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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작가 Jun 12. 2024

글을 써야만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밀리로드 연재 시작

문예창작과를 다니며 나는 단편소설을 꾸준히 써왔다. 각종 공모전과 신춘문예에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졸업한 후에도 작품은 계속 썼고, 매년 응모를 해왔다. 하지만 그중 단 한 편도 붙지 않았다.

2018년의 어느 날, 작은 소재 하나가 떠올랐다. 흘러가듯이 대화하다가 나온 아이디어였다. 그동안 써왔던 수많은 번득이는 아이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밌겠다 싶어서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구상을 하고 나니 뼈대가 너무 작아 보였다. 욕심을 내서 조금씩 키웠더니 뼈대가 처음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커졌다. 여기에 살을 붙이기 시작하니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해졌다.

그동안 내가 써왔던 단편들에 비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껏해야 몇 개월, 길어봤자 일 년 정도면 쓰겠지, 생각했던 것이 우스울 정도로. 내용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어깨가 무거워졌다. 단편소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게에 나는 처음으로 머리를 굴려보기 시작했다. 더 효율적이고 손상 없이, 작품을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그 사이에 일을 시작했다. 슬퍼할 여력도 화를 낼 기운도 없이 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가끔은 주말도 없이 일했다. 사회초년생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버둥거리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소설 쓸 시간은 당연히 부족했고, 깎이는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늘어져 있는 시간이 늘었다.

잘 써지는 날도 있었지만, 마음처럼 써지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허무하게 흩어진 글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만두고 싶어졌다. 내가 재능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리고 그건 아마 대체로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난 그저 천재이고 싶었을 뿐, 천재는 아니었으니까.

좌절을 계속하면서도 끝끝내는 멈추지 못하고 계속 글을 썼다. 한 번 시작한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 끝장을 보고야 마는 것, 남들은 엉덩이 싸움이라 부르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자 나의 유일한 장점이었다. 길고 긴 소설과의 싸움은 5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무언가를 계속 좋아하는 것도 능력인 것 같아.”

친구의 말처럼 포기하지 않고 한 가지를 쭉 좋아하는 것이 나의 뛰어난 재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포기를 안 한 게 나의 능력 덕분은 아닌 것 같다. 계속 좋아하는 능력이라니. 능력은 내 의지로 환산할 수 있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다.

그랬다, 나는 긴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글쓰기를, 소설을, 나의 글을 미워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종종 나 자신이 미워지는 순간은 있었다. 거의 대부분이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있을 때였다.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리면 머릿속에는 어김없이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이제야 알겠다. 나는 글을 써야만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다. 글자를 쓰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모든 글을 사랑한다. 이 취중도 아닌 진담을 나는 뒤늦게나마 이해하고 있다.


밀리로드 | 밀리의 서재 (millie.co.kr) : 담자연 / 심장개업

밀리로드에 장편 소설을 연재하게 되었다. 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이 아름답고 멋진 글자의 향연을 다른 누군가도 읽고 사랑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하게 담아냈으니 한 번쯤 읽으러 가보시라는 권유를 드리며, 짧은 듯 긴 고백을 마친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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