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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진 Apr 24. 2017

그리고, 아테네 / Prologue

[ 안녕, 첫 만남 ]


전부 가져가기에는
너무 무거운 너의 기억들을
혹시 조금 남겨두더라도 나를 용서해.

- 윤상, <이사> 중에서






런던을 떠나며

- 너에게 간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 세시간 전에 도착해서 이른 체크인을 시작했다. 택스리펀도 해야하고 면세점 구경도 해야하니 이른 체크인이라해도 여유는 없었다. 특히 최근 늘어난 중국인 여행객들 덕분에 택스리펀에 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정말 대단한 나라다. 우리나라 인구만큼 부자가 많다더니 그 말이 이 택스리펀 줄 한가운데에서 새삼 와닿는다.


그렇게 줄을 서서 내가 받은 택스리펀 금액은 단돈 50센트였다. 하참.. 난 또 내가 많이 받을 줄 알았지..어이없는 금액을 환급받아 면세구역으로 가는길, 두 녀석이 내 눈길을 끌었다.  돼지와 토끼인형에 홀리듯이 들어간 토이샵에서 더 귀여운 테디베어를 한마리 데려간다. 이미 큰 트렁크는 수하물로 부친 상황이라 테디베어가 본의아니게 나의 동승자가 되었다. 가방에 넣기에도 사이즈가 큰 인형이라 뒷덜미를 잡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 녀석 털도 붕실붕실한게 포근하게 생겼다. 그 땐 몰랐다. 이 녀석이 몰고올 엄청난 나비효과를.. 일단 귀여우니 넘어가자.


아테네 항공편이 지연된다.
지연이 발생하면 일단 먹자.



면세점 구경이 지루해질 즈음 출국편 보드를 보니 내가 탑승할 BA632편이 지연된단다. 아, 그렇다면 지금 밥을 먹어볼까... 식당 탐색에 나선다. 도시락 가게인 itsu에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한다. 참 유럽에서 스시롤과 김밥이라니 이렇게 인류는 부지런히 서로의 돈을 벌고있다.






그 곳에선

- 나도 까막눈 일지도 몰라.



식사 후 itsu 옆 집인 스타벅스에서 커피나 마시려고 했는데 줄이 무시무시했다. 역시 공항에선 스타벅스가 믿고먹기 좋은 모양이었다. 커피를 단념하고 공항 어딘가에 쭈그려앉아 어떻게하면 출장 중인 남편의 숙소까지 찾아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일단 영어가 잘 안통하고 치안도 좋지않다는데 가서 괜히 범죄의 대상이 되는건 아닌지 우려스럽기도 했고, 그리스어는 출생이래 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바, 버스정류장 읽는 것부터 난감하다는 것도 나름 큰 문제였다. 물론 수학 전공자로써 알파, 베타, 감마, 시그마 등의 표기가 어떤 알파벳과 대응 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것만으로는 딱히 어디 쓸 데가 없었다.


어제 찾아보긴 했지만 다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려 남편의 호텔까지 가는 방법을 찾아본다. 블로그들을 뒤지던 중 호텔 셔틀버스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블로거들은 정말 대단하다. 그들은 일상을 전부 정보로 재탄생시키니 말이다. 어쨌든 블로거의 포스팅에 따라 최적의 코스를 찾아놓고 남편을 안심시켰다. 남편은 내가 비행기를 갈아타는 동안 대놓고 불안해했다. 짐은 부칠 수 있으려나, 부친 짐은 찾을 수 있으려나, 게이트는 헷갈리지 않으려나, 터미널은 잘 찾아가려나, 비행기는 놓치지 않으려나, 보안검색대에 100ml 이상 액체류는 넣지 않았으려나 등등 나의 여정 전체가 그의 커다란 걱정거리였다. 어쨌든 최적의 정보를 찾아 그의 걱정 일부를 잠재우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언니랑 같이 그리스로 가자.


런던-아테네 구간은 British Airways를 이용했다. 그래도 국적기인데 음료수는 주겠지 하는건 나의 착각이었다. 좌석 앞에 비치되어있는 M&S 브로슈어를 보면 물도 음료수도 모두 가격이 붙어있었다. 4시간 비행인데 물 한 잔은 줄 수 있는거 아닌가 싶어 야박하게 느껴졌으나 어쩔 수 없다. 로마에 오면 로마의 법을 따르는 것이다.


내가 지금 동전지갑에 파운드가 몇 개 있더라... 물 가격을 확인하고 간당간당한 내 파운드를 세서 승무원에게 건네주니 현금은 안받는단다. 괜한 짓 했군.. 카드를 주고나서 물 한 병을 홀짝 마셨다. 갈증이 해소되고나니 이내 잠이 쏟아졌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 즈음, 기내방송이 나온다. 이미 잠을 깬 사람들이 웅성웅성 소음을 만든다. 땅에 비행기가 닿자 승객들이 "워허후!!!!" 하면서 박수를 친다. 착륙이 뭐라고 이걸 저렇게나 신나하는지 황당하면서도 한편으론 유쾌했다. 소매치기도 많고 택시사기도 빈번한 곳, 여행객들 사이에선 소매치기를 당했는지 안당했는지 보다 하루에 한 번 당했는지 두 번 당했는지에 따라 오늘의 운세를 점쳐 볼 만 한 곳, 아테네와 나는 그렇게 불안하고도 유쾌한 첫 대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야박한 브로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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