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구 브랜드 <모든 요일의 방>의 계간지 Vol.5에 실린 글입니다
Q. 계간 <Your Room> 독자분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이스트오캄 운영하고 있는 디자이너 손헌덕입니다. 와이프 김지혜 디자이너와 함께 이스트오캄이라는 브랜드와 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이스트오캄이라는 브랜드에 대해 소개해주시겠어요?
A. 저희는 "i don't like the best, i love the only one."이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리메이크 의류를 만드는 리빌드 브랜드입니다. 오캄 Oklm은 프랑스어 Au calme의 줄임말로 심신이 평온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상태를 뜻해요. 트렌드를 쫓아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때론 느긋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하자는 의미를 담아 East oklm이라는 공간 &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빈티지 의류와 자투리 원단을 조합하여 셔츠, 재킷, 팬츠 등 다양한 리메이크 의류를 만들고, 저희의 영감이자 재료인 빈티지 의류도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Q. 성수동에 자리 잡게 된 시기와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A. 2017년 6월 10일 날 공간 계약을 하고 같은 해 9월 매장을 오픈했습니다. 처음에는 제 개인 작업실 알아보려고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자리 잡게 되었는데요. 특별한 이유보다는 이 동네의 분위기 자체가 좋았던 게 기억이 나요. 지금처럼 트래픽이 많은 느낌보다는 당시에는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의 느낌이 강했거든요. 뭔가 '서울'이라고 하면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그런 느낌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인식이 강했는데, 그땐 이 동네가 8시만 되면 불이 다 꺼지는 곳이었어요. 조용하고, 마을 분들 소소하게 돌아다니시고 지금과는 많이 달랐죠. 그런 분위기 자체가 '서울'과는 다르게 느껴져서 ‘이곳에서 뭔가 시작하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들었던 거 같네요.
Q. 브랜드 이름과 당시의 성수동이라는 지역 사이의 연관성이 크게 느껴지네요. 영향을 받으셨을까요?
A. 브랜드 이름을 정하던 시기와 성수동을 발견한 시기가 공교롭게 잘 맞물리는데요. 네이밍을 할 때 이쪽 공간과 이 마을을 보고 느낀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찰나에 치우친 계기보다는 제가 추구하던 성향, 가치가 서로 잘 맞물려서 이름을 결정하게 된 거 같아요.
빠른 트렌드를 쫓기보다는 클래식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있는 일들에 대한 고민을 했었어요. 트렌드를 아예 쫓아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덜 영향받는, 클래식한 가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다 보니까 여유로운 느낌을 추구하며 네이밍을 결정했던 거 같아요. 당시 성수동이 이슈가 많고 그렇다기 보단 정적인 느낌? 정적인 느낌이지만 따뜻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제 성향도 이 브랜드도 이 마을과 잘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덕분에 좋은 네이밍을 할 수 있었던 거 같네요.
Q. 햇수로 벌써 6년 차 성수동 주민이신데요. 성수동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A. 이웃들끼리 얼굴을 알고 소식을 지내는 거. 일본의 작은 마을 느낌이라고 할까요? 제가 자리 잡을 당시에 이웃들이 서로를 잘 알았거든요. 오며 가며 이야기 나누고 안부 묻고 이런 게 다 자연스러웠어요. 지내다 보면 익숙해지니까 어느 곳에서나 느끼는 장점일 수 있겠네요.
또, 숲이 가까이 있다 보니까 강아지를 키우는 입장에서 산책하기도 좋고, 기분 자체를 환기시킬 수 있는 그런 환경도 좋은 거 같아요.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는 트래픽이 높은 곳으로 성장을 하고 있는 건, 음… 현재 상황으로서는 장점이자 단점인 거 같습니다.
Q. 성수동이 지금은 가장 핫, 힙 뭐 이런 곳이잖아요. 성장이라는 꼬리표에는 어쩔 수 없이 단점이라는 게 존재하는 거 같아요.
A.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는 게… 제게 성수동은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느낌보다는 내 시간에 맞게 흐른다는 느낌이 컸던 동네였는데, 지금은 시시각각으로 빠르고 변화하고 있거든요. 그런 변화에 저도 브랜드도 몸으로 느끼는 반응들이 많아진 거 같아요. 저희 공간을 찾아주시는 분들의 성향도 바뀌고 있고요.
변화는 어쩔 수 없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그 변화가 기존에 있던 것들이 고쳐져서 사용되는 게 아니라 뭐가 있었는지도 알 수 없게 싹 밀렸다가 새로 세워버리는 식으로 진행이 된다는 거예요. 기존에 가지고 있던 분위기는 찾을 수 없고, 여느 지역과 다름없이 급격하게 사라지고 또 변하고 있어요.
이제 이 지역에 오래된 매장이 거의 없어요. 6년이 그렇게 오래되었다고 할 순 없는데. 저희가 어느새 꽤 오래된 매장이 되었고요. 당시의 이웃들이 다 나가셨거든요. 동네의 매력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유지한 분들이 밀려나가는 게 참 안타까워요. 물론 자의적으로 나가시는 분들도 있지만 타의적으로 나가시는 분들도 많거든요. 아쉽죠.
저는 자본과 감각이 공존할 수 있다고, 그게 베스트라고 늘 생각하거든요. 변화도 충분히 기존의 것들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보여줄 수 있을 텐데, 그래야만 우리가 우리의 지난날들을 기억하면서 자연스럽게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처음 오시는 분들은 '원래 이렇구나' 느낄 순 있겠지만 자리 잡고 있는 분들에겐 좀 안타까운 부분인 거 같아요.
Q. 주민인 저에게도 그런 급격한 변화들이 많이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이제 계절적으로 봄이 다가오는데요. 봄이라고 하면 그래도 뭔가 '희망' 같은 긍정적인 키워드가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혹시 다가오는 계절에 희망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A. 개인적으로 저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하자."가 매일의 목표거든요. 그래서 다가오는 계절에도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게 저희가 가지고 있는 환경을 잘 유지하는 게 먼저일 거 같고요.
또, 봄에는 새로운 디자인의 의류와 리메이크 제품도 시도해 보려고요. 기존에 있던 것들을 잘 유지하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여러 방면으로 노력해보고 싶어요. 저희의 리메이크 의류는 'one & only' 아이템이다 보니 저희의 팬이 되어도 한 번의 소비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의 옷들을 작품 형태로 봐주는 고마운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브랜드 차원에서 더 드릴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열심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봄에는 그런 부분들을 채워나가는 걸 기대하고 있네요.
Q. 답변을 듣다 보니 계절의 변화를 크게 신경 쓰시지 않는다는 느낌도 드는 거 같은데요?
A. 사실 패션 브랜드다 보니 계절에 민감해야 하는 부분이 있을 텐데요. 근데 어떤 변화에 좀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편이고, 저는 그게 맞는 거 같아요. 오늘처럼 추운 날에는 꼭 따뜻한 커피를 먹지만 어느샌가는 자연스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을 때가 있거든요. 저도 브랜드도 이렇게 계절을 몸으로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변화해간다고 생각해요. 계절을 앞서서 뭔가를 해야 하는 것도 분명히 있지만요. 제겐 '자연스럽게'가 중요한 거 같네요. 계절에 민감해야 하지만 계절의 영향을 덜 받는, 그런 브랜드이고 싶기도 하고요.
Q.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우리에게 성수동이란?"
A. 우리에게 성수동이란... 좋은데 싫고, 싫은데 좋은 거? 요즘에는 그런 느낌이 큽니다. 예전에는 정말 신기한 동네, '서울에서 이런 평화를 느낄 수 있다니…!' 이런 마음이었는데, 이곳도 결국 다른 곳과 같게 변화한다는 느낌이거든요. 그렇지만, 그래도 여기가 좋아요. 계속 이곳에서 뭔가를 하고 싶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머물고 싶은 동네입니다. 제가 익숙해진 탓도 있겠지만요. 좋으면서 싫고, 싫으면서 좋고. 이곳에 좀 더 정이 들었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