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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Jan 28. 2023

01. 또 퇴사했습니다

프롤로그


서른의 끝자락, 여섯 번째 사직서를 쓰며 1년을 채우지 못한 한 회사에서의 시간도 마무리했습니다.


사실 퇴사 한 달 차인 지금, 그때의 일은 아직은 떠올리기 고통스러운 ‘독’과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경험은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고 믿기에,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준 ‘약’이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마음을 담아 그때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고요.




저는 대학 졸업 후, 20대에는 열 명 남짓의 회사 다섯 곳을 다녔습니다. (거의 1년에 한 번씩 회사를 바꾼 셈이네요) 당시 기업의 평판이나 연봉 등에 상관없이 채용공고만 보고 오로지 내가 재밌게 잘할 수 있는 일이면서도 비교적 채용 과정이 까다롭지 않은, 빠르게 입사할 수 있는 중소기업들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경력들을 발판 삼아 더 좋은 환경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이 늘 있었고요.


그러나 너무 쉽게 택한 탓일까. 저의 커리어 인생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수습 기간 3개월을 채우지 않고 두 달 만에 나온 곳도 있고, 5개월간 근무했던 회사에서는 또 얼마 버티지 못한 저에게 실망해 퇴근길 고속버스에서 한 시간 내내 울었던 적도 있고요. 늘 갖가지 이유로 그간의 회사들을 진득하게 다니지 못한 이 시간들은 저의 콤플렉스이기도 합니다.




그랬던 저는 바로 작년인 서른이 되던 , 드라마에서나 보던  건물, 사원증이 있어야만 출입이 가능한 (과장하자면) 드라마에서나 보던 회사다운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저의 여섯 번째 회사였어요.


처음으로 직무만 고려한  아닌, 정말 가고 싶은 회사였습니다. 어렵게 준비해 들어간 곳이라 성취감도 있었지만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는   행복했습니다. 구구절절 어떤 회사인지 설명해야 하는 이전과는 달리 이곳은 회사 이름만 말해도 부모님께서   아셨으니까요.


그러나 꽃길을 진득하게 걸을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행복은 찰나였고, 허울이었습니다. 다섯 번의 회사를 거치며 ‘프로 이직러’로서 자부했던 저의 ‘적응력’은 이곳에서만큼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9개월의 시간 동안 이 조직에서는 무 쓸모한 이방인으로 지냈으니까요. 팀 왕따 그런 건 전혀 아닙니다.


쓸모없는 이방인의 삶은 나의 지난 삶까지 부정하게 만들 만큼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딱 1년만 다니기로 나름대로의 목표를 정했습니다. 당시 3~4개월만 더 다니면 1년이라는 시간을 채울 수 있었고, 생애 첫 승진, 각종 상여금도 받을 수 있었거든요. 무엇보다도 1년도 못 다니고 '또 포기하는 나'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 애매한 3개월을 버티다가는 저의 정신 상태가 망가져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에 퇴사를 선택했습니다. 남느냐, 떠나느냐. 결국 차악을 택하는 결말이었기에 지난 시간을 떠올리는 게 달갑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이야기를 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앞으로 비슷한 환경과 사람을 만났을 때 조금은 더 슬기롭게 대처하며 저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다시는 비슷한 상황을 겪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쓰고자 합니다. 자책, 자기 연민, 누군가를 탓하는 피해의식은 배제하고 싶고요.


사실 퇴사를 하고 나서 ‘좋다’, ‘후련하다’의 마음은 크지 않습니다. 결국, 대책 없이 도망쳐 나온 게 맞으니까요. 다만, 저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환경에서 벗어났다는 것에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퇴사라는 선택은 끝났으니,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제가 한 선택이 '옳은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서두에서 말한 그간의 시간들을 ‘독’이 아닌 ‘약’으로 만드는 것은 저의 의지에 달려있을 테니까요.


앞으로 연재할 글이 저의 9개월 간의 회사 생활을 되돌아보기 위한 글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가까운 주변인의 위로보다도 나와 비슷한 상황과 생각을 담은 글에서 더 큰 위로를 받기도 하니까요. 특히 저와 같이 회사를 그만두면 내 인생이 끝나버릴 것 같은 불안함과 두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에게 무한한 용기를 전합니다. (회사는 생각보다 별게 아닐 수도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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