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주행 시험을 보러 마산에 갔다. 세 번째 도전이다. 비가 퍼부었다. 그간 아빠 차를 타고 마산에 오곤 했는데 이번에는 시외버스를 탔다. 동래에서 마산까지 시외버스 표값은 4200원. 와 싸다. 생각했다. 그렇지만 표값은 정직하다. 사십 분 걸리는 마산운 4200원. 한 시간 이십 분 걸리는 고향은 8400원. 우등은 만 원. 작은 숫자에 현혹되지 말자.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며 멍하니 있다가, 수다쟁이 할머니에게 거 좀 조용히 가자고 윽박지르는 다른 할머니에게 놀라기도 하다 보니 언덕배기에 구암고등학교가 보였다. 촌스러운 고등학교 마크와 벽돌색, 갈림길, 버스가 지나기 좁은 길을 보니 순식간에 십 대 시절에 발 담근 기분이었다. 안동에서 집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마산에 왔었지. 외롭게 맥모닝 팬케이크를 씹고. 팬케이크는 생각보다 맛없었고 어쩐지 그 시절에는 외로움에 취해있는 걸 좋아했다. 이제는 외로운 게 싫지만 이따금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면서 코웃음치게 되는(미안해 홀든).
터미널 근처의 가게들은 어쩐지 좁았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게들 사이에 스타벅스가 있었다. 콜드 브루를 시키고 앉아서 아빠를 기다렸다. 요즘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읽고 있다. 그는 우울한 인생에 상복을 입히는 작가다. 러시아 인들의 뼛속 깊은 절망은 어디서 오는 건지 닮고 싶을 정도다. 아빠가 스타벅스의 위치를 물어왔다. 설명하려고 지도를 켰는데 근처에 마산역이 있었다. 고등학교 3년간 이곳을 오가면서 근처에 마산역이 있는 줄도 몰랐다. 다른 세계는 늘 한 발짝 너머에 있고 넘어갈 생각이 없다면 그 존재를 영영 알 수 없다. 3년을 다니면서 마산역이 그곳에 존재함을 몰랐다니....
아빠를 만나 면허시험장으로 갔다. 워낙 촌에 있어서 혼자 가기는 무리가 있다. 면허시험장은 촌에 있곤 하다. 안전하고 수월해야 하니까. 그렇지만 나 같은 초보운전자에게 시험이 안전하고 수월할 리가 없다. 새벽에 친 천둥 핑계를 댔지만, 실은 잘 자지 못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앞으로 딸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무서웠다. 그보다도, 나는 한 번 실패한 일에 쉽게 기죽고 만다. 도로주행 시험을 보기 전에 기능시험은 세 번을 떨어졌다. 1년 전의 일이다. 리트 끝나고 여유로울 때 면허를 따 보자고 마음먹어 놓고는 기능시험을 자꾸 떨어지느라 계획대로 면허를 취득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1년(정확히는 약 10개월) 후인 지금에 이른 것이다. 아무튼, 그때도 그랬다. 세 번째 기능시험에서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 실격당했다. 어쩌면 내 무의식에는 이번에도 떨어지고 말지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던 게 아닐까. 기능시험을 마산에서 보지 않고 서울 도봉 시험장에서 보고 나서야 붙었다. 우스갯소리로 그날부터 풍수지리를 믿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움츠러들게 하는 환경에서 벗어난 덕이 컸던 것 깉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없었다. 오히려 처음 도로주행을 보러 나올 때는 자신감이 넘쳤는데. 그때는 기어와 핸들을 잘 다루지 못해서 탈락했다. 아빠 차로 연습하다가 시험장 차를 처음 탔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음에도 은근히 기가 죽었다. 버스를 타고 있으면 도로의 저 많은 사람들이 이 시험을 통과해서 운전하고 있다는 생각에 진이 빠졌다. 나는 그들만도 못하다는 생각. 그렇지만 불안은 뇌의 어느 한구석의 작용일 뿐, 언제나 이성은 싸우고 있다. 나와 동승했던 사람은 이미 운전을 하던 분임에도 긴장했댔잖아. 그 사람은 코스 이탈로 실격을 받았던 사람. 그런 사람도 있다. 떨어질 수 있다. 사람들은 떨어지면서... 불안과 이성이 싸울 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의구심이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뭔가에 서툰 나를 왜 이토록 견디지 못할까? 남들 다 몇 번씩 떨어지는 면허시험인데도.
자신이 없지만 이상하게 떨리지 않아 짬뽕을 맛있게 먹었다. 짬뽕에 땡초가 잔뜩 들어가 있었는데 그다지 맵지 않았다. 건더기를 다 먹지 않았다고 아빠에게 약한 잔소리를 들은 후 차에 올랐다. 운전을 했다. 네 가지 코스를. 처음 왔을 때보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자꾸만 실수를 했다.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좌회선 차선에 진입하지 못하고, 정지선을 넘어 정차했다. 중립 기어를 넣어야 하는데 후진 기어를 넣었다. 그간의 연습에서 하지 않던 실수였다. 그렇지만 차선을 바꾸는 능력, 깜빡이를 켜고 다른 차선에 진입하는 텀, 핸들 조작은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 시험은 앞사람들이 끝난 뒤, 그러니까 삼십 분의 간격을 두고 있었다. 내 이름이 짝수번째에 불려서 A, C 코스보다는 B, D 코스일 것 같았다. 아빠가 극성 학부모처럼 이리저리 참견을 했다. 아빠의 도움을 받아 면허 시험장에도 오고 운전도 배운 주제에 그건 좀 창피했다. 간사한 인간. B, D 코스 안내 영상을 2배속으로 한두 번 보다가 질려버려서 친구들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할 때 비가 덜 오길 빌어줘. 비는 조금씩 그치고 있긴 했다.
동승자는 60대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였다. 운전 고수이실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긴장하신 건지 중립기어도 하나도 넣지 못하시고 정지선도 아슬아슬하게 맞춰서 정차하셨다. 아저씨의 종료지점이자 내 시작 지점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뛰었다. 드디어 긴장이라는 것을 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긴장을 하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윤여정 선생님의 말씀을 곱씹게 된다. 인간은 긴장을 해야 해. 조금씩은 해야 해. 그래야 중요한 일을 해낼 수 있어. 그래 긴장은 잘하고 싶은 조바심이다. 내가 내 성과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심리적 징표다!
그렇지만 너무 많이 한 듯하다. 사이드 브레이크도 덜 풀고 출발했고 와이퍼도 더듬더듬 켰다. (그러게 비가 왜 와서는!) 첫 시험 때 운전한 차보다 차가 잘 나가지 않았다. 이상하게 길에는 차가 많았다. 동네가 베드타운인데 오후 시간대 시험이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연습 때는 한 번도 사람이 지나가는 걸 본 적이 없는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진입하려 했다. 보행자가 진입하면 멈추라고 배웠는데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일단 속력을 줄였다. 종료지점이 다가올수록 알쏭달쏭해졌다. 아 나 망한 건가. 이번에도 탈락이겠지. 파킹 기어를 넣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기고 시동을 끄는 것도 허둥거렸다. 그 순간 나오던 음성.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감독관님은 나를 차 밖으로 불렀다. 보행자 보호 위반으로 실격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아, 횡단보도에 발을 올려놓기 전에 비켜주신 보행자님. 죄송한데 감사합니다... 감독관님은 말했다. 절대 이 상태로 도로에 나가시면 안 됩니다. 등단한 작가가 등단이 끝이 아닌 것처럼, 면허도 운전의 시작에 불과하겠지요.
면허 있는 사람이 되었다. 면허증을 발급받고 나오자 비가 미친 듯이 퍼부었다. 아빠는 결과도 모른 채 나를 기다리다가 면허증을 손에 든 내 모습을 보고 말했다. 내가 네 사주를 네이버에서 찾아봤는데, 어부지리의 날이라더라. 어부지리. 그게 어디냐. 한편 나도 미신에 마음이 곧잘 철렁하는 편이라 시험 전에 절대 운세를 찾아보지 않는다. 이번에는 동기의 인스타그램에서 실수로 '엠비티아이 사주' 검사를 해보다가 '차 사고가 날 수 있는 사주이니 주의하여야 합니다'를 봐 버렸지만. 미신은 미신일 뿐이지만 어부지리는, 그게 어디냐.그나저나 미신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자면, 미신이라기보다는 신화적(굉장히 번역체적으로 말했을 때) 믿음 같은 건데, 사람은 궁지에 좀 몰려야 하는지도. 도봉의 기능시험장은 중앙선에 폴대가 빽빽히 꽂혀있었다. 오늘은 비도 오고 차도 안 나가고 길에 차도 많았다. 조물주도 드라마를 좋아하는 걸까.
덩치가 큰 아빠와 우산을 나눠 쓰니 어깨가 쫄딱 젖었다. 그럼에도 기쁜 마음으로, 여전히 간판을 바꾸지 않은 맥도날드를 향해 걸었다. 저녁식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