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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카 Oct 22. 2021

악취미 편 : 남의 인생 저주하기

과거에 저당 잡혀 낭비하는 현재의 삶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최근 들어서야 알았다. 그 말인즉슨 불면증은 사실상 남의 이야기이며 머리만 대면 덜컹거리는 지하철이든 밝은 대낮이든 곯아떨어질 자신이 있다는 건데, 나의 수면을 방해하는 건 오로지 밀크티와 커피를 같은 날에 때려부었을 때(살면서 단 1회)와 머릿속을 떠다니는 잡념들에 초점을 맞추고 더 깊이 파고들자 할 때뿐이다.


잡념은 이불을 뻥뻥 걷어찰만한 지우고 싶은 기억부터 벼락부자가 되어 돈을 펑펑 쓰는 비현실 적인 망상으로 마구마구 퍼져나가고, 보통 그 종착지는 십중팔구 인생을 살면서 길고 짧게 마주쳤던 사람들 중 내게 유독 불친절하고 못되게 굴었던 이들에 대한 기억이 되곤 한다.


때로는 무심함에서 비롯된 배려 부족 때문에 예상치 못하게, 또 때로는 진짜 나쁜 마음을 먹고 던진 게 분명한 날카로운 말에 정말 의도대로 상처를 입게 되었던 예전의 불쾌했던 에피소드들이 팝업창처럼 정신없이 여기저기서 떠오른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사과와 같은 훈훈한 마무리 따윈 없었기에 그때의 원망스러운 마음이 고스란히 그들에 대한 마지막 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쁜 기억은 잊고 싶다던데, 왜 나는 타임캡슐 꺼내듯이 계속 끄집어내고 그 인간들이 잘 살고 있을지 궁금해하고 집요하게 미워하며 앞날을 저주하는 것일까. 마치 먼지가 뿌옇게 앉아 희미해지지 않도록 열심히 광을 내면서까지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저주의 수준은 이러하다. 어떤 것에도 즐겁거나 설레지 않고 앞으로도 특별한 이벤트가 없을 것 같은 삶(그런데 이건 왠지 내 상황 같은데...?), 중요한 날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것같이 사소한 불운이 감기처럼 면역 없이 지겹도록 따라다니는 적당히 불행한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 그렇지만 또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지만 머리까지는 깨지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남을 미워하는 상상에 쑥 빨려 들었다가 어느새 다시 침대에 누워있는 현재의 나로 정신이 돌아오곤 오늘도 쓸데없는 생각 때문에 잠잘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허무함에 잠을 청한다.


왜 이런 인생 허비를 사서 하는 걸까? 아, 나는 이 악취미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내 삶에만 온전히 집중할 때가 돼서야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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