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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Dec 04. 2023

사회적 작가가 되다

책 출간을 앞두고

오랜 시간 써왔던 소설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마침표에게 이전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면, 이젠 정말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침표를 지우고, 위치를 바꾸고, 모양도 바꿔보고, 더 크게 혹은 더 작게 만들어도 보고.

어쨌거나 마음만 먹으면 언제건 지우고 다시 찍을 수 있는 마침표였다.

그런데 이제는 안 된다. 마침표가 완전히 내 손을 떠나갔기 때문이다.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최종 원고까지 모두 다 마쳐서 편집자에게 넘기고 나니,

후련함이나 섭섭함 따위를 느낄 새도 없이 다음엔 또 무얼 쓸지 고민하고 있다.

이전처럼 썼던 소설을 주물럭대거나, 무작정 쉴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작가'라는 단어가 직업이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동안 느껴왔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걸 이제야 인지하는 요즘이다.


드디어 '사회적 작가'가 된다.

스스로 칭호를 붙이던 시기를 지나, 정말 누구에게나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출간을 앞두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전과 그리 달라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고 출간하고 나면 뭐가 달라질까? 글쎄, 잘 모르겠다.

인생이 180도 변신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면 이런 글을 쓰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책이 출판된 이후의 삶은 거꾸로 뒤집힌 세상이 아니라,
데칼코마니처럼 그저 두 배로 늘어난 세상일 테니까.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은 나의 글이 되겠지.

나는 더 이상 쓰고 싶을 때만 쓸 수는 없게 될 것이다.

그동안 글자들은 내게 하나의 목표와도 같았지만, 앞으로는 글자가 나의 수단이 될 것이다.

그 기막힌 변화에 적응하려거든, 지금부터라도 손가락을 풀어줘야 할 필요가 있다.

내 책이 세상에 나온다 한들, 내가 나서서 알리지 않으면 누가 알아주나.

더 많이 쓰지 않으면 이어지지 않을 삶이 되었다.

기쁘면서도 두렵고, 피곤하면서도 설렌다.


이 시점에서 가장 먼저 쓰고 싶은 글이 뭐냐고 묻는다면, 자서전이다.

웃기시네, 네가 무슨 자서전?

이렇게 생각할 거 다 안다. 스스로한테도 몇 번 말해봤는데 소용없다.

자서전이 뭐 별 건가. 내 일생을 소재로 적는 게 자서전인데.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세상이다. 자서전 하나쯤은 있어도 되지 않겠나.


다만 똥기저귀 차고 있던 갓난쟁이 때부터 구구절절 써 내려갈 생각은 없다.

기억력이 받쳐주지도 않거니와, 아팠던 기억까지 미화시키기엔 덜 늙었기 때문이다.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기록, 작가로서의 일생만으로도
충분히 써볼 만한 자서전이 되진 않을까?

죽은 후에 남이 써주는 자서전을 읽으며 수정해 달라고 꿈에 찾아가느니

내가 쓴 걸 보면서 머리 쥐어뜯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거라든지, 사람들에게 이 글로서 사랑받고 싶다든지 하는 허무맹랑한 욕심은 내려놓고

그저 작가가 되기 위해 지내왔던 지난 생활들을 기록해보려 한다.


제목 배경 출처 : Image by Mystic Art Desig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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