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편은 입사동기로 시작이 같았다.
하지만 두 번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면서
남편과 나는 진급의 시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어느 정도 연차가 쌓여 위치를 다져가고 있는 반면,
나는 복직 후에 다시 신규가 된 것처럼
적응의 시간을 가져야 했는데,
그러한 상황이 참 당황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억울하기도 했다.
휴직만 안했으면 나도 남편처럼
어느 정도 위치를 다져가고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땐 모든 것이 참 원망스러웠다.
세상 일이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이라 생각했고,
나는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인 세상의 피해자 같았다.
그런 생각은 분노와 화로 가슴에 남아
무얼 해도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그때의 나는 펄펄 끓는 활화산처럼 분노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땐 그게 맞았다.
세상이 원망스럽고 화가 나는 게
그때의 나에겐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떨어져 돌아보니
그땐 참 한 곳만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직에 있으면 조직 안에서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다.
내가 보고 듣는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보일 때,
지위와 진급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일 때..
동기들에 비해 진급이 늦은 나는
마치 실패자 같았는데,
사실 실패자라고 단정하기에
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한탄과 원망을 쏟아내면
나의 오래된 지인은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너는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고, 일할 수 있는 직장도 있지 않냐..'
이미 많이 가졌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머리에서 끝이다.
이해가 가슴으로 내려올 때, 진정한 울림이 있다.
그런데 그 울림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거쳐 조금씩 가슴으로 내려오는 모양이다.
가끔 젊은 엄마 직원들이
나와 같은 상황에서
억울함과 원망을 토로하는 것을 본다.
이해가 가는 일이다.
하지만 말해주고 싶은 건,
당신은 이미 당신이 보지 못한 많은 걸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세상 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
그때의 분노는 내게 분발할 힘을 주었고,
그것을 동력 삼아 함께했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기회와 가능성이
그 직장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와보니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
할 일은 생각보다 많고,
삶의 방식은 생각보다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