내가 졸업한 대학교에서 기록연구사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봤다. 졸업한 곳에서 일한다는 상상은 아마 2019년, 이 학교에서 계약직이 아닌 정규직 기록연구사를 처음 뽑을 때 해봤던 것 같다. 그러나 당시 나는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지원하는 시카고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었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던 나에게는 당연히 해당되지 않는 자리였다. 아쉽긴 했지만 10개월의 인턴 생활을 잘 마치고 경험치를 쌓다 보면 언젠가 더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아마 이때 지원을 했었어도 내세울 경력이 충분하지 않았기에 실패했을 수도 있다.


2년 반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적어도 이력서에 있었던 공백들을 꽤 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기록물관리전문요원 자격증을 획득하였고, 10개월 동안 해외 대학교 도서관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가하였고, 공기업에서 1년 반의 행정기록물 관리 경력을 쌓았다. 영어 우수자를 우대해주는 자리였기에 해외생활 이후 확연하게 늘은 어학 점수가 도움이 되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몇 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 박물관에서 기록 관련 봉사활동을 한 것도 좋은 소재가 되었다. 사람을 스펙으로 평가하는 세상에 잔인함을 느끼지만 취업 시장에서는 나 조차도 나를 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최종적으로 주어진 결과 앞에서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결과 다음으로 따라올 직장이라는 일상에서 되도록이면 매사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하고 싶었다.


일터에서의 성장을 기록하고 반성하는 것은 지금의 내가   있는 최선의 일이다.  현재라는 생생한 시공간에 있는 나만이   있는 유일한 일이다. 개인적인 성장을 위해 시작한  기록이 비슷한 이유로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누군가를 도울  있다는 사실은 멋진 일이다. 욕심 많은 나는 최선이면서도 유일하고  멋지기도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가장 개인적인 기록이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도 특별한 의미로 가닿을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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