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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은 Sep 27. 2020

글 쓰기의 최고 장점

글을 언제 쓰는지 생각해보면 특별한 감정이 느껴졌을 , 어떤 풍경이나 사람, 음식 등이 주는 기쁨이나 슬픔 등에 대해 남기고 싶을  쓴다. 생각과 감정을 문장으로 옮길 때면 생각만 하고 있는 것과 글로 옮기는 것이  다른 차원의 일인  같다. 그것은 마치 작은 생각의 씨앗을 머릿속 누군가가 글이라는 멋진 나무로 키워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각의 사유를 가지고 시작한 문장은 리듬을 타면서 가지를 뻗고, 뿌리에서 물을 빨아들이고 햇살을 받으며 푸른 잎사귀를 터뜨린다. 그러면 어느새  공간은 신선한 어휘와 적절한 은유로 가득 찬다. 자라는 동안 나무를 찾아온 새들처럼 다른 작가들의 생각들을 적절하게 인용함으로써 든든한 친구이자 조력자들을 얻는다.  
나의 나무에 과즙이 가득한 열매, 그러니까 의미 있는 메시지까지는 없어도 괜찮다. 작은 씨앗이 어른 나무로 성장한 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니까. 이로서 나의  하나가 완성된다. 사유의 씨앗은 단어와 문장을 거쳐 나무가 되고 나만의 정원에는 그런 나무들이 계속 늘어날 것이다. 상상만 해도 즐겁다. 글 쓰는  외에 다른  어떻게 되든 상관없겠다는 기분이 든다. 충만함, 그렇게 부를  있을  같다.  속상한 마음이   쓰는 글은 충만함과  다른 차원의 글쓰기 경험을 주는  같다. 최근 나는 그것을   경험하였다.

딸과 나는 나름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전혀 다른 말을 할지도 모르겠으나 어찌 되었건 나는 딸을 사랑하고 딸도 엄마를 사랑한다고 믿는다. 다만 때때로  사랑이 느껴지지 않거나 언제 사랑하긴 했었나 느껴질 만큼 서운하게  때도 있다. 최근 몇 개월 동안 그랬다. 딸에게 열렬한 남자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은 잠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느라 잠잠하지만 그래도 밤마다 통화하는  똑같다. 요즘 군대는 정말 좋아진  같다.

누가 봐도 딸에 대한 남자 친구의 사랑은 극진했다. 딸이 감기에 걸리자 새우 야채죽을 직접 끓이고 절절한 손편지까지 동봉하여 집 앞까지 가져다주었다.  생일날, 공유 주방을 빌려 스테이크와 파스타, 샐러드까지 만찬을 대접했다나. 공주가 따로 없구나 싶었다. 기념할 날도 아닌  다양한 선물들을 안겨주고, 아이가 조금만 컨디션이 안 좋아도 엄마보다 딸을  알뜰히 살피는  같았다.
이 정도면 누구라도 행복의 눈물을 줄줄 흘리고 다녔을 것이다. 딸이 평소에 자기감정을 드러내거나  사이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은근한 남자 친구 자랑이 있었던가 보다. 내가 남자 친구에 대해서 칭찬 한마디 거들면 딸도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건 어쩌지 못하는 듯했다.

20 초반의 동갑내기가 알콩달콩 연애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가끔 딸에게도 말해준다. 20  가장 열심히  일은 연애라고. 연애하기 얼마나 좋은 시절인지 침을 튀어가며 말해준다. 내가 못해본 경험들을 딸이 대신해준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딸이 너무 자기 세계에만 져지 때는 어쩔  없이 서운한 마음이 든다. 남자 친구와 하루 종일 같이 있었을 텐데 딸은 귀가하면서도 통화 중이다. 현관문 앞에서 인사는 하느둥 마느둥, 바람처럼 제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엄마가 하루 종일 뭘 했는지 물어보는  바라지도 않지만 일주일 한 번쯤은 같이 밥이라도 먹었으면 하는 게 과한 욕심은 아닐 텐데. 집안에 같이 있을 때조차 고립된 섬처럼 자기 세계에 빠져있으니 아이와 대화를 나눴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래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고 그저 딸의 연애를 나 혼자 조용히 응원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엄마의 생일을 잊어버린   심한 거 아닌가 생각했다. 잊었다기보다 무신경했다. 마치 숙제를 후다닥 해치우듯 생일 전날 선물꾸러미를 가져다 놓고 그걸로 끝이었다. 생일 당일 하루 종일 외출하고 문자나 카톡도 없었다. 당연히 케이크도 없었고 함께 식사도 하지 못했다. 그날 나는 너무나 우울했고 저녁에 돌아온 딸과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평소 딸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말하고 딸은 듣는다. 나는 작은 소재라도 떠올리면서 말을 이어간다. 그러면 아이는 맞장구를 치거나 웃거나 가끔은 무반응이다. 딸과  몸이  휴대폰이 초단위로 분주하게 메시지를 날아오고  대화는 수시로 끊긴다. 그래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한다. 때로는 그렇게 엄마의 수다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생각한다.
그렇지만 엄마에게 너무 무심한 거 아닌가 서운한 마음이 들던 즈음, 생일마저 허무하게 지나쳐 버리니 나는 와르르 무너지는  서러웠다. 그리고 수다스럽던 나는 말을 잃었다. 딸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붙여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간 그렇게 보냈다.
그리고  시간 동안 나는 글을 썼다.

당연히 딸에 대한 좋은 생각보다 원망이 가득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듯   말을 안 듣는 거냐고 발을 동동 구르며 허공에 소리 지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지난해, 그러니까 남자 친구가 없던 시절 딸이 나에게 끓여주었던 미역국과 생일 케이크를 떠올렸다. 나를 서글프게 만들기도 하지만 평소에  덕분에 얼마나 자주 웃는지, 딸과 나눈 대화 덕분에 근사한 생각들이 얼마나 많이 떠올랐는지, 그것들이  얼마나 많은 글을 쓰게 해 주었는지도 떠올렸다. 당연히 그런 것들에 대해서 자세히 쓰기 시작했다.

미움과 사랑, 냉담과 공감을 같이 썼다. 그래야 진짜  마음이니까 나를  멀리 떨어뜨려놓고 관찰한다는 생각으로 떠오르는 많은 것들을 글로 담았다. 그러고 나니 정말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나의 20대가 떠올랐다. 열렬한 사랑을 했고 사랑 때문에 아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도 나만의 세계에 빠져 주변 가족들을 신경 쓰지 못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첫사랑에 아파할 즈음 엄마와 어떤 사이였는지가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엄마라는 존재 자체가 지워진 느낌이 들었다.  시절  마음을 온통 차지하고 있었던 건 아마도 당시 남자 친구였을 것이다. 세상의 다른 것들은  머릿속에 완벽하게 차단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렇게 글로 마음을 풀어내고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딸의 행동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를. ‘ 나이 때 그럴  있지라고 생각할  있게 되었다. 자신은 그저 열심히 살고 있었을 뿐인데 엄마는 영문도   없게 차가운 사람이 돼버렸다고 느꼈을 딸을 생각했다. 딸의 모습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지금은 다시 딸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있게 되었다.

글은 치유의 힘이 분명히 있다. 치유받은 나는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겼으니까.  딸에 대한 원망을 쌓아두었다면 이해할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상상하기도 싫지만 그토록 사랑하는 딸과 지금까지 대화 없이 지냈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도  나은 사람이   있다는면 좋은  아니겠나. 그러니 속상한 일 있으면 혼자 속 끓이지 말고 글을 쓰자. 어떤 항우울제보다 효과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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