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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니 Mar 19. 2017

너의 이름은(2017)

내가 너의 이름을 기억할 때, 희미했던 관계가 분명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마 이 글을 읽고 나면 아 얘는 완전 판타지아에 사는 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게 나인걸.

난 나일 뿐이야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순 없어~ #삐까삐



너의 이름은 (2017)

감독 : 신카이 마코토
목소리 : 카미키 류노스케(타키 역), 카미시라이시 모네(미츠하 역)


우리의 삶은 수많은 기억의 조각들로 스스로에게 각인이 된다. 특별히 좋은 기억들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수놓아진다. 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순간이라면 그 느낌, 그 기분을 간직하기 위해 몇 번이고 그 기억이 되살아날 매개체를 곁에 두고 상기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기억이란 건 애를 써도 희미해지기 마련. 꿈을 생각해 보면 더욱 분명하다. 처음에는 너무나 생생하고 그 느낌이 실제 같아서 기분이 오묘하다. 그러나 반나절만 지나면 내용은 생각이 나더라도 그 느낌이 희미해져서 뭐였는지 아침만큼 또렷하지가 않다. 다음 날이 되면 느낌은 온데간데 없고 내용조차 드문드문해진다. 기분 좋은 꿈이었다면 더욱 아쉬운 순간이다. 잊고 싶지 않았지만 생각이 나질 않는다. 다시 잠들어보지만 그 꿈은 다시는 내게 찾아오지 않는다.

나는 영화를 보고 또 보고 또 보는 걸 좋아한다. 아마 영화를 다 봤을때 드는 그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겠지. 영화 내용은 이미 다 알고 대사까지 아는데도, 또 나는 그 영화를 찾는다. 기억은 분명할지 몰라도 기분은 언제나 잠시뿐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억하려는 노력은 궁극적으론 단지 기억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 기억을 통해 그때 느낀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의 이름은 이라는 영화는 바로 이 희미해져서 사라져버리는 기억에 대해, 결국 잃은 것 같았던 기억에 극적으로 다시 가 닿게 되는 낭만을 짙은 감성으로 그리고 있다.

다음 생에는 도쿄의 잘생긴 남자애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산들이 팔처럼 둘러안고 있어 편안한 느낌을 주는 이토모리 마을의 토박이 여학생 미츠하는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매듭 묶기를 물려 받아 매듭에 담긴 삶의 지혜와 철학을 자기 세대의 방식으로 녹여내는 따뜻하고 꿈 많은 소녀다. 어느 날, 이름모를 남자아이의 몸에 들어가 자신이 그토록 바랐던 도쿄생활을 하면서 점점 남자아이에 대해 알아간다.

그 남자아이의 이름은 타키. 타키는 건강하고, 다소 서툴기도 하지만 섬세함을 지닌 도쿄의 여느 고등학생이다. 같이 알바하는 누나를 좋아했지만 서툴러서 어떻게 해야 편하게 해 줄 수 있을지 모르는 듯 보였다. 타키 몸에 들어간 미츠하는 그 누나와 편하게 가까워졌고, 데이트 잘 하라며 원래의 몸으로 돌아온 뒤로 다시 타키가 되지 못했다. 타키는 마침내 미츠하를 찾아 나선다, 호기심을 넘는 그 무엇에 이끌려.

줄곧, 무언가를, 누군가를 찾고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한 문장이 심금을 울린다. 기억은 사라졌지만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 현실과 정반대의 상황을 묘사하는 정점이기 때문이다. 타키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그 분명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오직 자신이 미츠하 몸이었을 때 봤던 이토모리의 그림만 가지고 미츠하를 찾아나섰으나 실제 그곳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폐허였고, 미츠하가 말했던 혜성이 이 마을 전체를 덮친 것이다. 그것도 3년 전에.

아아. 지금껏 타키가 기억하던 그 여자애가 시간을 초월해 존재했던 거라는 걸 알게 되니 이제는 반드시 찾아야만 하는 사람이 된다. 신을 모셔둔 동굴에서 미츠하의 술을 마시고 과거 미츠하의 몸으로 돌아간 타키는 혜성이 충돌할 것을 막으려 하지만 실패하고, 미츠하는 동굴에서 쓰러진 타키의 몸으로 살아나 서로를 찾기 위해 산을 돌기 시작한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낮도, 그렇다고 밤도 아닌 어스름의 황혼. 두 세계가 맞닿는 그 찰나에서 마침내 타키와 미츠하는 만나게 된다. 사라져가는 순간에 잊지 않기 위해 이름을 써 주자고 하지만 결국 다 쓰지 못한 채 두 사람은 갈라지고, 미츠하는 타키가 알려준대로 사람들을 대피시키는데 성공하지만 타키가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는 잊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지만 애석하게 잊혀지고 만 서로의 이름. 그러나 그 존재를 잃어버리지는 않았고 결국 영화의 말미에 둘은 다시 만나게 된다. 줄곧,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은 그 기분의 끝에서.



나는 이름을 잘 기억하는 편이다. 그냥, 왠지 모르게 사람의 이름이 생기가 느껴져서 좋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이 매우 정서적이고 깊었다.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그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와 보냈던 시간들 속에서 내가 본 그, 내가 만난 그라는 인격에 대한 모든 것들이, 그 사람의 이름에 함의되고 요약되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할 때마다, 나는 줄곧 그와 함께 있던 기분이 든다. 현실에선 관계를 연락이라는 매듭으로 잇는다. 그러나 내겐 이름이 매듭이었다. 그래서 지금껏 연락이 끊어졌어도, 그애는 이제 내가 희미해지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시간이 지났어도, 내가 이름을 떠올릴 때는 적어도 나에겐 그 공백이 사라지고 그 사람만이 남는다. 미츠하와 타키 사이의 3년이 그들에겐 장애가 아니었던 것처럼.

줄곧,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다.
너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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