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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카 Feb 11. 2019

저물어가는 겨울

드디어 봄이 오고 있다

작년 말 기어코 겨울이 와 버렸다는 한탄의 내용을 담은 글을 발행하려고 했지만, 게으름 때문에 미루다 보니 쓰려던 내용이 무색하게 벌써 봄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끼는 때에 다다랐다. 이제는 둔탁해 보이는 패딩도 깔끔하게 세탁해서 옷장 깊숙이 집어넣어야 할 시기다. 얼굴이 깨질듯했던 재작년 겨울보다야 덜 혹독했지만, 어쨌든 겨울은 겨울이기에 추위를 견디는 건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여름을 그리워하다가 최근에는 매미 종류 별로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어플을 다운받았다. 스피오, 매앰매앰, 찌르르르르. 어찌나 열심히 합창을 하는지 짜증스럽기도 하고 어쩌다 우리 집 방충망에라도 붙어서 울어대는 날에는 그 엄청난 성량에 귀가 찢어질 것만 같았지만 누가 뭐래도 매미소리는 한여름의 장면을 상기시키는 여름의 배경음과도 같다.

출근길 문을 열고 나서도 추위에 움츠려 들 필요 없는 버석한 공기와 실눈을 뜨게 되는 환한 햇빛, 마음껏 생명력을 뿜어내는 꽃과 나무들, 산책을 하고 보드를 타는 사람들로 공원을 가득 채운 웃음소리, 열대야를 즐기며 두런두런 노상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알록달록한 수영복과 통통한 튜브들로 가득 찬 야외 수영장과 같은 여름의 여러 가지 풍경들.

여름이라는 계절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애정은 대단하다. 생기로 가득 차 있는 이 모든 것이 삶의 정점을 찍고 있어서, 그 활기찬 광경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없는 나의 기분이 처지거나 우울해질 틈을 주지 않아서. 



반대로 겨울에는 모든 게 죽어있는 동시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생존해 나가야 한다. 겹겹이 껴입은 옷들과 멋없는 패딩, 두꺼운 신발로 무장해도 이빨이 덜덜 떨리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감기 기운 때문에 정신 차릴 새 없이 보내는 계절. 퇴근 후 집에 들러 수영복을 챙겨 저녁 수영을 가곤 했지만 늦가을에 독감을 한 차례 앓고난 뒤 훌쩍 날카로워진 바람을 뚫고 수영장에 갈 엄두가 도무지 안 나 결국 포기했다. 역시 의욕과 즐거움을 하나 하나씩 앗아가는 나쁜 계절답다. 찬 공기를 최대한 닿게 하지 않으려 한껏 움츠리느라 매일 같이 근육통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출퇴근 길에선 환풍구에서 나오는 좋지 않은 냄새의 뜨뜻 미지근한 바람을 잔뜩 맞으니 구역질이 났다. 



친구와 이런저런 실없는 수다를 떨다가, 좋아하는 계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겨울이 너무 싫다고, 모든 게 죽어있다고 진저리 치는 내게 친구는 답했다. 죽은 것 같지만 분명히 다들 안에서 꼼지락 거리면서 살아있어! 죽어 있는 게 아니라 휴식을 취하는 중이라고 생각해야겠구나. 얼마 남지 않은 계절이니 싫은 감정을 조금이나마 누그러 뜨려야겠다.

아무리 힘들고 싫은 지금이라도 곧 언제였지 싶게 지나간다. 초겨울에 글을 구상했지만 게으름 피우는 사이 벌써 봄을 앞두게 된 것처럼 이번 역시 몇 번의 예상치 못한 꽃샘추위로 감기에 걸려 콜록대다 보면 비로소 완연한 봄이 올 것이다. 묵은 추위가 완전히 물러나게 될 그날까지 아무쪼록 꽁꽁 잘 싸매고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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