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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한 수요일

전업작가 생존기

by 담작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자문을 구하고자 거의 10년 만에 대학교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다.

학교 다닐 때야 수업 열심히 듣고, 교수님이 부르면 강연회 같은 것도 가서 작가들 사이에 껴서 밥도 얻어먹고 했지만... 그런 학생이 나만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그 간의 공백을 채울 만큼 반가운 제자는 아니었을 거다. 그걸 스스로 잘 알고 있어서 연락하는 것 자체도 고민했다. 심지어 알고 있는 게 번호뿐이라서 카톡으로 보내느라 더 쩔쩔맸다.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일단 전송. 막상 그렇게 연락을 보내놓고 나니 염치가 불구해져서 오만가지 잡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라도 읽씹 당할까 봐, 아니면 번호 바뀌었는데 누구냐고 할까 봐... 나를 기억하실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라 '어떡하지?'만 연발.


그런데... 1이 사라졌다.

답장을 기다리는 10분이, 근 5년 중에서 제일 떨리는 순간이었다. 점심으로 먹었던 떡볶이가 역류할 것 같았다.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토를 가라앉히고 차분히 기다려 보기로... 는 개뿔. 내가 보낸 메시지를 건방지다고 생각하실까 봐 이미 보낸 문자를 읽고 또 읽었다.

10분 만에 온 교수님의 답장은 조금 딱딱했지만, 그래도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시기로 했다.


대학교가 영 쓸모없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성적 맞춰서 더 좋은 학교 가라고, 뭐 하러 그런 델 가냐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고등학교 담임이 떠오른다. 남들이 뭐 라건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갔고, 믿음이 부족해 휘청거리기는 했어도 결코 믿음을 잃지는 않았다.

어디서든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는
끝내 무언가가 남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감사한 수요일.

어쩐지 다이내믹한 일주일이 흘러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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