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토론토 살아요

겨우 한 달 살고 해 보는 토론토 아는 척

by 권유
Keele 캠퍼스에 도착하고도 팀홀튼에 가지 않은 어느날, 시간이 너무 남은 나머지 캠퍼스 뒤편을 산책했다. 글 내용과 아무 관계 없다.

토론토에 온지 한 달 되었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거 실은 안다. 하지만 밴쿠버 여행 때문에 출국한지 한 달 됐으니까 그냥 한 달 산 셈 치겠다. 내가 태어나거나 자란 곳이 아닌 어느 새로운 곳을 가도 그렇겠지만, 토론토는 재밌는 구석이 많다. 이렇게 말하고 글을 시작하면 혹자는 '그렇다면 이 글과 두 번째 글("토론토의 첫인상")의 차이는 뭐지?', 하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필자인 내가 설명하자면, "첫인상" 글은 토론토에 갓 떨어진 병아리(?) 같은 내가 신이 나서 토론토의 아름다운 점들을 나열하는 게 목적이었다. 이번 글은 그보다는 좀 더 미시적이고 생활에 밀착된 내용을 다룰 것이다. 토론토에서의 '생활'이 주는 특성들을.


TTC와 느린 일상(Ft. 데이터)


TTC(Toronto Transit Commision, 토론토 교통국)란 토론토의 대중교통 전반을 일컫는 말이다. 시내버스와 지하철, 스트릿카(전차)가 여기에 해당된다. 각기 다른 교통수단들이지만 마치 하나의 시스템인 것처럼 타고 다니는지라 두 시간 이내라면 추가 요금이 붙지 않고 환승도 가능하다.

TTC는 이름도 있어보이는 데다가 캐나다 최대 도시인 토론토의 대중교통 수단이라는 점에서 환상의 대상이 되기 쉽다. (나는 환상을 가졌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참 효율적이지가 않다. 대중교통으로 30분 걸리는 곳이 걸어서도 30분 걸리기 일쑤이며, 구글맵으로 가는 길을 검색했을 때 자가용으로 가는 것보다 배로 긴 대중교통 소요 시간을 보며 한숨을 쉴 때도 많다. 어쩌다 그런 일이 생기는 건지 궁금하다면


출처: blogto.com

세상 이상하게 생긴 토론토의 지하철 노선도를 보자. 토론토는 참 큰 도시이지만, 지하철 노선이 네 개밖에 없다. 토론토 다운타운에 해당하는 부분은 1호선(노란 호선) 하단의 동그란 부분인데, Dundas역과 St Patrick역은 도보로 이동 가능하지만 지하철을 타면 6개의 역을 지나쳐야 하는 거리다. 지하철이 저 모양이라고 해서 버스가 잘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버스와 스트릿카는 지연되기 일쑤고, 때로는 구글맵이 올거라고 알려주는 시간에 오지 않기도 한다. 때문에 동아시아(서울과 도쿄 홍콩과 상하이 등)의 편리한 대중교통을 기대하고 온다면 크게 실망할 수 있다. 요금은 presto card(t머니 선불형과 비슷한 카드) 기준 편도 3.1달러. 한화로 2800원 정도. 한국에서는 왕복을 할 수 있는 가격이다. 불편하긴 하지만 귀여운(엥) TTC 지하철의 특이한 점은 인터넷이 안 된다는 점이다. 지하철에서도 와이파이가 팡팡 터지는 한국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토론토 지하철은 지상 구간에서만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TTC가 가성비도 떨어지고 약속도 안 지키고 지멋대로라고 말하면 너무 혹평이려나. 차와 면허가 없어서 뚜벅이 인생인 내 인생을 TTC는 많이 바꿨다. 구글맵이 알려준 시간에 버스가 안 와도 화를 내지 않는다. 서울이었으면 카카오버스 어플을 죽일듯이 노려봤을 것이다. 지하철에서는 자연스럽게 크레마를 꺼내들고 독서를 한다. 요즘에는 총 두 권으로 이루어진,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아메리카나>를 읽고 있다. 그걸 읽느라 9월이 꼬박 간 듯하다. 유튜브가 똑똑하게 다운받아 놓은 '오프라인 스테이션'의 곡들을 재생한다. 그러다 보니 음악이 업데이트가 제대로 안 돼서 자우림의 '레테'와 SUMIN/술탄오브더디스코의 '미끄럼틀', 백예린, 티파니, 아리아나라그란데, 라나델레이..뒤죽박죽 섞여 있지만 하여튼 매번 나오는 100곡을 항상 듣고 있다. (생각보다 질리지도 않는다. 아, 최근엔 권진아 신보도 업데이트 됐다. 맨 앞의 두 곡만 곡명을 쓴 것은, 랜덤재생하면 제일 자주 나온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실은 똑같은 노래를 계속 듣고 크레마를 들여다 보는 게 꼭 지하철에서 데이터가 터지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한 달에 6기가짜리 요금제를 썼는데, 토론토에 와서 현지 유심을 쓰면서 4기가로 줄여 쓰고 있다. 토론토는 통신 요금이 싸지 않은 탓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6기가짜리 요금제를 써 보니 항상 데이터가 남아서 4기가도 괜찮을 거라고 판단한 탓이었다. 그러나 막상 4기가 유저가 되어 보니 데이터를 남용해 요금이 과금될까봐 겁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버스에서도, Glendon에서 Keele로 넘어가는 셔틀에서도, 듣던 노래를 또 듣고 SNS보다는 크레마를 보려고 하는 편이다. (라기엔 중간중간 하는 수 없이 데이터를 켜는 것은 2019년을 사는 대학생으로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즐거운 외식


익히 들어는 왔지만 밴쿠버에서부터 가장 적응이 안 되던 문화는 바로 팁이다. 캐나다-미서부를 여행하면서 엄마와 나는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급여를 받을 텐데 왜 우리가 팁까지 줘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성토하곤 했다. 엄마가 사라진 지금, 나는 팁을 낼 때 기분이 가장 묘하다. 온타리오주는 13%의 소비세를 소비자에게 청구하기 때문에(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메뉴판에 있는 가격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신이 나서 이것저것 시켰다가 계산서를 받아보면 세금 때문에 가격이 내 예상을 초월해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여기에다가 팁도 줘야 한다니! 돈이 나가는 게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에 앞서, 팁을 얼마나 어떻게 주는 건지에 대한 감도 잘 오지 않았다. 하지만 살다보니 정리가 됐는데...


- 팁은 소비자로서 서버의 서비스에 대해 평하는 문화이니 팁을 아예 주지 않거나 너무 적게 주면 해당 서버의 서비스가 후졌다는 뜻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일정 수준 정도는 주려고 해야 한다고 한다.

- 보통 팁으로는 10~20%를 많이 주는 것 같다. 서비스가 특별히 좋았다면 더 많이 줄 수도 있겠지만. 난 사실 서비스가 무난했다면 현금으로 낼 때는 대부분 10퍼센트(그게 계산하기 편하다) 정도에 맞춘다. 카드로 낼 때는 좀 다른데, 캐나다는 카드 기계를 소비자가 직접 누르는 방식으로 결제를 진행한다. 그러다 보면 결제 과정에 팁을 금액으로 낼 것인지 퍼센티지로 낼 것인지 선택하는 단계가 있고, 이때 퍼센티지를 선택한다면 힘들게 계산하지 않고 15%, 25% 등 5% 단위 비율의 팁도 낼 수 있다.

- 팁이랑은 별로 상관 없는 얘기지만, 캐나다(미국에서도 쓰더라) 카드 계산기의 이용법이 낯설어서 애먹었는데 엄마와 여행하면서 많이 연습했더니 토론토에 와서는 잘 할 수 있었다. (예!)


토론토는 안 그래도 외식비가 싸지 않고, 여기에 세금과 팁까지 붙으니 한 번 나가서 먹을 때 굉장히 부담스러운 편이다. 그러나 토론토에는 세계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이 존재하기도 하고, 내가 밖에서 먹고 있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고 있거나 적어도 동네와 어느정도 교감을 하고 있다는 뜻인 듯해서 눈물을 머금고 때때로 밖에서 먹으려고 하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저녁에도 외식했다. 외식은 즐거워!


한국에 두고 온 것들


- 10월 초 몬트리올 여행, 10월 둘째주 쿠바 여행(이렇게 다음 글들을 스포해 버렸다)을 준비하다가 치명적인 사실을 한 가지 알게 됐다. 그것은 내가 공인인증서를 한국에 두고왔다는 것! 하나카드는 캐나다의 몇몇 사이트에서 결제할 때 본인인증을 요구했는데, 가능한 방식은 본인명의 휴대전화의 ARS 인증과 공인인증서뿐이었다. 현지 유심을 사용하는 내가 ARS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답은 공인인증서뿐이었는데, 내게 공인인증서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너무 막막했다. 결국 나는 한국에 있는 언니를 동원하여 공인인증서를 캐나다에서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보안매체를 캐나다에 가지고 온 경우라면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한국의 친한 언니에게 이야기하니, '한국인은 살면서 공인인증서 때문에 한 번쯤은 발목잡히는 것 같아.'라는 명언을 남겼다. 공인인증서 제도가 조만간 전부 폐지된다고 듣긴 했는데 아직은 아니니, 혹시 떠날 생각이라면 공인인증서 챙기자.


- 다음 학기에 교환을 가는 친구들이 주변에 좀 있는데, 유독 술 좋아하는 친구 둘이 독일로 떠난다. 나는 그들에게 '네가 캐나다를 고르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야.' 라고 말했다. 둘 다 어이없어 했지만 진심어린 충고다. 오늘 함께 St.Louis에서 맥주를 마신 언니는 본인이 이렇게 술을 좋아하는 사람인 줄 몰랐다며, 캐나다는 맥주를 사기 어려운 곳이라는 사실에 대해 일주일에 한 번 슬퍼하겠다고 밝혔다. 캐나다인들은 literally 이슬만 마시는 건지 뭔지, 캐나다 마트에는 술이 없다. 술을 마시고 싶다면 술집에 가서 마시거나 liquor shop에가 가야 하는 편(놀랍게도 liquor shop 한 번도 안 가봤다. 가면 막걸리도 있다던데). 그러니까 가볍게 마실 수가 없다는 거다. 한국에서 그랬든 털레털레 수입맥주를 네 캔에 만원에 사서 집에 돌아올 수 없다. 토론토에 잠시 살러 온다는 것은 한국에 온갖 편의점과 슈퍼와..하여튼 네캔만원을 가능케 해줬던 것들을, 그들이 주는 작은 행복을 두고 온다는 말과 같다. (아, 난 행복하다 그래도. 불행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글을 다시 대충 훑어 보니 이상하게 TTC 부분이 긴 건, 뒤로 갈수록 피곤해지기도 했고 TTC가 정보전달할 내용이 많아서라고 믿고 싶다. (TTC 때문에 화가 저렇게 난 건...아닐 것이다.) 오늘 나름 술도 마시고 와서 조금 피곤했는데 그 상태를 무릅쓰고 이렇게 늦은 밤까지 글을 쓴 나 장해. 브런치를 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트리비아


캐나다에는 sweet potato fries를 많이 판다. 학식에도 있고 오늘 간 펍에도 있었다. 감자튀김처럼 고구마튀김이 나오는 건데 달짝지근 맛있지만 나는 다음부터는 그냥 감자튀김을 시키겠다. 그래도 가끔 생각나면 시켜야지.

오늘 먹은 것: Salmon lover의 Platter, 이름 기억 안 나는 대만 음식점의 몬스터 빙수, St. Louis의 고구마튀김과 맥주. 초콜릿 조금. 다 성공.

갑작스럽게 내일 토론토아일랜드에 갈 결심을 하며 잠에 들어 보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 잠은 와도 배는 고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