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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꿀꺽 '레트로'를 팔아요, 프릳츠

홍등 같은 조명이 동굴 속 같은 공간을 점점이 밝히고 있었다. 양재역 1번 출구에서 길어야 5분 거리, 하지만 평소라면 절대 들르지 않았을 골목 깊은 곳에서 '프릳츠'를 찾았다. 수많은 빵이 진열된 1층을 옆으로 끼고 돌아 지하로 내려간다. 연신 남편과 가족의 흠을 잡는 한 테이블, 남자 친구에 관한 수다로 목청이 오를대로 오른 또 한 테이블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곳은 한없이 조용했을 공간이다. 어떤 글자의 오타 같은 프릳츠, 도무지 커피숍 같지 않은 입구를 지나 자리를 잡고 앉는다. 미팅 시간 까지는 아직 30분이 남았다. 어둡다고는 하나 책 한 권 읽기에는 적당한 조명이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 이곳 프릳츠는 왜 이 시대에 가장 핫한 커피숍이 되었을까? 전 세계 커피 중 10% 밖에 선택받지 못하는 스페셜티 커피, 일본과 미국을 제외하고는 이곳 프릳츠가 거의 유일하게 들여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정말 그 때문일까? 아직도 커피의 맛은 잘 모르겠는 나같은 사람은 여전히 의문이 든다. 나는 그 궁금함을 조금 있으면 만날 상대방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컨셉 때문이죠. 레트로한 감성이 밀레니얼 세대의 취향에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대답은 명확했다. 사실상 브랜드의 정점에 있다고 할 '구찌'에서 오래도록 일해온 분이다.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에서 일한 경력만 20여 년, 지금은 아버지와 남동생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브랜드 런칭에 분주한 그녀다. 확실히 안과 밖의 시각은 달랐다. 불황의 엄습한 기운이 가득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지만, 해외로 눈을 돌리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는 메이드 인 코리아가 각광받는다. 화장품 분야가 특히 그렇다고 했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소비 트렌드의 정점에 바로 90년 생, 밀레니얼 세대가 있다. 그제서야 한 가지 깨달음이 왔다. 프릳츠를 40대의 감성으로 읽으려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이곳의 매력은 그제서야 숨은 매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들은 커피의 맛에 중독된 것이 아니다. 7,80년대의 감성에 매혹된 것이다.



그 증거들은 1층 매장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나 보았을 레트로한 소품들, 그리고 익숙한 듯 낯선 네이밍들. 커피 원두의 이름이 '서울 시네마'라니... '잘 되어 가시나'라니... 폰트는 하나 같이 궁서체보다 오래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철수와 영희가 교과서의 주인공이던 시절, 나는 그 시절의 달력으로 정성들여 책 커버를 만들곤 했었다. 그 느낌으로 만들어진 2020년도의 달력이라니. 반갑긴 하지만 새로울 것은 없었다. 프릳츠 커피 음료의 카피만 해도 그랬다. '장안의 화제,  '시원하고 간편하게', '꿀꺽꿀꺽'... 일부러 도트가 보일만큼 올드하게 프린트된 포스터는 정감 있었다. 하지만 그 올드한 느낌을 나는 얼마나 싫어했는가. 아래한글에 새로운 폰트가 추가될 때마다 나는 얼마나 열광했는가.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 프릳츠의 영리한 판단이 있었다. 소비자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이승환을 모르는 세대다. 80년 대의 감성이 낯선 세대다. 그 낯섦을 고스란히 '새로움'으로 소비하는 세대다. 바로 90년대 생,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이다.



그러고보면 '배달의민족'은 참으로 스마트한 브랜드이다. 전략적이었든 우연이었든 배달을 시키는 막내의 감성으로 그대로 관통했으니까. 그들이 최근 선보인 '을지로' 서체도 괜한 시도만은 아니다. 커피와 빵의 맛을 한꺼풀 벗겨내고 보면 이 '열광'의 진짜 의미가 보인다. 오래된 고택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프릳츠의 다른 매장도 마찬가지 시각으로 바라보면 비로소 이해가 된다. 이들은 커피를 마시러 오는 것이 아니다. 빵맛 때문에 찾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러 온다. 프릳츠가 전략적으로 설계한 '컨셉'을 소비하러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컨셉은 일관되게 지켜져야 한다. 메뉴명, 인테리어, 포스터, 카피 문구, 폰트, 조명, 홍보 책자와 직원의 유니폼까지... 그러고보니 프릳츠의 그 유명한 물개 로고는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해태의 로고를 떠올리게 한다. 롯데 삼강과 시대를 주름 잡던 브랜드의 로고 아닌가. 특히나 어린 시절의 먹거리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의 흔적들이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시대를 주름 잡던 한국의 로드샵 브랜드들이 '한 방'에 가는 형국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냉정하다. 뒤돌아 보지 않는다. 새로운 트렌드가 도래한 그 즉시 프릳츠의 올드한 컨셉이 실제가 될지 모른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인내'가 아닐까. 고집과 철학이 필요한 것이다. 커피를 팔기 위해 급조된 컨셉이 아니라, 오래도록 지켜가고픈 레트로한 감성에 대한 진정성이 시험받는 시절이 도래할지 모른다. 프릳츠의 생명력은 그 시기를 거치고 날 때에야 비로소 하나의 브랜드로 우뚝 설 수 있지 않을지. 물론 나는 희망적이라 본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커피숍의 러쉬에 오랫동안 지쳐왔었다. 런던의 매장 느낌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어느 커피숍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복제품은 생명이 짧다. 그제서야 마주 않은 김 대표의 다음과 같은 말을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두 곳의 커피숍 주인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이런 작은 카페에 브랜드가 왜 필요하냐구요? 지속 가능성 때문이죠. 컨셉과 아이덴티티가 분명한 브랜드만이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어요. 5년, 10년을 가게를 이어가려면 입지와 아이템만으로는 힘들어요. 당장의 판매 때문에 급조된 마케팅과 복제된 인테리어는 생명력이 없어요. 자기 것을 해야 해요. 그 유니크함을 지켜야 해요. 최소한 3년을 견딜 체력이 필요해요. 해외의 바이어들이 한국의 브랜드들에 가장 아쉬워하는 점이 바로 그 부분이란 걸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 위와 같은 고민을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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