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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니 May 12. 2018

델마와 루이스 (Thelma & Louise,1993)

나 자신을 찾아가는 길


영화는 영화일 뿐, 그러나 영화니까 이 모든 게 가능한 신기루 같은 영화. #어느영화와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델마와 루이스 (1993)

감독 : 리들리 스콧
주연 : 수잔 서랜든(루이스 역), 지나 데이비스(델마 역)


영화를 보다 보면 서로 반대되는 개념인 것 같아 보이는 취향이 생기고 그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조명해주는 영화가 좋을때가 있는가 하면 영화는 그야말로 영화니까 현실 판타지의 끝장을 보여주는 게 속 시원할 때도 있다. 요즘의 나는 후자쪽이 끌리던 차였고 마침 델마와 루이스는 그런 내게 찾아온 쌈박한 선물이었다. 이 영화는 다른 모든 것보다도 마지막에 하늘을 나는 차로 유명하다. 자칫 영화를 전자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 결말은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하고 책임감마저 없는 영화로 비출 수도 있을 법한데 이토록 황홀하고 멋진 엔딩이 될 수 있었던 건, 그야말로 ‘영화같은’ 부분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마침내 탄생하게 되어서가 아닐까.

사실 델마와 루이스는 현실 속에서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우리네 캐릭터처럼 보인다. 보면서 한 번 쯤은 자기 주변에 있는 델마같은 친구를 떠올리며 아, 그 착해빠진 호구.. 하고 생각할지도. 혹은 루이스 같은 친구를 떠올리며 으, 까다로워 하고 절레절레할지도. 그러나 지극히 현실적인 그들의 영화같은 여행은 델마의 조심성 없는 즉흥만남이 결국 루이스의 손에 피를 묻히게 만들며 시작된다.



너도 좀 어떻게 해야될지 생각을 해야 되지 않니?
했잖아, 경찰서로 가자고. 그게 싫으면 난 모르겠어.
제발 그러지 좀 마! 젠장! 문제가 생길 때마다 순진한 척 제정신 아닌 척 넘어가려고 하는데 이번엔 달라. 이번엔 상황이 다르단 말이야. 난 멕시코로 갈 거야.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카오스에 빠진 두 사람의 사후 반응에서 나타나는 그녀들의 상반되는 성향은 영화같은 여행이 계속될수록 서로의 것을 서로와 맞바꾸는 듯이 바뀌어 간다. 델마는 순진해 빠진 호구에서, 쫓아오는 경찰을 트렁크에 가두고, 가게를 터는 대담함을 보이는 무법자가 된다. 한편 이성적이고 까다롭던 루이스는 도망이던 것을 여행으로 바꾸어 생각하게 되고.



내가 미쳤나봐!
아니 넌 항상 그랬어. 표현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야.


델마가 자기도 몰랐던 자신을 자각하게 되었을 때, 그녀의 곁에 있던 루이스는 그것을 확신시키는 존재였다. 대럴을 비롯한 이 세상이란 감옥에 갇혀있던 그녀가 마음껏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게 비로소 너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영화 중간, 모래속을 달리던 그들은 갑자기 시공을 초월한 것 같은 기분 속에 빠진다. 루이스가 델마의 내면을 향해 던지는 질문에서 델마는 완전히 제 자신이 된 것이다.

 

너 깨어있니?
응 깨어있어. 한번도 이렇게 깨있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모든 게 달라보여.


소설 데미안의 멋진 글귀가 생각난다. 새는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투쟁한다. 경찰에게 절대로 붙잡히지 말자던 그녀들의 투쟁은, 알을 깨고 나온 새 세계를 맞이하게 해준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멕시코에 도달하지 못한 채 경찰에 포위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을 택하며 그랜드 캐년을 향해 날아간다.



인생은 나 자신이 되어가는 길이라지 않는가. 그러나 누구도 살아있는 동안의 어느 시점에서 이제 비로소 나 자신이 되었어, 라고 종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그들이 가려던 멕시코는 그들 자신이 되고싶은 그들의 모습이었을까. 모래바람 날리던 벌판 위의 도로는 마치 후회스런 과거로부터의 도망이면서 알 수 없는 미래을 향한 여행이기도 한 인생과도 같다.

사람은 누구나 돌이킬 수 없는 짓거리들을 한다.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완전히 해결될수도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짓거리들이 모여 나의 그 시절을 이뤄버렸기 때문이다. 델마와 루이스의 범죄를 단지 윤리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인생의 여정에서 후회하게 되는 수많은 사건들을 상징한다고 보았을 때, 하늘을 향해 날아간 차는 나 자신이 되는 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어간 인생이 맞이하는 후회없는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주는 즐거움이란, 델마와 루이스는 서로에게 끝까지 그 여정을 함께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여행을 해 본적이 없었어.
지금 하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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