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잠은 와도 배는 고프고

음식에 대한 상상력은 풍부해져 간다

by 권유
KakaoTalk_20190914_112013996.jpg 글렌던에 같이 사는 친구들과 수다의 밤을 위해 준비했던 음식들. 솔직히 과일이랑 아이스크림은 엄청 맛있다.


주 거주지가 아닌 어딘가로 떠날 때에는 항상 여러가지 기대를 품게 된다.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기대는 음식에 대한 그것. 한국에서 해외로, 서울에서 다른 도시로 여행을 떠날 때면 어디로 갈지보다도 무엇을 먹을지에 주안점을 두곤 했던 것 같다. 토론토에 올 때도 이곳이 단지 타지라는 이유로 맛있는 음식이 많으리라고 내심 기대했다. 캐나다에는 푸틴과 팀홀튼밖에 없다는 누군가의 말은 흘려들으며. 그러나 그말은 딱히 거짓은 아니었다. 내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이곳만의 소울이 가득 담긴 음식이 토론토에는 없다. 토론토의 소울 푸드가 없다는 사실과 고향에 대한 조금의 향수는 섞여서 '한국'의 음식 (한식이 아니다. 한국의 음식)에 대한 강한 그리움을 만들어냈다. 지금은 다른 게 아니라 음식이 그립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그리운, 한국의 맛있는 음식.


1. 한잔의 추억 - 김치수제비와 감자전



KakaoTalk_20190914_225456612.jpg 김치수제비와 감자전을 찍은 사진이 딱히 없어서 한잔의 추억에서 열린 나와 다른 친구의 생일파티에서 받은 케이크 사진으로 대체한다.


캐나다 와서 제일 먼저 먹고 싶었던 음식이다. '한잔의 추억'(이하 한추)은 학교 앞에 있는 술집인데, 2005년에 생겼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복고적인 분위기 속에서 8090 음악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대학에 입학한지 얼마 안 됐을 때는 한추에 딱히 자주 가지 않았는데, 한추에 발을 자주 들이기 시작한 것은 교지 활동 끝무렵이었던 2학년 2학기~3학년 1학기 즈음이었다. '술을 마신다 = 한추에 간다'가 교지 사람들에게는 거의 공식과 같아서 약속을 잡기만 하고 딱히 어디서 모이는지 친구들이 알려주지 않았을 때 한추에 가면 그들이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자주 갔건만 다양한 메뉴를 먹어보지 않은 것은, 갈 때마다 거의 똑같은 메뉴를 먹었기 때문인데, 그들이 바로 김치수제비와 감자전이다.

김치수제비는 김치찌개 국물을 베이스로 하고 그 안에 쫄깃한 수제비가 양껏 들어가 있는 형태다. 여느 한국 술집의 국물 음식이 그렇듯 msg의 강한 향이 나는데, 끓이면서 먹다보면 국물이 진득해지는 게 매력이었다. 국물이 졸아들면 짜지기 때문에 술도 더 잘 들어간다. 국물 요리의 특성상 날씨가 쌀쌀할 때 더 맛있었지만 8월에 친구들이 열어 준 생일파티에서 김치수제비를 먹자고 제안한 것은 캐나다에 와서 김치수제비를 그리워할 것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학교 근처에 맛있는 전을 먹을 수 있는 곳은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전들은 너무 크거나(!) 감자전이 아니었다(!!). 물론 한추에서 김치전도 맛볼 수 있지만, 나는 전의 자작한 기름맛이 느껴지면서 질리지 않는 감자전을 좋아했다. (그냥 탄수화물을 좋아한다고 말해.) 원래 음식에 소스를 찍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먹다보면 느끼하기 때문에 이따금 간장 양념을 꼭 찍어 먹어 줘야 한다.

한추의 친구들은 미친 비율로 소맥을 마는 법과 얼음잔에 매화수 한 병을 다 부어 마시는 법을 알려 줬다. 짜고 기름지고 어쩌면 평범할 음식들은 술과 수다와 함께 술술 들어갔다. 돌아가면 서울도 추운 겨울일 텐데 한추로 달려가야지.



2. 한국의 일본 음식


KakaoTalk_20190914_231516050.jpg 호호식당의 명란파스타와 사케동. 웨이팅 없는 익선동에서 먹었다. 동행은 그닥이랬지만 난 그래도 맛있었다.


밴쿠버 다운타운을 구경한 날, 엄마와 내가 공통적으로 놀란 부분은 일식집의 분포였다. 어딜 가나 스시집이 널려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캐나다에서 스시는 한국의 떡볶이인가'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토론토는 그 정도는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일식집은 꽤 많은 편이다. 특히 스시는 학식에도 있을 정도니까 말 다했다.

하지만 이곳의 일본음식은 어딘가 부족하다. 가난한 학생인 내가 대단한 일식 맛집에 가보지 않아서인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러고 보면 밴쿠버에서 굉장히 럭셔리한 스시집에서 맛있는 스시도 먹었는데 그랬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곰곰이 생각한 결론은 이것이었다. 이곳에는 일본식 퓨전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잘 없다. 명란 스파게티나 명란 크림우동을 (이러니까 명란에 미쳐 있는 사람 같겠지만...맞는 것도 같다.) 대체 토론토 어느 구석에서 구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아마 구할 수 있어도 한국처럼 가성비 있게 먹지는 못하겠지.

비단 퓨전 일식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다른 것들도 조금씩 결함이 있다. 가령 분식 수준으로 분포하고 있는 스시 중 비교적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종류는 롤뿐이다. 롤에 들어가는 해산물은 대부분 연어, 참치 혹은 새우. 양도 적고 비싸다. 상술한 밴쿠버의 럭셔리한 일식집에서 그나마 좀 더 다양한 스시를 먹긴 했는데, 그마저도 한두 종류 더 많은 정도였다. 7.99달러를 내고 학교 식당에서 파는 먹을만하지만 다섯조각밖에 안 되는 새우롤을 먹으면서(그날 배고팠다.) 만원 초반의 가격이면 여러 종류의 스시와 미니우동, 샐러드를 전부 먹을 수 있었던 학교 앞의 스시집을 생각했다. 여기 사람들이 폭신한 달걀초밥을 한 입 먹고 광어 초밥으로 입을 달랜 후, 간장 새우와 장어 초밥 중 무엇을 먹을 것인지 친구와 기싸움을 벌이다가 소라 초밥으로 입가심하는 기분을 알까?


3. 떡볶이


KakaoTalk_20190914_233555635.jpg 신촌에서 제일 맛있는 떡볶이라고 생각하는 '오빠네 옛날 떡볶이'. 사람들에게 소개했더니 다들 좋아했다.


서울에서 즉석떡볶이로 유명한 동네인 신당동에서 자취를 했던 나는,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로 슬그머니 향하는 발걸음을 스스로 외면한 채 즉석떡볶이를 하찮게 보는 척 했다. 그러지 말걸. 난 떡볶이가 그립다.

떡볶이는 생각보다 변형이 많은 음식이다. 사진처럼 국물이 많은 떡볶이도 있고,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나 '또보겠지 떡볶이'처럼 버너에 올려 끓여 먹고 밥도 볶는 즉석떡볶이가 있다. 부산의 깡통시장에 가면 맛볼 수 있는 벌겋고 걸쭉한 떡볶이가 있는가 하면 요즘 세상 사람들의 밤을 달래기 위해 등장한 엽기떡볶이류의 떡볶이도 있다. n백원이면 손에 쥘 수 있는 컵떡볶이로 떡볶이에 입문한 나는 학교 앞 '박군포차'에서 떡볶이가 훌륭한 술안주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고, '유자유'에서는 떡볶이에 김치와 쭈꾸미를 넣으면 훌륭한 요리가 될 수 있음도 알게 되었다. 떡볶이는 때로는 달고, 때로는 짜고, 때로는 매웠다. 한국인이라면 남녀노소 떡볶이에 미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떡볶이 한 접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채로움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거창하게 해 보는데...

토론토에도 떡볶이는 있지만, 적어도 한국의 그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토론토의 비싸고 너무 달았던 엽떡 맛을 떠올리면 (토론토에는 놀랍게도 엽떡 지점이 두 개나 있다.) 더 그럴 것 같고, 다른 떡볶이집이 있다고 해도 어찌됐든 한반도에서 나고 자란 떡볶이 맛을 기대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쓰다 보니 양배추를 가득 넣고 졸여서 밍숭한듯 하지만 달큰하고 은근 매콤한(우리는 절대 따라할 수 없었던), 엄마가 만들어 주신 떡볶이 생각이 난다. 오뎅에는 멸치육수가 배서 향이 정말 진했는데.


4. 그렇지만


KakaoTalk_20190914_234957285.jpg St.Andrews 역 근처의 Sweet Jesus에서 먹은 Cookies Cookies Cookies & Cream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사람이라면 느끼겠지만, 나는 먹을 것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사람이다. 그 말은 즉슨 토론토에서도 열심히 맛집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곳의 음식들을 한국에 돌아갔을 때 또 그리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실은 이미 밴쿠버에서 먹은 채소라멘은 그립다.) 토론토에서 일상적으로 먹던 음식들과도 언젠가는 작별을 하겠지, 그러면 그들도 그리움이 묻은 음식이 될까? 좋은 추억이 될 수 있게 (데이터가 좀 더 쌓이면) 언젠가는 토론토에서 맛있게 먹었던 음식에 대한 글을 써 봐야겠다.


하여튼 먹을 게 최고야.


각 꼭지마다 언급된 음식점들의 장소를 태그해 뒀는데, 그러고 보니 생각보다 동네가 거기서 거기다. 그리고 글을 다 완성하고 나니 생각나는 음식들도 있다. (예컨대 K디저트, K커피, 마라 등등..) 하지만 다 쓸 수는 없는 노릇이지. 내일 나이아가라에 가니까 얼른 자야겠다.


오늘의 트리비아는 귀찮으니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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