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어른 Jan 14. 2024

바르셀로나에서 스페인 대통령을 만날 확률?

우연한 만남이 만들어준 특별한 하루

바르셀로나에서 스페인 대통령을 만날 확률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는 말이 있다. 삶의 모든 순간 역시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역무원 A 씨를 만나고, 길을 걷다가 B 씨와 옷깃이 스친다. 그 모든 우연이 기적이지만, 사사로운 매 순간 감동하진 않는다. 만약 유명한 셀러브리티와의 만남이라면? 떠나는 차창을 따라 달릴 수도 있고, 옷깃 스친 재킷이 자랑거리가 된다. '유명함'이 갖는 힘이자 마법 아닐까?


바르셀로나는 춥고 무미건조했던 런던과 달리, 활기차고 맛있다. 매 끼니가 즐겁고 행복하다. 가우디의 멋진 작품 '까사밀란'을 감상하고, 오늘도 환상적인 스페인 요리를 만끽한다.


가지런한 식재료 진열장, 꿀대구 스테이크, 미니버거
하몽 크로켓, 푸아그라스테이크 핀초스


배를 두드리며 바르셀로나 맛집 문을 나선다. 소화시킬 겸 근처 서점으로 향한다. 서점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잠시나마 번뇌를 잊는 휴식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서점이다. 아동서적이 있는 2층에 오른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모여있는 흔한 광경이지만, 앞을 응시하고 있는 검은 정장의 남자 두 명이 어딘가 모르게 주변을 경계하는 듯한 느낌이다. 남편도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정우와 나는 아동 코너에서 어린이 그림책에 푹 빠져있었다.


얌전하게 책읽는 모습이 대견하다.
서점 내 카페테리아, 인파에 둘려 쌓인 한 남자.
키 크고 미남이다. 혹시 스페인 유명 연예인?


아동 코너 옆 카페테리아에 밝은 청색 정장의 키 큰 남자와 안경 낀 중년 남자가 대화중이다.

'저 키 큰 남자 멋지네.' 생각하며, 주변의 책을 뒤적이던 남편이 근처에 있던 중년 여성 두 명과 스몰토크를 시작한다. 그녀들은 멋진 남자를 가리키며 'El es presidente de Espana'(스페인 대통령)' 이란다. 남편의 작은 눈이 동그래졌다! 아마 그가 태어난 이래로 가장 커졌을 거다.  


"El Presidente de Espana???"

(스페인 대통령이요?????")


"Si, si, es tambien el presidente de partido labor."

(네, 네. 그는 노동당 대표입니다.)


그녀의 말을 100% 이해하지 못해, 노동당 대표인지? 스페인 대통령인지 다시 물었다. 그럼 그렇지, 대통령이 이런 서점에 있을 리 없어 생각했는데, 여성분의 대답은 '대통령이자 노동당 대표'라고 했다. 그렇다. 한국도 예전에 대통령이자 당 대표를 겸직한 경우가 있었다. 그는 대통령이 맞다. 남편이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이정!! 이정!!! 이리 와봐!!!!"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놀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본다.

"저기 청색 정장을 입은 분이 스페인 대통령이래!!!!"

 또한 엄청나게 커진 눈으로 다시 되묻는다.

"뭐? 뭐??? 뭐라고??? 진짜???!!!"
외마디 비명 같은 외침에 서점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본다.

카페테리아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다. 잘생긴 그가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나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그에게도 들렸던 모양이다. 



출처 : 네이버 인물정보


네이버 포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사진과 함께 Sanchez라는 이름이 뜬다. 정말 그가 맞았다. 잘생긴 그는 산체스 총리다. 스페인은 총리제라 대통령 아닌 '총리'이며, 스페인을 총괄하는 한 나라의 수장이다. 한창 진중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텐데, 본인에게 다가서는 대중을 향해 여유 있는 미소의 품격을 보여준다. 역시 한 나라를 이끄는 리더는 다르구나. 눈앞에 스페인을 이끌어가는 대통령이 있다니... 순간 오늘 오전 숙소에서 봤던 뉴스가 떠올랐다.


출처 : 연합뉴스 


바르셀로나에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만나는 장면이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나오는 바르셀로나가 있는 바스크 지방의 독립을 외치는 시위장면도 떠올랐다. 여러 이슈들로 스페인 대통령이 대통령 궁이 있는 마드리드를 떠나 바르셀로나에 방문했고, 지금 이 서점에 와있는 것이다. 그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남편이 "조금 있다가 사진 한 장 찍어줄 수 있는지 물어볼까?"

"응, 좋아!! 한번 부탁해 봐~" 


15분 정도를 기다렸을까..

자리에서 일어서는 총리에게 "Si no es una molestia, podria tomar una foto?"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을까요?)


역시나 환한 미소를 보이며, 친절하게 응해주셨다. 우리는 한국에서 왔으며, 500일간 세계여행 중이라는 말을 전했고, 산체스 총리 역시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었다고 한다. 정우는 부끄러운 지 자꾸 아빠에게 안긴다. 총리를 가운데로 모시고,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의전 담당자 직원께서 흔쾌히 사진 여러 장을 찍어주셨다. 정말 믿기 힘든 순간이다. 한국에서도 만나기 힘든 대통령을 스페인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났고, 함께 사진을 찍다니... 그렇게 비현실적인 경험이 끝났다. 




[남편의 일기 발췌]

내색하지 않았지만, 총리가 서점을 떠난 뒤 후회가 밀려왔다. 아쉬운 게 한 둘이 아니다. 한국에 방문했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이것저것 질문해 볼걸... 우리가 세계여행하며 느끼고 깨달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며, 다음 행선지 마드리드에서 식사나 차 한잔 할 수 있느냐는 제안을 왜 안 했을까? 아니면 바르셀로나에서라도 짧은 시간을 내줄 수 있는지 묻지 않았을까? 용기 내볼걸... 왜 사진 찍을 때 시뻘건 잠바를 입었을까? 등.. 진귀한 기회를 날려버린 건 아닌지... 후회가 몰려온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인 산체스 총리가 우리를 만나줄 확률은 낮겠지만, 절대 그가 손해보지 않는 게임이라 자신한다. 총리 인생과 스페인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 혹시라도 그와 대화할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도 나라의 부를 늘리는 목적으로든 테슬라 투자를 조언했을 거다. 산체스 총리는 72년생으로 젊고, 나와 겨우 5살 차이다. 내가 총리라면 세계여행 중인 한국의 46세 중년 남성과 30분 정도 대화 나누는 것에 흥미를 느낄 수 있다. 허락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생각했지만 이제 되돌릴 수 없다. 이미 끝났다.


큰 교훈을 얻은 순간이다.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문장이 있다. 

'준비되어 있다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한 나라를 이끄는 수장에게 내 생각과 깨달음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그런 상황을 지혜롭게 풀어갈 준비가 되지 않았고, 내 모든 것을 쏟아 최선을 다해 살지 않았고, 원하는 목표를 위해 미친 듯 매진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흔치 않은 기회를 그저 사진 몇 장 찍는 것으로 날려 버렸다. 그렇다. 준비되어 있다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진리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준비하자. 기회가 온다. 

나의 삶은 간절히 원하는 바를 위해 미친 듯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원하는 목표를 모두 이뤄졌다. 다른 위인의 역사를 살펴보지 않아도 된다. 내가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어떤 역사보다 내가 잘 아는 나의 역사. 꼭 기억하자. 준비된 자가 되자.





(남편의 일지를 읽으며 그의 해맑음에 웃었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산적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을 텐데, 한낱 관광객에 불과한 아시안 가족에게 따뜻한 미소와 멋진 매너로 대해주신 산체스 총리께 감사하다. 멋진 페드로 산체스 총리를 만난 덕분에, 오늘 하루가 특별해졌다. 우리의 여정이 얼마나 특별하고 대단한 지 다시금 실감한 하루.  



매거진의 이전글 버스에 갇혀있던 16시간, 크리스마스의 악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