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종종 양날의 검이 된다. 깊은 역사와 품격을 보장해주지만, 동시에 고리타분하고 접근하기 어렵다는 선입견의 감옥에 갇히기 쉽다. 한국의 전통차 시장, 그중에서도 ‘말차(Matcha)’는 오랫동안 다도(茶道)라는 엄숙한 형식과 정적인 이미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2019년 등장한 '수퍼말차(Super Matcha)'는 이 해묵은 공식을 단숨에 깨뜨렸다. 이들은 말차를 명상의 도구가 아닌 '에너지의 원천'으로, 다기(茶器) 속의 음료가 아닌 '스트릿 문화의 아이콘'으로 재정의했다. 스몰 브랜드가 어떻게 로컬의 전통 자산을 글로벌한 감각으로 해킹하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지, 수퍼말차의 행보는 현대 브랜딩의 가장 짜릿한 파열음을 들려준다.
수퍼말차의 브랜딩에서 가장 돋보이는 지점은 '말차'라는 원료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다. 기존의 차 브랜드들이 말차의 정적인 치유와 마음의 평안을 강조할 때, 수퍼말차는 말차가 가진 '천연 에너지'와 '집중력 향상'이라는 기능적 측면에 집중했다.
이들은 말차를 커피의 대안, 즉 '더 건강하고 깨끗한 카페인 공급원'으로 포지셔닝했다. 브랜드 네임에 붙은 '수퍼(Super)'라는 단어는 이러한 의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는 단순히 차를 파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생산성을 높여주는 '기능성 음료'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한 것이다. 스몰 브랜드가 기존 시장의 강자들과 싸우는 가장 영리한 방법은 제품의 본질은 유지하되, 소비자가 그 제품을 소비해야 하는 '이유'를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수퍼말차는 말차를 정적인 과거에서 역동적인 미래로 끌어왔다.
수퍼말차를 각인시킨 일등 공신은 단연 독보적인 비주얼 전략이다. 한국적 미학이나 녹색의 자연 친화적인 이미지에 천착하는 대신, 이들은 강렬한 '네온 그린'과 '블랙'의 대비를 브랜드 컬러로 채택했다. 마치 테크웨어나 스트릿 패션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이 과감한 색채 조합은, 전통차 브랜드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고정관념을 시각적으로 파괴한다.
이러한 컬러 브랜딩은 인스타그램 중심의 디지털 환경에서 압도적인 가독성을 확보했다. 격불(말차를 젓는 행위)을 하는 현대적인 로봇 팔, 감각적인 타이포그래피가 박힌 패키지, 그리고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매장 인테리어는 MZ세대에게 말차를 '가장 힙한 라이프스타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스몰 브랜드에게 일관되고 강렬한 시각 언어는 자본의 열세를 극복하고 고객의 뇌리에 브랜드의 깃발을 꽂는 가장 빠른 지름길임을 수퍼말차는 증명했다.
브랜딩이 화려한 겉모습이라면, 제품의 본질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실력이다. 수퍼말차는 '설탕 없는 달콤함'이라는 기술적 승부수를 던졌다. 기존의 녹색 가루들이 대량의 설탕을 함유해 '녹차 라떼' 수준에 머물렀다면, 이들은 유기농 보성 말차에 천연 감미료인 스테비아와 에리스리톨을 배합해 건강과 맛을 동시에 잡았다.
이러한 성분의 혁신은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니즈와 정확히 맞물렸다. "건강한 것은 맛없다"거나 "단것은 몸에 해롭다"는 편견을 깨뜨리며, 수퍼말차는 매니아층을 넘어 대중적인 기호품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편의점(GS25)과의 협업을 통해 접근성을 극대화한 전략은, 스몰 브랜드의 감도를 유지하면서도 유통의 볼륨을 키우는 영리한 행보였다. 본질적인 퀄리티가 뒷받침될 때 브랜드의 수식어는 비로소 힘을 얻는다.
수퍼말차는 자신들을 단순히 음료 브랜드에 가두지 않는다. 이들은 패션, 뷰티,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아우르는 '크리에이티브 그룹'처럼 움직인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와의 협업부터 감각적인 굿즈 제작에 이르기까지, 수퍼말차의 로고는 '초록색 에너지'가 필요한 모든 곳에 등장한다.
이러한 협업은 스몰 브랜드가 가진 한정된 자원을 창의적으로 확장하는 과정이다. 협업 파트너들은 수퍼말차의 힙한 감도를 원하고, 수퍼말차는 파트너들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브랜드의 세계관을 전파한다. 특히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에서 보여주는 실험적인 연출은 브랜드에 예술적 가치를 더한다. 경계를 허무는 연대를 통해 수퍼말차는 하나의 음료를 넘어, 동시대의 감각을 대변하는 문화적 상징으로 진화했다.
수퍼말차의 성공은 우리에게 브랜딩의 진정한 묘미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것은 박제된 전통에 숨을 불어넣어 현재의 언어로 소생시키는 일이다. 이들은 찻발을 휘두르는 행위를 노동이 아닌 '퍼포먼스'로, 쌉싸름한 맛을 고통이 아닌 '각성'으로 바꾸어 놓았다.
가장 한국적인 소재인 '보성 말차'를 가지고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수퍼(Super)'한 브랜드를 만들어낸 힘. 그것은 전통을 존중하되 결코 숭배하지 않는 당당함과, 동시대의 문법을 정확히 읽어내는 날카로운 감각에서 기인한다. 작지만 강렬한 초록빛 섬광으로 시장의 지형도를 바꾼 수퍼말차. 이들의 여정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껍질을 깨고 나가는 모든 스몰 브랜드에게 가장 역동적인 영감을 준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낡은 권위가 아니라, 본질을 꿰뚫는 위트와 멈추지 않는 에너지라는 사실을 수퍼말차는 오늘도 네온빛 가루 속에 녹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