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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스마일 Nov 20. 2023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

생각의 기록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란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사랑받지 못할 거'라고.



어릴 적, 나는 거의 매일 물을 쏟거나 그릇을 깨는 등 자질구레한 사고를 치는, 그야말로 부주의하고 덤벙거리는 아이였다. 그런 사고를 칠 때마다 꾸중을 들었고, 이렇게 사고를 치는 아이는 부모님에게 영영 사랑받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운이었는지 실력이었는지... 학교에서 꽤 시험을 잘 본 적이 있었다. 동그라미 가득한 시험지를 부모님께 보여드린 그날, 나는 또 다른 경험을 했다. 무뚝뚝하신 부모님 얼굴이 환해지셨고, 나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받는 아이가 되었다. 



어린 마음에 혼란스러웠지만, 곧 결론을 내렸다. 



'동그라미 가득한 시험지를 받자! 시험지에 동그라미가 많아질수록 부모님은 좋아하시고, 나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받는 아이가 되니깐.' 



어느덧 시간은 흘렀고, 대학을 갔고, 공무원이 되었다. 단란한 가정도 꾸렸다. 때에 맞춰 승진도 하고, 일도 열심히 했다. 아이들도 잘 자랐다. 열심히, 성실히 살았다. 



겉으로 봤을 때 내 삶은 동그라미 가득한 시험지 같았다. 정답대로 살고 있었고, 누가 봐도 아무 문제없는 삶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내 속, 내 마음에 문제가 있었다. 어느 날부턴가 나는 이상할 정도로 늘 화가 나 있었고, 뭘 해도 즐겁지 않았다. 에너지는 밑바닥이었고, 어떤 것에도 관심과 흥미가 일어나지 않았다. 마음이 헛헛하고 인생이 공허했다. 고장 난 것 같았다. 내 마음과 내 인생이.



특히, 나는 나 자신이 무능하게 느껴지거나 직장에서 무능한 사람을 보면 화가 불처럼 일어났다. 용서가 안되고 참을 수가 없었다. 무능은 게으름의 결과라 생각했다. 노력해서 안 되는 건 없다 생각했고, 무능과 동의어인 게으름을 용서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직장인으로서, 엄마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을 모두 떠안았다. 직장인이니깐, 엄마니깐, '이러이러 해야 한다'라는 당위성은 나를 책임감 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해야한다고 믿었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덕에 언제나 정신없이 바빴다. 



하지만, 시간과 체력, 에너지의 한계로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화가 났다. '능력이 왜 이것밖에 되지 않냐, 체력이 왜 이것밖에 되지 않냐'라며 속상해했다. 그러면서 이것밖에 안 되는 나를 미워하고 질책했다. 자책하는 일이 많아졌고,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슬픔에 정신이 멍한 때도 많았다. 



점점 나를 혹사시키는 일이 많아졌다. 잘 해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혹여 잘 해내지 못하게 되면 너무나 차갑고 냉혹하게 스스로를 질책했다. 몸은 망가져갔다.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 인생의 시험지를 동그라미로 채우고 싶었다. 그러려면 유능해져야 했다. 체력도 좋아야 했고, 지식도 많아야 했고 성격도 좋아야 했다. 



그런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유능해지고 싶었지만, 유능해지고 싶어 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무능해져 갔다. 유능함을 쫓지만, 하나도 유능해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제일 경멸하는 무능한 사람이 되어갔다.



어느 날, 일이 몰리는 연말에 사소하지만 번거로운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다들 괜찮다고 하는데 나는 자신이 도저히 용서가 안 됐다. 너무 화가 나고 분해서 나 자신을 어떻게까지 하고 싶다 생각할 정도였다. 그 당시 내 분출구는 새벽 달리기였는데, 컨디션이 좋지 못해 걷기만 했던 그날. 나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깊고 묵직하게 울리는 한마디, '너무 자책하지 마.'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까. 그 말이 너무나 깊고 따뜻해서 눈물이 났다. '나는 무엇을 위해, 누굴 위해 이렇게 나를 극한까지 밀어붙이고 있는 거지?' 의문이 들었다.



동그라미 가득한 시험지를 가져와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어린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동그라미 가득한 시험지를 받기 위해 애쓰며 살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밀어붙였다. 한계에 부딪힌 나를 다독이기는커녕 극한으로 밀어붙이자 몸과 마음이 망가져 버렸다.



성실한 직장인, 헌신적인 엄마, 살뜰한 아내, 든든한 맏딸, 착한 며느리로 세상이 말하는 정답을 받기 위해 몸과 마음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타인의 사랑을 구걸하며 그렇게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그 후, 나는 가장 중요한 건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단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했다. 덕분에 유능해져서 누군가에게 사랑받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런 생각들 때문인지,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꾸역꾸역 다니던 직장도 더 이상 발 붙이고 있을 이유가 없게 되었고, 드디어 나는 퇴사하기에 이르렀다. 



퇴사하고 한동안 직장도 수입도 없는 상황에 직면하자, 다시 예전 무능함에 대한 수치심이 극한으로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건, 어린 날 내가 내렸던 결론, '동그라미 가득한 시험지가 다른 사람의 사랑을 보장한다'라는 생각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을 알기 때문이고, 누군가의 사랑을 바라고 기다리기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솔직히, 사랑이 무엇인지, 특히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자기 사랑'은 이런거다. 



아무리 운동하고 싶고, 싸돌아 다니고 싶더라도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 몸을 편히 쉴 수 있게 하는 것, 마음에도 없는 말과 행동을 해서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는 것. 그런것이 아닐까. 여기엔 약간의 관심과 의지가 필요하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관심을 가지고, 몸과 마음이 편안하도록 의지를 발휘해 예전처럼 행동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때의 나는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았고, 이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사랑하지 못해 누군가에게 사랑을 구걸했으며, 유능함으로 사랑받으려 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생각 너머, 그곳엔 언제나 평온함이 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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