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카 Mar 02. 2019

구태의연한 스끼다시

구색만 갖춘다고 능사가 아니다 

여느 미식가들은 촌스럽고 진정한 맛을 모른다고 핀잔을 줄지는 몰라도, 나는 회보다 스끼다시를 더 좋아한다.  더 정확히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언제나 맛있는 회'의 맛보다 어떤 메뉴가 나올지 몰라 호기심으로 두근대는 시간, 마침내 다양한 스끼다시들을 한데 펼쳐놓고 다양한 음식들을 맛보는 일을 즐긴다고 봐야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집 근처 새로 생긴 횟집이 15가지 스끼다시 메뉴를 자랑하듯 나열한 현수막을 내걸었을 때 궁금해서라도 여기는 꼭 가봐야 할 집이라 마음먹게 되었다.

오픈 초기라 아직 화려한 화환들이 먼저 맞이하고 있던 횟집은 굉장히 넓고 깔끔했다. 가족들과 나는 고민할 것 없이 여러 종류의 스끼다시들이 포함되어 있는 세트를 골랐다. 기대와는 달리 과일사라다, 콘버터, 새송이 버섯구이, 가오리찜 등등의 어느 횟집에서라도 맛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메뉴들이 줄지어 나왔다.

계산을 마치고 식당 밖을 나서며 우리는 뻔한 스끼다시들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했고, 급기야는 대충 따여진 누끼로 꾸며진 간판으로 음식 맛을 이미 알아봐야 했다는 둥, 죄 없는 간판 디자인까지 흉보며 집으로 가는 길에 이런저런 불평들을 늘어놓게 되었다.


당연히 다시 그곳을 찾지는 않았지만 지하철 역에 가는 길에 위치한 식당이다 보니, 매번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오늘 휴무인지 영업을 하는지 등을 매번 보게 되었다. 회사는 연초부터 계속 일이 넘쳤다. 나는 기획자였지만 프로젝트의 모든 연결고리 역할 또한 도맡아 해야 했다. 업체에 전화를 하고 정신없이 벌려진 일들을 정리하여 중간에서 메일로 내용을 전달하고 아주 사소하게는 경품 포장하는 일까지. 다양하게 여러 가지 일들은 잔뜩 하는데 과연 이게 나한테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곤 했다. 

일은 많아서 오늘도 이렇게 늦은 밤에 퇴근하는 중인데, 과연 내가 성장하는 방향으로 올곧게 잘 가고 있는지 알쏭달쏭했다. 택시를 타고 항상 지나치는 길목에 있는 불 꺼진 횟집을 지나치며 그 특색 없던 스끼다시의 맛들을 떠올렸다. 곱씹어 보자니 문득 내가 하는 여러 가지 일들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이것저것 잡다하게 하는 일은 많은데 기획자로서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그냥저냥 일 인분만 겨우겨우 몫을 다 하는 것은 아닌지? 아무 감동도 주지 못하고 벌려놓은 것만 많은 스끼다시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닌지?


다른 고객들의 평가 역시 나와 비슷했는지는 몰라도 횟집은 얼마 가지 않아 무한리필 대게집으로 간판을 바꿔 달게 되었다.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은 그 날의 스끼다시와 회가 분명 맛이 없는 건 절대 아니었다는 것이다. 보통의 수준까지는 충분히 맞췄지만 계속 젓가락이 가지는 않을, 딱 그 정도의 특색 없는 평범한 맛이었을 뿐.

회사원으로서의 나 역시 보통 수준은 충분히 하고 있으니 작은 부분에서라도 분명히 차별화가 되는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하겠다. 역시 보통만 해서는 안 되는 요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물어가는 겨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