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서울대에서 학부모들에게 스티커를 나눠준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피식 웃었다. 애들이 과잠 입고 다니는건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왜 부모가 그렇게까지 해야 하지? 내 아들이 그랬다면 스티커를 받았을까 잠깐 생각해봤는데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냥 그 정도였다.
그런데 페친 중 한 사람이 이 일로 투덜거리길래 그런가보다 했다. 그래, 뭐 자랑할 수도 있겠다 했다. 문제는 그 글에 달린 댓글이었다. 역시 페친이었는데 글의 핵심은 '지들이 서울대 못 가서 찌질하게 질투하는 거에요' 라는 내용이었다. 헉 했다. 이 이슈에 대해 저런 생각을 가질거라 생각을 못했기에 충격은 컸다.
그렇다고 답답한 마음에 스레드에 짧게 글을 올린게 실수였다. 대학은 아이들이 갔는데 왜 부모가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지 모르겠다고 글을 올렸더니 (서울대생으로 보이는) 어떤 사람이 내 프로필에 브런치상 받은건 왜 써놓냐고 비아냥대고 갔다. 프로필은 그러라고 있는거 아닌가? 논쟁할 가치를 못 느껴 그 사람을 차단하고 글을 지웠다.
그런데 왠걸, 스레드에 '서울대'로 검색을 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게 왜 문제인가' 심지어는 '그런 것도 자랑 못하는 이 나라는 공산국가인가'라는 논지를 펴는걸 보고 또 한 번 헉했다. 이런 접근은, 비약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될텐데... 그래도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나왔다는 사람들이 이 정도의 논리라니...
미국도 그런데 왜 우리나라만 유독 이러냐고 논지를 펴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미국이 하면 다 옳은 것인가? 더구나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글을 조금만 읽어보면 서울대 이슈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미국이 하버드와 우리나라의 서울대는 그 상징성이 정말로 많이 다르지 않나.
미국은 대학마다 특성화가 되어 있는데다 스티커를 붙이는 이유가 좀 다르다. 그들에게 대학은 여러가지 성취 중 하나일 뿐이지 우리나라의 서울대처럼 지배적이고 독보적인 상징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적어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그 이름으로 칭송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대학 보내는 것을 왜 자랑하면 안되냐는 서울대생들에게 똑같이 묻고 싶다. 그런 배타적 우월감을 굳이 스티커로 드러내는걸 조금 비웃는 것도 자유 아닌가. 그 정도도 못견딜거면 아예 자랑을 하질 마시던가.
내가 스티커 뉴스에 이질감을 느꼈던 것은 서울대의 가치를 폄훼하거나 서울대생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누구 말대로 바지 속의 물건에 대해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는걸 뭐라 하겠는가. 그걸 자랑스럽게 꺼내 들고 다니는게 문제지.
나는 지방대를 나왔지만 나이 먹을수록 작은 키 만큼이나 학벌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서울대 나온 분들 중에는 정말 존경하는 분도 있고, 정말 쓰레기 같은 인간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보니 학벌이 한 인간을 판단하는데 얼마나 작은 부분인가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아들이 간 대학 스티커를 붙이는게 괜히 나마저 부끄러웠을 뿐이다.
모든 걸 차치하고서라도 학교는 아이들이 간 것이고 부모는 그저 써포트한 것일 뿐이다. 성인이 되면 여러가지 의미로 아이들을 독립시키는게 서로를 위해서도 좋은 것 아닐까. 그런데도 굳이 '내 아이가 서울대에 갔어요'라고 광고하고 싶은 마음은 백번 양보해도 내게는 천박하게 보일 뿐이다.
솔직히 긴 인생에 스무 살에 얻은 학벌은 그저 작은 시작점 아닌가. 한 사람의 인간됨을 완성하는건 어떤 특정 대학의 학위 하나가 아닐텐데... 그 세계의 일원이 된 것으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뭐라 하지 않겠으나 굳이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무 살의 자랑스러운 성취, 딱 그 정도로만 인정하겠다는 거다.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좋다. 그런데 그것이 타인에게 인정받을만한 것인지는 한 번쯤 깊이 사색해보았으면 좋겠다. 작금의 나라꼴을 보면 지금 그대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티커가 아니라 일말의 책임감과 부끄러움일텐데... 물론 이렇게 얘기해도 '꼬우면 서울대 가든가' 하는 답을 내놓는다면... 그래 더 이상의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