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에 약속할게>, 조르지오 볼페, 파올로 프로이에티, 나린글
잠들지 못하고 오랫동안 말똥말똥 깨어있던 때가 있었다. 낮에 아무리 힘든 운동을 했어도 따뜻한 차를 마시고 반신욕을 해도 침대에 눕기만 하면 정신이 맑아졌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겨우 잠에 들려고 할 찰나 몸에서 잠을 거부해 경련을 일으키듯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그럴 땐 아예 자려고 애쓰지 말고 다른 일을 하라고 해서 거실에 나와 책을 읽다 보면 해가 뜨기 시작하고 그럼 또 다음날 하루를 망칠까 봐 불안에 떨곤 했다. 그만두려 해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고민들이 무의식을 지배해 꿈인지 사실인지 모를 장면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잠들면 죽을 것 같아 죽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의식이 없이 누워있는 순간이, 내 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 기억나지 않는 순간이 두려워 잠을 밀어내고 버티고 버티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지.
<잠들기 전에 약속할게>에는 친구와 계속 함께 놀고 싶은 붉은여우와 겨울잠을 자야 하는 동면쥐의 이야기가 나온다. 붉은여우, 로쏘는 어떻게 하면 친구가 잠들지 못할까 궁리한다. 동면쥐인 퀴크가 잠들면 외로워지기 때문이다.
'겨울에게 따뜻한 햇살을 빼앗지 말라고 부탁해 볼까?"
'퀴크가 잠들지 못하도록 계속 간지럽혀 볼까?'
자야 하는 퀴크와 잠들지 못하게 방해하는 로쏘의 모습이, 자고 싶지만 자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분리하여 캐릭터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내부의 선함과 악함을 천사와 악마로 표현하는 것처럼.
결국 로쏘는 말한다.
네가 눈을 떴을 때 내가 옆에 있을 거라고 약속할게.
잠은 죽음을 닮았다. 잠은 의지로 밀어낼 수 없고 기억과 의식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철저히 혼자 겪어야 하는 긴 시간의 여정이며 원하든 원치 않는 맞닥뜨려야 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혼자일 수밖에 없지만. 잠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옆에 누워 따뜻한 온기를 나눠주고, 호흡을 맞춰주고 잠들지 못해 괴로워하는 마음을 헤아려주는 게 다일 수밖에 없지만. 누군가 내 곁에서 혼자 겪을 수밖에 없는 유사 죽음-잠-을 지켜봐 주고 마침내 눈을 떴을 때 옆에 있을 거라고 약속해 준다면, 오늘 하루만큼은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 옆에 있다는 것. 그건 일부가 아니고 전부다. 사랑이고 구원이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 눈을 감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잠든 시간 동안의 일들을 기억할 수 없고, 밤새 무슨 일이 있어 대응할 수 없는 상태라 해도 괜찮을 거라는 것. 꼬리를 물며 이어지던 고민들은 내일 다시 하면 된다는 걸 기억하기를 바란다. 모두들 편안하게 잘 자고 일어나기를... 당신이 눈을 떴을 때 내가 옆에 있을 거라고 약속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