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적 인간: 시스템 구성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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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_Stanley Milgram은 인간의 복종을 유도하는 권위의 힘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연구자가 무고한 사람에게 고통스럽고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는 전기 충격을 주라고 한다면 당신은 그 명령에 따르겠는지요?'
1961년 밀그램은 지역신문에 예일대학교에서 ‘기억 실험’에 참가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냈습니다. 이 실험의 참가자들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겪습니다. 실험실에 도착한 참가자는 다른 참가자(참가자로 위장한 연구자)를 소개받습니다. 이 연구에서 처벌이 기억에 미치는 효과를 조사한다는 설명을 들은 후, 참가자는 선생님 역할을 맡고 다른 참가자는 학습자 역할을 맡습니다. 참가자는 자신의 역할이 학습자에게 연속적으로 전기 충격을 주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 때 학습자(위장한 연구자)는 전에 심장 질환으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전기 충격을 받으면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연구자는 전기충격이 고통스럽기는 해도 “영구적 조직 손상은 없을 것”이라 대답합니다. 그리고나서 연구자는 두 참가자를 데리고 옆방으로 가서 불안해하는 학습자를 전기 의자처럼 생긴 소름 끼치는 장치에 묶습니다. 이 과정이 끝나면 참가자는 실험실로 안내받아 15~450볼트를 조절할 수 있는 위협적인 전기 충격장치와 마주합니다. 장치에는 단계별로 조절 레버가 4개씩 있습니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전기 충격의 강도가 ‘약한 충격’, ‘보통’, ‘강함’, ‘매우 강함’, ‘극심함’, ‘매우 극심함’, ‘위험(심각한 충격)’까지 올라갑니다. 마지막 단계는 450볼트로 충격의 강도가 너무 심해 언어로 정확히 표현할 길이 없는지 섬뜩하게 ‘XXX’라고만 쓰여 있습니다. 연구자는 선생에게 학습자가 틀리게 답할 때마다 15볼트씩 충격 수준을 높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연구자는 선생 쪽에 남고 이후 실험 내내 함께합니다.
시작하기 전 참가자는 학습자가 어느 정도의 전기 충격을 받는지 가늠하기 위해 45볼트 정도의 불쾌한 전기 충격을 체험합니다. 그 다음에는 학습자가 기억 과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주되 점점 강도를 높이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참가자로 위장한 연구자는 실수할 때마다 전기 충격의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점점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뱉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억” 하는 소리를 냅니다. 120볼트에서는 “이봐요 진짜 아프다고!”라고 소리치고, 150볼트에서는 가가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이제 됐어요! 여기에서 나가게 해줘요. 심장이 안 좋다고 했잖아요. 제발 나가게 해주세요. 심장에 불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요. 더 진행하기 싫습니다. 내보내주세요.”
그러다가 충격 수준이 300볼트에 다다르면 학습자는 저항하며 벽을 쾅쾅 두드리고 이 시점부터는 학생이 답을 하지 않아 선생 앞에 있는 답을 가리키는 판에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학습자는 매번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계속 벽을 세게 두드리지만 이내 벽을 두드리는 것마저 그만둡니다. 선생이 학습자의 상태가 괜찮은지 확인해달라고 연구자에게 부탁하면 연구자는 거절합니다. “무반응도 오답으로 치고 더 높은 단계의 충격을 주세요” 선생이 실험 진행을 주저하면 “당신은 이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고 연구자는 말합니다. 이 때 선생이 고집을 부리면 연구자는 “당신에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계속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실험 참가자가 하급자에게 생길지도 모르는 문제에 자신은 책임지지 않겠다고 항의할 경우 연구자는 “책임은 내게 있습니다”라고 확신에 차서 말합니다.
참가자가 지시에 따라 충격의 강도를 그 끝인 450볼트까지 높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밀그램은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 전에 일류 의과대학의 정신과 의사 40명에게 실험 절차를 설명하고 결과를 예측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학습자가 반응을 멈춘 후에도 계속할 사람은 4% 이하이고 마지막 단계까지 충격을 가하는 사람이 0.01% 밖에 안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학습자가 고통에 반응을 멈춘 후에도(그런 연기를 한 후) 전기 충격을 계속 가한 참가자는 약 75% 나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마지막 단계까지 강도를 올린 참가자가 65%에 달했다는 것입니다.
(그림 설명)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소속 정신과 의사들의 예상(거의 없을 것이다)과 달리, 무고한 학습자에게 최고 강도인 450볼트까지 전기 충격을 주라는 연구자의 명령에 복종한 참가자는 대부분이었습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완벽하게 복종했을까요? 왜 결과를 정확히 예측한 사람 역시 거의 없었을까요? 어떤 사람은 이 실험을 통해 결정론적 인간 본성 – 특히 성악설 – 을 끄집어 내기도 합니다. 사람은 본디 천성이 악하고 또 약해서 언제든 그것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실험 설계 자체에 허점이 있어서 실험 참가자가 이것이 장난인 것을 눈치챘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도 진행된 반복적인 유사 실험에서도 결론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밀그램은 ‘누구라도’ 예일대학처럼 평판 높은 기관은 “절대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도록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편견이 복종을 이끌었다는 해석에 반박하기 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시시한 ‘리서치 기관’의 이름을 걸고 복종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일부러 의심 많은 사회과학자들을 초대해 반투명 거울 뒤에서 실험을 지켜보게 했습니다. 모두들 자신이 목격한 복종 수준 뿐 아니라 복종과 동시에 일어나는 사람들의 괴로움을 보고 충격 받았습니다. 초대된 한 과학자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처음에 나는 성숙하고 침착해 보이는 회사원이 웃음을 띠며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실험실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20분도 지나지 않아 그는 위축되어 경련을 일으키고 말을 더음는 등 만신창이가 되어 빠르게 신경쇠약 상태에 이르렀다. 그는 계속해서 자기 귓볼을 잡아당기고 손을 비틀었다. 어느 순간에는 자기 주먹으로 이마를 치며 중얼거렸다. “세상에나…! 그만하자” 그러면서도 연구자의 모든 말에 계속 반응했고 끝까지 복종했다.”2)
밀그램의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겪는 일을 실제라고 믿었고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과연 정말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고정된 본성이 작동한 결과일까요?
사회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_Richard. E. Nisbett 미시간 대학 석좌교수와 리 로스_Lee Ross 스탠퍼드 심리학 교수는 그것이 결국 미묘한 상황 맥락의 힘이라 설명합니다. 복종의 결과는 밀그램의 실험 상황에 나타난 몇 가지 미묘한 특징이 사람들을 이례적으로 행동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밀그램은 실험 참가자들이 이유를 묻지 않고 시키는 대로하고 자신의 책임을 자진해서 양도한 권위자에게 충실히 따르게 한 암묵적 계약을 분석했습니다. 그 분석에서 그는 상대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행동으로 시작해 잔인하고 위험한 시련을 주는 일종의 폭력에 대한 공모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단계적으로 변화한 특징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선생 역할을 맡은 실험 참가자(이하 선생으로 축약해 표기)가 아무 죄가 없는 피해자에게 한 번에 엄청난 전기충격을 가하라는 단순한 명령에 복종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처음에 선생이 진행한 것은 스스로 과제를 수행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로 학습자가 그 피드백을 받겠다고 동의한 약한 처벌이었습니다. 선생은 학습자가 그랬듯 자신이 동의한 최종 결과를 상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특별한 처벌 과정(각 오답마다 일정 강도로 처벌 수준을 높이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단계적으로 계속 진행하면서 가한 충격이 걱정스러운 수준에 이르고 나서야 선생의 심리적 딜레마가 분명해졌습니다.
어떤 면에서 선생은 자신과 연구자에게, 그리고 학습자에게도 만족스러운 이유를 찾아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진행해오다가 이제 그만두기로 한 결정을 정당화해야 하고, 조금 전까지는 살짝 덜한 정도라 충격을 주는 것이 괜찮았을지 모르지만 다음번 충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학생이 자신이 겪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답변을 지속하는 한 선생이 이를 중단하고 계약을 거스를 정당한 이유를 찾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실제로 실험과정 가운데 딱 한 시점에서 선생은 그 이유를 찾았습니다. 그것은 학습자가 답변을 그만두는 시점이었습니다. 이는 학습자가 전기 충격을 받는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을 철회하는 시점이었습니다. 바로 이 때에 가장 자주 의미있는 정도로 복종 거절이 있었습니다.
리처드 니스벳Richard. E. Nisbet과 리 로스Lee Ross는 실험 참가자가 자신의 상황과 행동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이해하려면 몇몇 추가적 특징을 더 봐야한다고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처음부터 끝까지 명령에 질문을 던지지 않거나 실험을 계속하는 것에 아무런 반대 표시도 하지 않고 복종하기만 한 실험 참가자가 상대적으로 소수였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여자는 대부분 ‘복종하는 실험 참가자’ 역할에서 벗어나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는 연구자에게 그것이 타당한지 의의를 제기하고, 연구자가 학습자의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사실 많은 실험 참가자가 결국 그만두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밀그램의 실험 설계는 그들이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혀도 실제 참여를 끝내기가 어렵게 되어 있었습니다. 대다수 실험 참가자는 연구자에게 맞섰고 계속 실험을 격렬히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이 강요했습니다. “당신은 이 실험을 계속해야 합니다”, “당신에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밀그램의 실험에는 자신의 행동을 수이 그만둘 ‘불복종 경로’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또 당시 벌어진 상황은 실험 참가자 입장에서 말이 안되거나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실험참가자의 과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 학습자에게 심한 전기충격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연구자는 이를 강요하며 학습자가 괴로워서 외치는 소리나 심장 상태에 관한 경고, 답변을 거부하는 것 그리고 불길한 침묵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 한술 더 떠서 연구자는 사건 전개에 관해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고 그런 행동을 설명하거나 정당화하려 하지도 않았으며, 왜 실험을 계속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았습니다. 학습자의 상태를 확인하라는 실험 참가자의 요청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실험 참가자가 이 속임수의 성격과 실험의 진짜목적을 모두 이해하지 않는 한 그들로서는 안정적으로 ‘상황을 정의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어떤 것도 말이 되지 않고 행동과 주변에 벌어지는 결과에 관해 자신이 이해한 것이 제한적이고 부족할 때 많은 사람들은 우유부단해지고 권위에 도전하거나 역할에 따른 기대를 부정하지 못하며 침착하게 확신에 차서 지시하고 명령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의지합니다. 요약하면 사람들은 밀그램의 실험 참가자가 보여준 것과 같은 행동을 합니다.
리처드 니스벳Richard. E. Nisbet과 리 로스Lee Ross는 밀그램의 실험은 인간 본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단언합니다. 그보다 밀그램의 실험은 상황, 권위의 힘이 사람들의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친절한 성향을 넘어선다는 점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라 평합니다.
일련의 교훈은 인간이 ‘상황’을 어떻게 조성하고 구성하는가에 따라 인간의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인간의 본성 여부에 상관없이 때로는 우리는 상황을 조작하고 시스템 설계, 훈련을 통해 원하는 인간 행동을 자극해 이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과 관련해 2015년 심리학자 매튜 홀랜더Matthew Hollandar는 밀그램의 충격 기계에 녹화된 117건의 녹음 테이프를 재검토했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을 중단한’ 참가자에 초점을 맞춰 연구했습니다. 광범위한 분석 끝에 그는 공통적인 패턴을 발견했습니다.3) 실험을 중단한 피험자는 세 가지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1. 피해자와 대화한다.
2. 회색 실험실 가운을 입은 남자에게 책임을 상기시킨다.
3. 계속할 것을 반복적으로 거부한다.
의사소통과 대립, 연민과 저항, 홀랜더는 사실상 모든 참가자가 이런 전술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훈련 가능한 기술입니다. 우리는 적절한 시점에 적절히 ‘저항’하는 방법을 훈련함으로써 실제 저항할 수 있습니다. “밀그램의 영웅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대체로 의심스러운 권위에 저항하는 역량이며, 이 역량은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가능합니다”4)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는 점을 우리는 잊어선 안될 것입니다. 전쟁에서 서로가 서로를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요? 스페인 내전에 참가했던 영구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전쟁 경험을 이렇게 기술한 바 있습니다.
‘어떤 한 남자가.. 참호에서 뛰어나와 방어용의 낮은 벽 위로 달려 갔다. 코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채 두손으로 바지를 추켜 올리면서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를 쏘지 않았다.. 바지를 추켜 올리려 하던 상세한 장면 때문이었다. 나는 ‘파시스트’에게 총을 쏘기 위해 이곳에 왔다. 하지만 바지를 추키고 있는 남자는 ‘파시트트’가 아니라 분명히 나와 같이 생긴 인간이었다. 그에게 총을 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5)
조지 오웰은 인간이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데 일반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공감 능력을 잘 표현했습니다. 군사 역사학자들은 오웰이 겪은 총을 쏘는 어려움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인간을 찌르는 것입니다. 예상 밖으로 치열한 전투였다 알려진 워털루 전투(1815년)에서 총검을 휘두른 병사에 의해 발생한 부상은 1퍼센트 미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수많은 시간 동안 전쟁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상자는 무엇 때문일까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사망 원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6)
화학: 2퍼센트
폭발, 압착: 2퍼센트
지뢰, 부비트랩: 10퍼센트
총알, 대전차 지뢰: 10퍼센트
박격포, 수류탄, 공중 폭탄, 포탄: 75퍼센트
이 희생자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대부분 원격으로 사망했다는 점입니다. 압도적으로 대부분의 병사는 한 번도 본적 없는 사람이 버튼을 누르거나 폭탄을 떨어뜨리거나 지뢰를 설치한 결과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하고 바지를 추켜올리는 동안에 사망한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전시 살인은 멀리서 벌어지는 행위입니다. 역사 속에서 무기 체계는 모든 전쟁의 핵심 문제인 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혐오를 더 잘 극복하게 만들도록 진화했습니다.
누군가의 눈을 쳐다보면서 살해하는 것은 평범한 인간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다. 어느 시대에서나 대부분의 전쟁 승리 공식은 멀리서 최대한 많은 사람을 쏘는 것이었습니다. 군대는 장거리 무기 외에도 적과의 심리적 거리를 넓히는 수단을 추구합니다. 만약 상대방을 벌레로 묘사하는 방법 등으로 그들을 비 인간화할 수 있다면 상대를 정말 인간이 아닌 것처럼 대하기 더 쉬워집니다. 또 앞에서 잠시 기술했던 것처럼 인간을 마약에 취하게 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 능력을 무디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만일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군대가 메스 암페타민 알약을 먹지 않았다면 전쟁의 폭력성과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군대는 군인을 ‘조건화’하는 방법도 고도화시켰습니다. 요즘 미국 특수부대 군인들은 인간 형상의 과녁을 향해 본능적으로 사격하도록 훈련을 받음으로써 총을 쏘는 것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도 수행할 수 있는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반응이 됩니다. 저격수들은 훈련이 더 과격합니다. 검증된 방법 중 하나는 훈련병이 특수 장치로 인해 강제로 눈을 크게 뜨고 의자에 묶여 앉아 있는 동안 점점 더 끔찍한 비디오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현대 군대는 타고난 공감, 혐오감을 근절할 수 있는 훈련법을 찾아 그리해 “만들어진 경멸”을 창조합니다. 일련의 조건화는 실제 군대가 목표한 ‘승리’에는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와 동시에 이에 참여하는 인간의 ‘인간성’의 몰락과 죽음도 함께 이뤄진다는 점도 인식해야 합니다. 현대 전쟁 이후 점점 더 많은 전현직 군인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단지 군대라는 속성 그 자체만은 아닙니다.
이 복잡계 세계의 인간사 모든 경우에서 사람과 상황은 상호작용합니다.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사람은 행동하고 다시 또다른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때로는 사람보다 상황입니다.(상황이 사람을 지배합니다)
이 강한 시사점을 다시 기업, 조직 메커니즘의 차원에서 재구성해 이야기해봅시다. 이는 기업이 어떤 철학과 시스템과 구조, 프로세스, 전략을 갖는가에 따라서 인간의 행동과 그 행동이 만들어 내는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다시 두가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기존의 테일러리즘, 관료주의 경영 시스템이 우리의 행동 어디를 어떻게 자극해 왔는지에 대한 것을 근본적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가 지향하는 마인드셋과 행동을 어떻게 자극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상대평가를 시행합니다. 그리고 어떤 기업은 동일한 팀 내에서 그 원리를 적용합니다. 예컨대 같은 10여명의 팀 내에서 성과에 대한 차등 등급은 강제로 정해질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팀에 동일한 목표가 주어졌을 때 이 ‘상황’은 구성원의 어떤 측면을 자극할까요? ‘협력’일까, ‘경쟁’ 일까요? 또 상당수의 기업은 목표관리를 시행합니다. 그리고 그 목표와 보상을 강하게 연계하려 합니다. 그것을 객관적인 근거에 기반한 보상이자 평가라 믿습니다. 목표 달성도에 따라 보상을 지급하는 구조는 구성원의 어떤 측면을 자극할까요? 구성원은 신나고 몰입해서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려 할까요? 보상받을 확률을 높이기 위해 가능한 어떤 명분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목표치를 낮추려 할까요?
흔히 영업조직의 경우 이 메커니즘이 매우 잘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업 조직 마저도 생각보다 복잡할 때가 많습니다. 예컨대 제약사 영업은 세일즈 지역 구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세일즈 지역, 구역을 어떻게 나누는가에 따라 영업활동의 근본적인 유불리가 갈릴 때가 많습니다. 어떤 구역은 채 몇 달이 되지 않아 세일즈 목표치가 달성됩니다. 어떤 구역은 갖은 노력을 해도 목표치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것은 과연 세일즈 인센티브가 전제한 ‘개인의 노력’과 결부되는 것일까요? 그래서 본래의 목적인 구성원의 몰입과 동기 부여에 기여할까요?
리더가 보았을 때 팀원 중 한 명이 유독 실수가 잦고 좀처럼 일에 의욕을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리더는 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더욱더 자주, 면밀히 신경을 써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리더는 직원의 성과를 위해 좀 더 관심을 갖고 ‘언제까지,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일일이 지시하기 시작합니다. 주간 점검을 일일 점검으로 바꾸고 밀착관리를 선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더의 눈에 직원은 자꾸 자신을 피하고, 일을 상의하기 보다 혼자 알아서 처리하려 듭니다. 자꾸 피드백 할 내용이 늘어만 갑니다. ‘내가 이토록 직접 신경을 쓰는데 왜 팀원은 개선되지 않는 것일까?’ 리더는 생각합니다. 정말 무능력한 팀원을 선발한 것일까요?
‘상황적 인간’의 교훈은 우리가 어떤 시스템 혹은 제도 혹은 정책을 ‘어떻게’ 설계하고 조직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강력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인간이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인 동시에 ‘상황, 환경’의 영향을 받는 존재라면 우리는 그 방향성에 맞는 ‘상황, 환경’을 고려함으로써 좀 더 나은 인간, 조직을 향해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현재 우리의 조직 시스템이 어떤 상황과 환경을 조성하고 있고 대체로 우리가 지향하려 하는 인간다운 인간을 어떻게 방해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는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references
1) Milgram, S,. “Behavioral study of obedience”,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67(1963), pp. 371~378
2) Ibd, 377
3) Matthew Hollander, ‘The Repertoire of Resistance: Non-Compliance With Directives in Milgram’s “Obedience” experiments’, British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Vol. 54, Issue 3 (2015)
4) Matthew Hollander ‘How to Be a Hero: Insight From the Milgram Experiment’, Huffington Post(27 February 2015)
5) George Orwell, ‘Looking Back on the Spanish War’ (August 1942)
6) John Ellis, The World War II, Databook, The Essential Facts and Figures for All the Combatants (London, 1993), Table 57, p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