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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 May 15. 2019

희'로애'락 - 9부 리그 구단 운영기(4)

분노와 슬픔

喜怒哀樂.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

사자성어 희로애락에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이 있다. 기쁨, 노여움, 슬픔, 그리고 즐거움. 사람은 살아가면서 이 4가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지만 나는 최근 가운데에 있는 '로'와 '애'를 많이 느낀다. 분노와 슬픔. 사실 이 두 감정이 이 팀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이 아닐까 싶다. 4단어 중 첫 단어 기쁨()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지난 3편(https://brunch.co.kr/@hansjohn/25) 이후로 2달이 지났다. 두 달 동안 치른 5경기의 결과는 1무 4패. 3편에서의 결과를 더해 우리가 팀을 맡고 난 뒤의 팀 성적은 7전 1무 6패. 7경기 동안 얻은 승점은 단 1점에 불과하다. 

참담한 마지막 경기

사실 이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할 때에 나는 꽤나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인생 역전의 아이콘 '제이미 바디'와 같이 우리 팀도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써나가면서 희망 그 자체를 노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나는 너무 어리석었던 것이다. '누구나 계획은 있다. 쳐맞기 전까지'라는 타이슨의 명언을 망각한 채 밝은 내일만을 생각했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위의 이미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참 어렸었지 뭘 몰랐었지 �


작자도 사람인지라 무언가 흥미로운 소재 혹은 가슴 뛰는 순간들이 있어야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지난 2달 간 나에겐 그런 순간이 찾아오지 않았다. (오늘도 술먹고 술김에 겨우 쓰는거다) 매주 화요일, 목요일을 훈련에 시간을 할애했다. 훈련장에 나가서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도록 장비들을 세팅하고 공을 주우러 다니는 일련의 것들을 그저 해야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주일에서 쉴 수 있는 주말 중 하루는 경기 때문에 반나절이 날아갔다. 경기시각 1시간 반 전부터 몸을 풀기 때문에 오후 3시에 경기가 있으면 오후 1시 반부터 경기가 끝나는 오후 5시까지 나의 개인 시간은 없어진다. 전문가가 아니기에 내 딴에는 영상도 열심히 찾아보고 아마추어한테 도움이 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나름대로 고민했다. 하지만 내가 쓰고 있는 시간이 충분히 값지다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충분히 해볼 만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경기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들에 의해 너무나 쉽게 무너져버렸다. 본인들이 하는 스포츠의 종목이 축구가 아니라 핸드볼이라고 생각하고, 파울이 뭔지 모르는 친구들 덕분에 우리는 너무나 어이없게 페널티킥을 허용했고 흐름을 타다가도 금새 사그라든 경우가 허다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경기력이 아니었다. 우리가 시작부터 외쳤던 '규율'이 무너졌다. 사실 코치 역할을 하면서 전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들을 더더욱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에 그들은 유럽에서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선수들을 기용하면서 국민들의 거센 지탄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큰 잘못이 없다. 경기에 아무리 못 뛰어도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잘하면 그냥 그 선수를 써야한다. 우리의 상황도 비슷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선수들은 훈련에 참여하지 않는다. 아픈 곳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축구 코치를 하러 온건지 병원 봉사활동을 나온건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디가 아프다는 둥, 어디를 가야한다는 둥. 그나마 연락이라도 주면 착한 친구다. 아무 연락없이 잠수를 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들이 훈련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선발라인업에서 배제해야만 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점을 하고 그 경기를 무조건 이겨야되는 상황이 되면 우리는 그 선수들을 쓸 수밖에 없었다. 처음 팀을 맡을 때부터 외쳤던 '훈련에 참여한 선수들이 경기에 뛸 수 있다'라는 대전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공이 우리 진영에 오기 전엔 압박하지 않는 극단적인 수비 전술

팀의 연패 덕분인지 우리가 보여준 모순적인 모습 덕분인지 팀원들 중 일부는 우리가 운영하는 방식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의 전술이 너무 수비적인 것이 아니냐', '왜 우리는 라인을 올려서 공격하지 않느냐'라며 볼멘소리로 이야기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그들의 축구 지능으로 라인을 올릴 때 벌어질 대참사를. 그들에게 축구는 참 쉬운 스포츠다. 본인들이 라인을 올리고 공격 숫자를 늘리면 득점을 할 수 있고 승리를 얻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현재 우리 팀원들의 축구 이해도로 봤을 때 라인을 올리는 것, 그리고 상대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우리에게 불만을 토로하니 분노(怒)가 치밀어오를 뿐이었다. 


팀원들 중 일부는 훈련에 임하는 태도 또한 아주 불량했다. 우리 또한 전문가가 아니기에 훈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툴고 어리숙한 모습들을 보이긴 헀지만 그들에게는 '훈련 = 미니게임' 이었다. 종종 한국인 팀원들에게 이야기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중학교 체육시간에 공놀이를 좋아하는 한낱 중학생들과 같다. 본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기본기 훈련을 하려고 하면 지루해하며 친구들과 희히덕거리기 일쑤였다. 훈련을 조금 진행하고 있으면 나 또는 사장님에게 쫄래쫄래 다가와서 '우리 미니게임은 언제 해?'라고 수도 없이 물었다. 그들에게 축구는 무언가 배워서 더 잘하고 싶은 대상이 아니었다. 경기든, 미니게임이든 '내가' 골을 넣으면 기분이 좋고 '내 팀이' 지면 화가 나는 아주 단순한 개념이었다. 그래서 훈련에서 진행하는 미니 게임에서조차 상대 팀(미니게임에서 상대팀이지 우리는 모두 한 팀이다..;;)에게 거친 파울을 하고 서로 말다툼을 하며 남탓을 하기 일쑤였다.


소통의 문제도 한 몫 하고 있다. 현재 우리 팀원들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1. 한국인 2. 시리아인 3. 독일인(독일 국적이 아니어도 독일어로 소통이 가능한 친구들)

솔직하게 말하면 한국인들도 독일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까방권은 없다. 우리가 독일어를 더 잘했다면 소통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을 수도 있다. 나와 사장님은 훈련이나 경기 때 주로 영어로 소통하기 때문에 우리의 이야기가 팀원 모두에게 전달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우리가 영어로 말하면 영어를 할 줄 아는 독일 친구가 독일어로 통역을 해주고, 독일어를 할 수 있는 시리아 친구가 다시 아랍어로 통역해서 전달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비디오 세션이나 팀 미팅을 하더라도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팀에 비해 우리는 3배의 시간이 소요된다. 언어가 달라서 그런 것인지 한 팀이라는 소속감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경기 중에서도 우리 팀은 소통이 없고 조용하게 축구한다. 뒤에서 누가 와도 아무말을 하지 않으며 패스를 달라는 의사표현도 확실하지 않다.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그냥 짜증만 낼 뿐이다. 


침몰하는 배처럼 개선점 하나 없이 우리 팀은 계속해서 아래로 침전해갈 뿐이었다. 소통, 팀워크, 결과 모든 면에서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우리는 가장 최근 경기에서 리그 2위팀에게 10대 0이라는 처참한 스코어로 '발렸다'. 말 그대로 발렸다. 완벽히 체계화된 전술과 9부 리그에서는 보기 힘든 팀워크로 우리 팀은 완벽하게 박살이 났다. 수비수, 미드필더 할 것 없이 모두가 공황 상태가 되어서 우리 팀의 골망이 10번이나 흔들리는 것을 넋놓고 볼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이 선수로 뛰기 시작하면서(답답하면 니들이 뛰든가) 마지막 경기에서 감독 대행 역할을 했었는데 경기장 밖 사이드라인에서 우리 팀이 가루가 되도록 털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꽤나 괴로운 경험이었다. 

9부 리그의 중거리 득점... 무회전 슈팅도 간간히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우리 팀보다 아래에 있는 팀이 2개나 있다.

수많은 불행들 중 거의 유일한 다행은 우리 팀이 이번 시즌에 강등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2경기 3승 4무 15패. 처참한 결과지만 우리보다 더 심각한 팀들이 2개나 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저 두 팀과의 최근 경기 결과는 1무 1패라는 것. 리그 최하위 팀인 Union 03 2군 팀과의 경기에서도 88분에 터진 사장님의 극적인 동점골로 겨우 승점 1점을 챙겼다. 팀을 맡은 이후 얻은 유일한 승점이 바로 그 경기에서의 1점이었다. 

사장님의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가'

오늘 진행한 훈련도 나또한 코치가 아닌 선수로서 훈련에 참여했다. 저 놈보단 내가 나을 거 같은데 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경기에 나가서 상대팀 선수에게 탈탈 털려서 쪽팔리는 순간이 올 수 있어도 한 번은 선수로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께서  답답하면 니들의 뛰든가의 좋은 표본을 몸소 보여주셨으니 코치였던 나도 이어받아볼 심산이다. 


기쁨(喜)과 즐거움(樂)을 위해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아직까지 나에게 분노와 슬픔이 되어 돌아왔다. 이번 시즌 남은 경기는 2경기이지만 다음 시즌에 우리 팀이 더 나아질까 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남은 2경기 혹은 다음 시즌에서 잃어버린 두 글자를 찾아서 사자성어를 마저 완성할 수 있을까. 인생의 큰 교훈을 얻는 것이 이리도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을까. 다음 편 글의 내용이 어떨지 나또한 기대(혹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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