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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파 Jan 30. 2020

산티아고 가는 길 - 일곱째 날

비야투에르타 - 로스 아르코스 (24km)


에스테야보다 더 반가운 그곳은...?!!


이른 아침의 출발길.  해는 등 뒤에서 뜨고 있고 그 와중에 서쪽 하늘은 보랏빛이다.


  6시에 일어났지만 날은 너무 어둡고 또 추워서 1층의 응접실에서 어제 먹다 남은 빵과 바나나를 먹으며 밝아지길 조금 기다렸다 7시 15분에 출발. 오랜만에 예약 없이 가는 거라 숙소를 구하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 걸음이 점점 더 빨라졌다. 간간이 뒤돌아 어둡고 한적한 길의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일출도 보면서 에스테야에 도착했다.



산토 도밍고 수도원의 멋진 문과 산페드로 성당



 많은 순례자들이 하룻밤 묵어가는 도시지만, 나는 어제 잠잘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못해서 에스테야 바로 전에 있던 마을에서 묵었기에 오늘 아침에서야 이렇게 마주하게 된 것이다. 예쁜 도시라 이틀 정도 묵으면서 쉬어가기도 한다고 들어서 잠깐 구경하고 길을 나서볼까 싶기도 했지만 역시 숙소 걱정에 그냥 직진했다. 에스테야를 지나고 조금 걷다 보니 와인의 샘’에 도착했다.



와인의 샘


이라체 양조장의 '와인의 샘'


  순례길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것 중에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고, 기대하며 두근거렸던 장소중 하나다. 와인으로 유명한 리오하 지방. 많은 양조장이 있지만 이 양조장에선 순례자들을 위한 와인을 제공하고 있다. 양조장이 문을 연 시간뿐 아니라 새벽이든, 늦은 저녁이든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나 와인 맛을 볼 수 있게 양조장의 외벽에 수도꼭지가 달려있고 버튼을 누르면 짧은 시간 동안 와인이 콸콸 나오는 시스템이다. 와인잔이나 컵까지 제공하는 것은 아니기에 작은 물병이나 순례자들의 상징인 가리비에 와인을 받아 마신다고 한다.


  이미 많은 순례자들이 얼굴에 화색이 가득한 채 저마다 물병에 와인을 담아 마시고 있어 잠시 순서를 기다렸다 와인을 받아야 했다. 가까이 가보니 버튼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Vino, 와인이라 적혀 있었고 그 옆엔 Agua, 물이라고 적힌 버튼이 있었다. 와인을 마시지 못하는 순례자에게도 물이라도 마실 기회를 주는 따뜻한  현장이 아닐 수 없다..!!



물병으로 들고 다니던 작은 통에 와인을 받았다. 파리로 오던 비행기에서 받은 물통.


  하지만 와인의 나라 스페인 여행을 앞두고 그곳까지 가서 와인을 제대로 못 먹으면 평생을 후회할 거 같아 간을 적응시키겠다며 하루에 한 병씩 와인을 마셔댔던 내가, 와인을 무료로 나눠주는 와인의 샘에서 물을 받아마실 리가 없다.

 

  투명한 병에 받아서 보니 다른 와인들에 비해 색이 많이 옅고 맛도 도수가 세지 않은 것이 많은 거리를 걸어야 하는 순례자들이 너무 취할까 봐 걱정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세 모금 정도 될 와인을 받아 배낭에  꽂아두고 다시 길을 걸었다.




땡볕 속에서.....



밀밭이었던듯한 들판과 푸른 하늘


 오르막을 좀 오른다 싶었는데 언덕배기에 있는 예쁜 밀밭이 나온다! 날씨도 좋아서 아주 멀리 엄청 큰 산맥도 보여서 혹시 저게 산티아고 북쪽 길이 있다는 그 산맥이 아닐까 혼자서 생각했다. 대충만 찍어도 윈도우 배경화면(요샌 휴대폰 배경화면이 더 적당하려나) 느낌 나는 사진이 나올 거 같아 열심히 풍경을 찍고 있으려니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순례자가 날보고 ‘사진 찍어줄까?’하고 묻길래 크게 생각하지 않고 오케이 땡큐! 했는데 얼핏 봐도 190cm는 될 법한 그는 높은 자전거에서 탄 채로 나를 찍어주었고, 모두가 아는 '외국인이 찍어주는 사진의 법칙(?)'에  따라 아름다운 밀밭에서 그가 찍어준 나의 모습은 팔 긴 4등신이 되고 말았다.



포도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많았던 올리브나무.      까미노 중에 가로질러 가야했던 차도. 다행히 지나가는 차가 없어서 사진 후루룩 찍고 다시 원래 길을 걸었다.

 



  쨍쨍한 날씨에 습기 하나 남지 않은 듯 도로의 흙먼지가 바짓단에 가득 붙어 검은 바지가 흰 바지로 보일 지경이 되어 마주친 마을은 아즈케타. 아죽겠다...... 혼자서 말장난 개그 하면서 마을을 지나고 또 한참 걷다 작고 아름다운 비야마요르 마을을 지나가며 길가에 있던 청포도 두 알 따먹고 내리막길을 지나 포도밭 옆을 걸었다. 


  중간중간 앉아서 쉬고 싶고 피레네 이후 오랜만에 마주친 푸드트럭에서(심지어 피레네에서는 내가 도착할 쯤엔 철수해서 뭘 사 먹지도 못했다.)잠깐 앉아서 뭐라도 먹고 싶고 그게 아니라면 Bar의  화장실도 가고  싶었는데 알베르게에 자리 없을 걱정에 뭔가 하지도 못하고 길만 들입다 걸었다. 이게 첫날 숙소대란을 겪은 트라우마임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인원이 그대로 계속 걷고 있는데 인원이 쉬 분산 될 거 같지 않아 발을 쉴 수가 없었다. 물론 1~2시간에 한 번씩은 꼭 쉬어서 발가락과 양말을 말려주었다. 걱정 가득한 상태로 너무 걸었더니 다리가 역대급으로 아픈 기분이다.


 가까스로 도착한 로스 아르코스에서 평점이 그나마 제일 좋은 공립 알베르게를 눈앞에 두고 못 알아봐서 담벼락을 따라 한 바퀴를 돌아버렸다. 이사악 산티아고 호스텔. 다행히 사람이 너무 몰리기 전에 도착해서 내 침대를 받을 수 있었다. 길에서 마주쳐 내 사진을 찍어주었던 D, S를 다시 만났고 유쾌한 P남매와 함께 오후의 망중한을 즐겼다.



(유튜브 영상이 있습니다~)

https://youtu.be/voUZ1C7Oe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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